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우석은 선재 그 자체, 덕질하는 기분 느껴…과거로 돌아간다면? 건국대 입시 영상 피하고파”
스스로 빛날 때보다 누군가를 함께 비출 때 한층 더 빛나는 배우였다. 단독으로 받는 스포트라이트에 조금이나마 욕심이 생길 법도 할 텐데 배우 김혜윤(28)은 그저 지금의 사랑과 관심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감사하면서, 가슴이 벅차올라 그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새가 없어 보였다. 여성 직장인들의 ‘월요병 치료제’라는 찬사와 함께 시청률과 화제성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시청률 무용론’까지 입증해 낸 tvN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를 뒤로한 채 기자와 만난 김혜윤은 “이 정도까지 인기가 있을 줄 정말 상상도 못했다”며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밖에 잘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라 체감을 못했는데 소셜미디어(SNS)나 유튜브 같은 곳에서 ‘선재 업고 튀어’ 리액션 영상이 뜨는 걸 봤어요. 저는 이런 경험이 진짜 처음이거든요, 시청자들이 제 작품을 보고 실시간으로 리액션을 해준다는 게(웃음)! 사실은 이 정도로 인기가 많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요. 소문으로 듣기론 저희 팝업 스토어 예약 서버도 다운됐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웃음).”
5월 28일, 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종영한 ‘선재 업고 튀어’에서 김혜윤은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최애’(최고로 사랑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신조어) 아이돌 멤버 선재(변우석 분)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넘어 고군분투하는 임솔을 연기했다. 교복을 입을 때마다 인생작을 찍어낸다는 김혜윤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청춘 로맨스면서, 동시에 타임슬립이란 판타지 요소까지 녹여낸 작품이다 보니 현실과 판타지의 간극을 조절해 과하지 않게 연기하는 게 첫 번째 숙제였다고 했다.
“사실 저는 촬영하는 내내 솔이로 살았기 때문에 ‘얘가 왜 이렇게 행동하지?’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없었어요. 솔이의 모든 행동은 다 선재를 위해 한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시청자 분들이 보시기엔 과거와 현재가 계속해서 뒤얽혀 있다 보니 솔이의 행동이 조금 과하다거나 답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과연 이 분들이 결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저는 솔이와 선재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결말이라고 생각하지만요(웃음).”
2030 여성 시청자들의 압도적인 사랑과 호응을 얻어낸 ‘선재 업고 튀어’에서 이들이 꼽은 가장 설레는 포인트는 역시 선재와 솔의 케미스트리에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생의 이유’였다는 가슴 절절한 설정은 물론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이들의 ‘이상적인 키 차이’까지 더해지며 시청자들의 설렘을 극대화시켰다. 김혜윤 역시 “제가 키가 작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었던 케미”였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지난번에도 지금처럼 키가 크신 분(‘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로운 등)하고 같이 찍은 적이 있잖아요? 그때마다 제 작은 키에 굉장히 감사하다고 느껴졌던 것 같아요(웃음). 제가 키가 작다 보니 더욱 케미스트리가 극대화되고, 더욱 설레는 모습이 시청자 분들께 잘 전달된 것 같거든요. 아마 제가 지금보다 더 컸다면 그런 느낌이 잘 안 살았을 수도 있으니까요(웃음).”
그런 설레는 케미를 만들어낸 상대역, 변우석과의 실제 케미는 어땠을까. 작품 바깥에서까지 ‘솔선재’의 망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이 두 배우의 애정 가득한 촬영 비하인드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솔이로 연기하며 간접적으로나마 변우석을 ‘덕질’하는 기분을 느껴봤다는 김혜윤은 그에 대해 “선재 그 자체”였다며 온갖 좋은 말들로 칭찬을 이어갔다.
“(변)우석 오빠는 정말 보이는 이미지와 똑같이 다정다감하고, 배려심 많고, 잘 챙겨주고, 자상한 사람이에요. 아무래도 솔이 같은 경우는 연기할 때 감정을 잡고 울어야 하는 장면이 정말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오빠가 제 앞에서 선재의 모습으로 같이 있어줬죠. 오빠는 촬영 일정이 없었는데도 말이에요. 정말 많은 배려를 받고 있다고 느꼈고 덕분에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사실 저는 10대 때 덕질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간접적으로나마 덕질의 매력을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솔이 방에서 촬영할 때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선재들과 마주칠 수 있었으니까요(웃음). ‘이게 바로 덕후(오타쿠)의 마음인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로맨스를 뒷받침하는 설정이긴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판타지적 설정도 시청자들을 솔깃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포인트였다. 누구나 한번쯤 과거로 돌아가 내가 했던 선택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다들 해본 적이 있을 테니 설정에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고 들어갔던 셈이다. 이처럼 시간을 넘나드는 캐릭터를 직접 연기한 입장에서 그 역시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 선택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열여섯 어린 나이에 배우라는 어려운 길을 걷기로 결심했던 그 과거에서 다른 가능성을 선택한 김혜윤의 새로운 미래도 상상해 봤을 법하다.
“제가 생각해 본 웃긴 버전과 안 웃긴 버전이 있는데요(웃음), 안 웃긴 버전으로 말씀드린다면 사실 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과거의 제가 선택한 것들에 저는 후회하고 있지 않거든요. 그때의 저는 그때의 최선의 선택을 내렸을 것이고,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웃긴 버전으로 말씀드린다면요, 건국대 입시 영상을 찍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것만큼은 정말 좀 피하고 싶거든요(웃음).”
내일이 막막했던 무명 배우에서 이제는 ‘마냥 사랑하고 싶은 배우’로 자리매김한 김혜윤의 남은 올 한 해 목표는 ‘행복 찾기’라고 했다. 2013년 데뷔 이래 10년여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오면서 한 번도 스스로에게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했는지를 물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배우 김혜윤으로서의 행복을 채워낸 만큼, 인간 김혜윤의 행복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올 한 해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1년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배우는 남의 인생을 사는 직업이고, 남에게 그걸 보여주는 직업이다 보니 정작 제 자신에겐 소홀했던 것 같아요. 촬영이 끝나면 꼭 김혜윤이 좋아하는 건 뭔지, 김혜윤이 행복해하는 건 뭔지를 찾아보자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걸 위한 휴식을 취하면서 열심히 찾아보는 중이에요. ‘내가 행복한 건 뭘까?’ 올해 안에 그걸 꼭 찾고 싶고요, 그리고 그러면서도 분주하게 많은 일들을 해내고 싶어요. ‘선재 업고 튀어’를 통해서 ‘이 작품은 김혜윤이 아니었으면 안됐다’는 말을 듣고 정말 큰 힘을 얻었거든요. 앞으로도 그렇게 ‘연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열심히 하고 싶어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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