▲ 김부겸 위원장은 인적 쇄신 요구에 대해 현실적으로 시간과 여유가 없다며, 제도 개혁을 통해 민주통합당이 바뀌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민주당의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은 현재 영남 출신 선대위원장으로서 정치개혁과 인적 쇄신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한나라당 출신 비주류라는 배경 때문에 그 역에 가장 적합하다는 말도 나온다. 그래서 인적쇄신이라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당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던 중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요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대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두 분(이해찬-박지원) 쫓아낸다면 그건 민주당의 자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 당내 쇄신의원 모임이 여전히 “인적쇄신을 포함한 당의 근본적 쇄신”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최근 출범한 새로운정치위원회에서도 ‘이해찬-박지원 퇴진론’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의 선대위원장이 인적 쇄신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인적 쇄신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마저 ‘반대’로 돌아서면서 ‘이해찬-박지원 체제 정리’는 물 건너 간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인적 쇄신 등 민감한 문제 때문에 몇 차례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를 지난 10월 24일 점심시간을 쪼개 어렵게 만났다.―현재 대선을 앞둔 민주통합당의 최대 현안은 ‘쇄신’이다. 최근 문 후보 측에서 쇄신안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다. 선대위원장으로서 그리는 쇄신안의 그림과 그 필요성은.
▲근본적으로 쇄신은 정치권이 바뀌길 바란다는 국민의 목소리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의 문제다. 인적 쇄신 이전에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놓을 수 있는 제도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 지금 정치권이 가장 욕먹는 건 진입 장벽을 치고 ‘정치 면허증 발급권’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쁜 건 이 면허증 발급권을 지역에 따라 딱 나눠 갖는다는 거다. 지역주의와 거대 정당의 폐해가 결합한 것이다. 이런 폐쇄적인 기득권 탓에 정치인들은 대화나 타협보다는 큰 목소리와 싸움만으로 자신의 정치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거다. 그게 현재 정치권과 국민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제도적 개혁이라면 문 후보 쇄신안의 주요 내용인 선거구 및 공천방식 개편(△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기초지역의원 정당공천 폐지 △독립기구의 선거구 확정)을 이야기하는 건가. 사실 국민으로서 와 닿는 얘기는 아니다.
▲맞다. 임팩트는 없을 것이다. 국민에게 영향을 미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개편이 있어야 근본적인 정치쇄신이 가능하다.
―사실 당 밖에서는 인적 개편에 더 관심이 많다.
▲나도 안다. 당 밖에서는 쇄신하면 사람 얘기만 한다. 물론 민주통합당에 대한 불신은 나도 안다. 자꾸 (이해찬) 당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를 쫓아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두 분이 퇴진하는 것은 맞지 않다. 선거가 두 달도 채 안 남았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그런 것을 생각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건가.
▲선거판은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여야 한다. 동료 등에 칼을 꽂을 순 없다. 굳이 동료를 ‘억지 춘향’ 격으로 내쳐서 정치적 반사 이익을 크게 얻을 수 있겠나. 그 두 분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 순간만큼은 국민이 박수를 칠지 몰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끝이라고 본다. 멀리 보면 이건 자해다. 자해. 다른 부분(앞서 말했던 제도적 개혁)을 통해 민주통합당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당내 쇄신파 의원들 사이에서도 당 대표와 원내대표 퇴진 요구를 하고 있다.
▲그건 그분들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얘기다. 우리가 ‘하지 마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거를 끌고 가는 문 후보와 선대위 입장에서는 어려운 문제다. 시간과 여유가 없다.
―‘민주통합당 새로운 정치위원회’ 인선이 발표됐다. 하지만 여전히 위원장은 공석이다.
▲그 부분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공석으로 둔 거다. 지금은 민주통합당 단독 기구지만 훗날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와 양측의 정치쇄신안에 대해 맞춰볼 문제가 남았다. 그래서 공석으로 놔둔 것이다. 처음에 염두에 뒀던 후보(조국 서울대 교수)도 있지 않나. 그분이 처음에 제안을 거절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그분에 대한 인선 시도를 접은 건 아니다. 아직 지켜보고 있다.
―지난 주말(10월 21일)에는 친노 인사 9인의 갑작스러운 캠프 퇴진이 있었다. 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문 후보나 선대위 차원에서 사전 접촉이나 지시가 있었나.
▲없었다. 그럴 문제는 아니지 않나. 퇴진한 인사들 스스로 문 후보에 대한 ‘멍에’라고 생각한 것이다. 문 후보가 대선후보가 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 롤(선대위 직위)을 독점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본인들 스스로 한 결정이지만 어떻게 보면 읍참마속(泣斬馬謖: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히 정도를 지켜 기강을 세우는 일) 격이다. 사실 문 후보로서는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누구를 데리고 일을 하나. 그럼에도 ‘친노가 다 한다’는 외부의 불신을 거둬들이기 위해 정치적 한정치산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문 후보의 ‘친노 색깔 빼기’가 시작된 것인가.
▲친노 색깔을 뺀다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공과 중 ‘과’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다. 문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한 과정을 지켜봤다. 이에 대해 통찰의 계기를 갖고 제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 계속 발표할 것이다. 과거(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의욕이 있었지만, 그 의욕을 뒷받침할 구체적 수단과 방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실패한 거다. 이젠 다를 거다.
―안철수 후보 진영과의 단일화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진행 사항은 있나.
