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인양 계획 발표한 가운데 미국·스페인 권리 주장…선조가 금·은 채굴 볼리비아 원주민도 보상 원해
1708년 바닷속으로 침몰했던 스페인 범선 ‘산호세’호의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콜롬비아 정부가 1차 탐사 작업을 본격 개시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다. 산호세호 주변 해역을 ‘고고학적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콜롬비아 정부는 탐사 작업을 통해 300년 넘게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선체와 유물을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추후 진행될 2차 탐사에서는 이 유물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인양 작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건 유물의 가치다. 현재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유물은 금, 은, 에메랄드, 중국 도자기 등으로 현재 가치로 환산했을 때 무려 200억 달러(약 27조 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야말로 ‘보물선’인 셈이다. 보물을 둘러싼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는 나라들은 콜롬비아를 비롯해 처음 보물선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미국, 범선의 원래 주인이었던 스페인, 그리고 과거 보물을 채굴하는 데 노동력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카리브해 원주민들이다.
1706년 아메리카 대륙으로 마지막 항해를 떠났던 산호세호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 시절 스페인 함대에 소속되어 있던 범선이었다. 대포 64문에 세 개의 돛대가 달린 형태로, 그 당시 건조됐던 범선 가운데 가장 복잡한 구조를 자랑했으며, 규모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708년, 식민지였던 볼리비아, 페루 등지에서 채굴한 금, 은, 보석 등을 싣고 다시 스페인으로 향하던 중 카르타헤나 앞바다에서 맞닥뜨린 영국 함선과 해전을 벌인 끝에 참패했고, 그렇게 900m 바다 아래로 침몰하고 말았다. 선원 600명 가운데 생존자는 단 11명이었다.
그렇게 바다 아래 가라앉은 범선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무려 307년이 지난 2015년이었다. 당시 콜롬비아 정부가 “콜롬비아 해군이 산호세호를 최초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였다. 다만 국가안보문제라는 이유로 정확한 위치는 비밀에 부쳤다. 그동안 보물 사냥꾼들 사이에서 ‘난파선의 성배’라고 불렸던 산호세호를 찾기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범선과 함께 해저에 파묻혀 있다고 추정되는 보물은 200톤의 은을 비롯해 금화 1100만 개, 에메랄드 상자, 유리병, 중국 도자기 등이다. 현재 돈으로 27조 원의 가치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그 숫자가 다소 부풀려졌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실제 바다 아래 정확히 무엇이, 얼마나 가라앉아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저 추측만 할 따름이다. 이에 역사학자들은 당시 산호세호와 함께 항해했던 자매선인 ‘산호아킨’호를 주목하고 있다. ‘산호아킨’호는 페루에서 실은 약 17톤의 주화를 비롯한 여러 물품들을 싣고 스페인으로 무사히 귀환한 바 있다.
콜롬비아 해군 잠수부들이 촬영한 산호세호 사진을 보면 조류와 조개류로 덮인 뱃머리 일부와 선체 뼈대, 그리고 1655년 세비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포들과 비교적 잘 보존된 중국 도자기 식기, 장독, 유리병들이 있다. 최근 범선과 보물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발표한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앞으로 2년 안에 배를 복구하겠다”고 선포한 상황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첫 임기가 끝나는 2026년까지 적어도 배의 일부만이라도 육지로 인양하는 것이 목표라는 의미다.
이에 콜롬비아 문화부 장관인 후안 다비드 코레아는 “3세기 동안 물에 잠겨있었기 때문에 유물의 보존 상태가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면서 “먼저 몇 가지 조각을 조사한 후 전면적인 발굴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또한 “우리의 식민지 역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최대한 신속하게, 또 전문 기술을 동원해 탐사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유물을 단순히 값비싼 보물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물품들은 물에 잠긴 고고학적 유산이며, 콜롬비아에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유물을 연구하고 전시하기 위한 박물관과 연구소 건설 계획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정부가 본격적인 탐사 작업을 예고한 만큼 앞으로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콜롬비아, 미국, 스페인, 카리브해 원주민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카리브해 지역공동체 후손들, 특히 볼리비아의 카라카라 공동체 주민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금과 은을 채굴하는 데 노동력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면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새뮤얼 플로레스 원주민 지도자는 AFP 인터뷰에서 “상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에 더 많은 보상이 필요하다”면서 “우리는 그저 조상들이 평안하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보상 차원이 아닌 산호세호에 대한 권리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건 콜롬비아와 미국 그리고 스페인이다. 콜롬비아 정부가 범선을 처음 발견했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나선 미국의 탐사그룹이자 인양업체인 SSA는 “우리가 1980년대에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보물 가치의 절반에 해당하는 100억 달러(약 13조 원)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이유에서 현재 콜롬비아 정부를 상대로 상설중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SSA 측의 주장은 이렇다. 1981년 SSA의 전신인 ‘글로카 모라’가 콜롬비아 앞바다에서 난파선을 처음 발견했고, 이에 콜롬비아 정부를 상대로 인양 작업을 허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콜롬비아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SSA는 보물의 절반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는 조건으로 배가 위치한 좌표를 콜롬비아 정부에 넘겨야 했다.
문제는 이 좌표가 과연 정확한가에 있었다. 훗날 콜롬비아 정부는 SSA 측이 제공한 좌표를 탐사한 결과 산호세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15년, 콜롬비아 정부가 난파선을 다른 위치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깊어졌다. 이런 주장에 대해 SSA는 콜롬비아 정부가 발표한 위치가 자신들이 알려주었던 곳에서 불과 1.5~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사실상 같은 위치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콜롬비아 정부가 전부를 갖길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하지만 처음 배를 발견한 우리의 몫도 잊어선 안 된다”며 압박하고 있다.
스페인도 지분을 주장하고 나선 상태다. 스페인 정부는 이 배가 “스페인 국기를 달고 있으므로 엄연히 스페인 소유다”라는 입장이다. 비록 콜롬비아 해역에서 발견은 됐지만, 엄연히 스페인 함대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콜롬비아 정부는 “우리 영해에서 발견됐으므로 콜롬비아의 국가유산이다”라고 맞서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 달리 인양 작업이 뜻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비용도 막대하게 드는 데다 지금까지 따뜻한 열대 해역에서 산호세호와 같은 규모의 범선이 성공적으로 인양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해군 연구원인 알렉산드라 차디드 대령은 “물속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물 밖으로 나올 경우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콜롬비아 인류학 및 역사 연구소의 알헤나 카이세도 소장 역시 “잔해들이 산소와 접촉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 자체가 가능한지 조차 불확실하다”라고 우려했다.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산호세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비난하는 학자들은 이 탐사 작업이 어쩌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산호세호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보고타의 해양고고학자 리카르도 보레로는 “이 난파선은 이미 오랜 세월 주변 환경과 균형을 이룬 상태다”면서 “지금처럼 바닷속에서 쉴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다”고 주장했다. 보레로는 또한 배에 실린 물품들의 가치가 27조 원이라는 추정치 역시 과장됐다고도 말했다. 산호세호의 역사적 문서들을 살펴보면 그보다는 훨씬 적은 양의 물품이 실려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산호세호의 심장을 향해’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콜롬비아 정부의 1차 탐사 작업에는 450만 달러(약 62억 원)의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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