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저평가 가능성 높아져 일반주주 피해 우려…HD현대 “주주환원 작업 진행 중”
HD현대그룹은 최근 몇 년간 잇달아 계열사 상장을 추진해왔다. 옛 현대중공업의 그린에너지 사업부문을 가지고 2016년 독립한 HD현대에너지솔루션이 2019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HD현대중공업에서 조선·엔진·전기전자 사업부의 AS사업을 받아 2016년 출범한 HD현대마린솔루션도 지난 8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HD현대에서 2020년 물적분할한 HD현대로보틱스도 상장 관측이 나오고 있다. HD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 1월 상장을 추진했다 철회한 바 있지만 언제든지 다시 상장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과 HD현대오일뱅크도 상장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거론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지주사 HD현대의 일반주주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나올 법하다. 지배 회사와 피지배 회사의 중복상장의 영향으로 지주사 주가 상승이 쉽지 않아서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중복상장 구조로 지배회사의 주가 상승이 제한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중복상장 구조는 (지배회사) 일반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HD현대그룹은 과거 지주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인적분할을 통해 회사를 4개로 쪼갠 후 상장하면서 중복상장의 구조가 확대됐다. 지주사 체제 출범 전인 2016년 HD현대그룹(당시 현대중공업그룹) 내 상장사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2개사뿐이었지만 현재 HD현대그룹에는 총 9개의 상장사가 있다.
지주사 설립 후 일반주주들이 받은 존속법인 HD현대 지분은 중복상장 구조의 영향으로 주가 상승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신설 분할 회사 설립 시 받는 해당 회사의 신주는 인적분할 과정에서 그 가치가 훼손됐다고 느낄 수 있다. 신설 분할 회사 주식은 존속회사가 기존 자사주만큼 신설 분할 회사 신주를 부여받는다. 기존 회사에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었지만 신설 분할 회사의 자사주는 존속법인에 부여되면서 존속법인은 해당 지분율만큼 신설 분할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일반주주들로서는 권리가 그만큼 사라졌다고 볼 수 있는 반면 그룹 경영권을 갖고 있는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는 존속법인이 신설 분할 회사 의결권을 새롭게 확보한 만큼 지배력을 강화했다고 할 수 있다. HD현대(과거 현대로보틱스)는 지주사를 설립했던 그해 13.83%의 자사주를 가지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HD현대그룹이 정기선 부회장 승계를 염두에 두고 중복상장 구조를 고착화하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나온다. 정기선 부회장이 아버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으로부터 HD현대그룹을 승계하려면 지주사인 HD현대 지분이 필요한데, 중복상장 문제로 올라야 할 HD현대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그만큼 지분을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기선 부회장은 최근 들어 HD현대 꾸준히 지분을 매입하며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기선 부회장은 지난 2일부터 10일까지 6영업일 동안 HD현대 주식 11만 3348주를 매입했고, 이후 지난 13~21일 8만 2500주를 매입했다. 또 지난 22~29일 9만 6500주를 매입하며 이달 들어 약 30만 주를 사들였다. 이로써 정기선 부회장의 지분율은 기존 5.4%에서 5.63%로 올랐다. 지분 매입에 투입한 비용은 196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투자업계 다른 관계자는 “실제로 HD현대가 일반주주들의 권익을 훼손하면서 승계작업을 벌이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이 같은 중복상장 지배구조는 일반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승계를 생각하는 오너 일가에는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투자업계에서 HD현대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3일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HD현대가 자회사들의 실적 개선에 힘입어 호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주가 상승을 위해서는 옥상옥 지배구조 해소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양 연구원은 “올해 HD현대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8% 증가한 약 3조 8000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내다봤다.
양 연구원이 지적한 옥상옥 구조는 중간지주사 구조다. 양 연구원은 “HD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사이트솔루션을 중간지주로 두고 있는 옥상옥의 지배구조 때문에 HD현대의 주가는 6만∼7만 5000원의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HD현대 관계자는 “옥상옥 구조로 불리는 중간지주사 체제가 만들어진 것은 과거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했을 당시 매각 당사자가 중간지주사 설립을 요청해서였지, 정기선 부회장의 승계 여부와 무관하다”며 “HD현대그룹은 주주환원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반주주들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옥상옥 구조 해소 방안을 묻는 질의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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