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지도부 단일대오 강조하며 분위기 쇄신 나서…3연속 참석 윤 대통령, 축하주 따라주고 ‘어퍼컷’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5월 30일 천안의 한 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 개회사에서 ‘선당후사’를 강조하며 한 말이다. 추 원내대표 뒤로는 ‘국민공감 민생정당 유능한 정책정당’이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었다.
#단합과 결속 강조한 지도부
워크숍에 불참한 의원은 없었다. 연수원 안은 흰 셔츠를 입은 108명 국민의힘 의원으로 붐볐다. 분위기는 어둡지 않았다. 의원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 오후 2시 워크숍이 시작됐다. 의원들이 행사장 안에 착석했다. 취재진들은 행사장 빈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의원들과 기자들의 수는 서로 엇비슷했다.
국민의례가 시작됐다. 행사장 내부가 엄숙해졌다. 국민의례가 끝난 다음 추경호 원내대표가 단상에 올랐다. 추 원내대표는 “다음 선거에서 기호 2번에서 기호 1번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제일 중요한 화두는 단합과 결속이다. 쉬운 말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똘똘 뭉쳐서 국민의 공감을 얻는 민생 정당, 유능한 정책정당으로 가자고 했다. 이러한 모습으로 신뢰를 얻을 때 국민으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는 굳어있는 의원들을 풀어주기 위해 연신 박수와 환호성을 유도했다. 추 원내대표는 못내 아쉬웠는지 발언 중간 “박수 소리가 커야 한다”고 말했다. 발언 마지막에는 구호를 외치자고 제안했다. 추 원내대표가 “똘똘”이라고 말하자 의원들이 “뭉치자”고 외쳤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도 단일대오를 강조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전날인 5월 29일 채 해병 특검법 재표결에서 이탈 표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두고 “21대 선배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그 단결, 그것은 참 놀라운 것”이라며 “그렇게 뭉칠 수 없는 여러 사정이 있었는데도 굳건히 뭉쳐서 국민들에게 마지막 감동을 선사했던 것을 이어받아 이제부터는 우리가 더 굳건히 뭉치는 우리 당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108석은 굉장히 큰 숫자”라며 “또 우리는 여당 아닌가, 우리 뒤에는 대통령이 있고, 우리 옆에는 정부의 모든 기구가 함께 하기 때문에 정말 강력한 정당이라 생각한다. 절대 용기나 힘을 잃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총선 참패에 의기소침해 있을 의원들을 격려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추 원내대표와 황 비대위원장의 당부와 격려의 말이 끝나자, 의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지만 환호성은 크지 않았다.
유명세를 타는 의원들은 화장실 갈 틈도 없어 보였다. 쉬는 시간 행사장 바깥으로 나온 나경원 의원에게는 십수 명의 기자들이 달라붙었다. 조정훈 의원은 연신 동료 의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기자들이 접근할 틈이 없을 정도였다. 윤상현 의원은 막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카메라가 윤 의원을 둘러쌌다. 나경원 윤상현 의원은 전당대회 출마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초선 의원들이 선배 손에 이끌려 인사를 나누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의원들의 속마음은 마냥 편안하지는 않아 보였다. 선거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 중진 의원은 “패닉에 가까운 패배였다”며 “국민들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만큼 확실한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들도 총선 패배에 대한 면밀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과 윤석열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쳐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도 했다.
표정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소연한 의원도 있었다. 한 초선 의원은 “웃는 얼굴을 하면, 당이 선거에서 졌는데 웃느냐고 물어본다. 어두운 얼굴로 있으면 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냐고 물어본다. 어떤 표정으로 있어야 할지 난감했다”고 귀띔했다.
이후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시작됐다. 강연은 김명주 서울여대 교수의 ‘인공지능 기술과 규제 트렌드’,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의 ‘위기와 극복, 그리고 혁신’, 권영세 의원의 ‘슬기로운 의정생활’ 순으로 진행됐다.