▲아직 아니다. 안 후보 진영에서 종전까지 계속 ‘완주론’을 강조하지 않았나. 공격적으로 나왔다. 이번 주 들어서 문화예술인과 종교인 102명이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는가 하면 내일(10월 25일)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시민사회 어른들이 단일화 촉구 성명서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민에 의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단일화를 위한 테이블에 나오라는 시민의 초대를 받은 거다. 압력을 피해 갈 수 없다. 안 후보 측이 이렇게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간과하면 정말 안 된다. 국민들의 분노를 희망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를 시행하지 못하면 다 죄인이다. 절박하다.
―그 부담은 문 후보보다는 안 후보 가 더 크다는 얘기로 들린다.
▲안 후보가 훨씬 클 것이다. 우리는 정당 후보다. 안 후보 측에서 (완주론에 대해) 애써 강하게 나오긴 했는데, 이제 반응이 달라질 것이다.
▲ 지난 3월 21일 열린 민주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이종현 기자 |
―결국 무소속 안 후보 진영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난 처음에 안 후보 캠프가 시민 정치세력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결국 몰려드는 사람들은 기존 정치권 인사들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줄 것이라는 주변의 막연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결국 그게 현실이다. 안 후보는 ‘탈 정당정치’를 지향하지만, 이는 ‘반정치’로 갈 수 있다. 기존 정당이 불신 받고 비판 받는 것은 맞다. 안 후보가 이를 에너지화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정치 자체를 혐오하게 하는 ‘반정치’는 안 된다. 정당이 없다면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은 누가 보호하나. 결국 ‘돈과 백’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 난장판이 된다. 근엄한 재판부, 뺀질이 검찰, 경제적 강자들, 콧방귀도 안 뀐다. 결국, 정당이 최후의 보루로 남아 있어야 한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고 안 후보의 ‘한계’라기보다는 이제 안 후보 쪽에서 ‘현실정치 경험은 다 버려야 할 것이고 나쁘다’는 편견은 걷어야 한다는 얘기다. 안 후보가 최근 쇄신안을 통해 밝힌 미국식 정당정치(중앙당 폐지) 안도 우리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다. 물론 지금 내가 안 후보에 대해 비판한 내용은 우리와 토론하고 입장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민주통합당 상당수 인사가 안 후보 측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건 국민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은 ‘정치의 금도를 넘어갔다’며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런 행위는 안 후보나 우리나 다 똑같은 정치행위를 하는 집단으로 보이게 할 뿐이다. 그분들(안 후보 진영에 합류한 민주통합당 인사)은 왜 그것을 생각하지 못할까. 안타깝다. 누구(송호창 의원)는 안 후보가 혼자 벌판에 있는 게 외로워서 갔다지 않나. 도대체 뭐가 외로워서 갔나.
―이번 선거판에서 20~30대 유권자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이 연령층의 유권자만 따진다면 문 후보가 안 후보에게 밀린다.
▲사실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개선과 준비가 필요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민주통합당은 오랜 전통의 정당이다. 때 묻고 그들만의 리그에 익숙하다는 이미지가 가득하다. 하지만 문재인은 다르지 않나. 기존 당의 이미지와 정치 행태에서 많이 다른 분이다. 난 문 후보에 있어서 ‘친노’도 멍에고 ‘민주통합당’도 멍에로 본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극복할 수밖에 없다.
―상대 여권 후보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최근 정수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비판할 게 많다. 일단 국민이 믿지 않는다. 박 후보 스스로 정수장학회에 대해 영향력이 없다고 했지만 누가 믿나. 법원에서 공소시효 등 교묘한 법 논리로 장학회가 제 주인에게 가진 못했지만 국민은 당시 김지태 회장의 부일장학회가 강압으로 빼앗겼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국민 정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다. 박 후보는 이제 마땅히 털어야 한다. 대통령은 최고 지도자이자 국민의 모범이다. 그런 자리를 꿈꾸는 유력 주자가 과거 문제를 안고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영남대 문제, 부산일보 문제, 용인 민속촌 문제도 마찬가지다. 또한, 기자 회견장에서 박 후보가 팩트와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나(정수장학회 기자회견 당시 박 후보의 재판결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겨냥하며). 이건 심각한 문제다. 박 후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참모기능이 무너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분이 대통령이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참 걱정스럽다.
―문 후보 아들의 부정취업 의혹, NLL 대화록 의혹 등 문 후보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격도 거세지고 있다.
▲그런 네거티브 공격으로 새누리당 표가 확장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고정표를 다지겠다는 것이다. 문 후보나 안 후보는 여기에 똑같이 대응할 게 아니라 좀 더 (정책적) 내용을 풍부하게 다져서 국민에게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으면 한다. (새누리당에 대해) “저들은 저 수준이야”라고 보면 된다. 국민도 알 것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비주류서 ‘핵심’으로…
민주통합당 내에서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 하면 언제나 ‘한나라당 출신(현 새누리당)’이라는 멍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3선을 지내면서 중진급 대우를 받았지만 당내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원내대표 등 수차례 당권자리에 후보로 나섰지만, 낙선의 고배만 마시곤 했다.
그런 그가 유권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어필했던 시점은 공교롭게도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때였다. 자신의 기존 지역구(경기 군포)를 포기하고 여권 텃밭인 대구 수성구에 총선 출사표를 낸 것. 당시 그는 놀랍게도 야권 인사로서 40% 이상을 득표하며 당선자인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의 진땀을 뺐다. ‘장렬한 전사’였지만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던 평소 소신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호평이 주를 이뤘다. 그는 “19대 때는 졌지만, 다음엔 반드시 이겨 지역주의를 깰 것이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현재 비록 현역 의원은 아니지만 점차 당내에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는 평가다. 당 차원에서는 어느 한 계파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으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그에게 선대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긴 연유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