인 전 비대위원장은 강도 높은 쓴소리를 했다. 인 전 비대위원장은 “선거가 코앞인데 (김기현) 대표를 바꾸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세웠다”며 “비대위원장이 구의원 선거도 안 해본 사람”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에 대해서는 “대통령 임기 중에 있는 선거는 두말할 것도 없이 (대통령) 중간평가”라며 “그러면 대통령실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 평가가 30%대, 부정 평가가 60%이니 (참모들이) 긴장했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일부 의원들은 인 전 위원장의 발언 도중 박수를 보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인 전 위원장 강연은 약 80분 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자리를 비우는 의원은 적었다. 한 친윤계 의원은 인 전 비대위원장의 강연이 끝난 다음 “인 전 위원장의 말은 다 맞는 말이라고 본다”고 했다.
5선 권영세 의원은 인 전 비대위원장이 자신의 강연 시간을 뺏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말에 의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권 의원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의 사례를 열거했다. 그리고 이 역경을 이겨낸 원동력은 의원들의 협력과 단결이라며 의원들에게 단일대오를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권 의원은 “친윤(친윤석열), 친한(친한동훈) 등 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데 그런 식의 구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지양할 필요가 있다”며 “의원 하나하나가 헌법기관이라면서 ‘오야붕(두목의 일본어)’ ‘꼬붕(부하의 일본어)’처럼 따라다니는 모습은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대통령실과의 긴밀한 협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정부가 불편한 이야기를 할 때는 정부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야당 생활을 오래 겪어보면 정부와 대통령이 우리 편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권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나경원 의원이 갑자기 발언권을 요청했다. 나 의원은 권 의원의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관련 발언에 부연설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 의원은 “누가 나가도 20% 이상 지는 어려운 사정이었다. 저도 안 나간다 했는데 당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가 너무 망하면 당이 폭망한다고 했다”며 “진짜 열심히 했다. 사실 당시 20%에서 3% 차이로 붙었다가 7% 차이로 졌다”고 강조했다.
연수원에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저먼 셰퍼드 여러 마리가 현관 앞을 지켰다. 오후 6시경 윤 대통령이 의원 만찬 행사에 참석한다는 공지사항이 내려왔다. 윤 대통령은 매년 국민의힘 워크숍에 참석했다. 이번이 세 번째 참석이다.
6시 30분경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수석들이 삼엄한 경호 속에서 행사장에 들어왔다. 윤 대통령은 만찬 자리에서 “지나간 건 다 잊어버리고 우리가 한 몸이 돼서 나라를 지키자”며 “나라를 개혁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그런 당이 되고 저도 여러분과 한 몸으로 뼈가 빠지게 뛰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있었던 의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당선인 108명에게 맥주를 따라줬다. 특유의 어퍼컷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의원들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자 워크숍 일정상 대통령과의 시간을 연장하기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대통령과의 만찬이 끝난 다음 의원들은 지역별 간담회를 진행했다. 의원들은 지역별로 분위기가 천차만별이었다고 했다. 수도권 의원들이 있었던 방은 침울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초선 의원은 수도권 지역 의원들은 당 쇄신 방법과 앞으로의 전략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했다. 다른 지역 간담회에서는 대부분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 지역별 간담회가 길어지면서 지도부와 기자들의 상견례 자리가 늦춰지기도 했다.
#국민의힘 1호 법안은?
이튿날인 5월 31일 아침 8시 전날 새벽까지 뒤풀이 자리에 참석했던 의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아침을 먹고 있었다. 의원들은 1호 법안 선정과 당 쇄신 방안에 대해 대화하고 있었다.
이날 국민의힘은 1호 법안으로 ‘민생공감 531 법안’을 발표했다. 법안에는 △저출생 대응 법안(6개) △민생 살리기 패키지 법안(10개) △미래산업 육성 패키지 법안(8개) △지역균형발전 패키지 법안(3개) △의료개혁 패키지 법안(4개)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민의힘은 저출생 문제 해법으로 부총리급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을 약속했다. 늘봄학교를 확대 시행하고, 관련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도 입법하겠다고 했다. 이 밖에 출산휴가와 난임치료휴가 기간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생 살리기 패키지 법안으로는 양육 의무를 다하지 못한 친부모가 자녀 유산을 상속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이른바 ‘구하라법’ 재추진을 약속했다. 구하라법은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서 자동폐기됐다. 이 밖에도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유예 기간 추가 연장 등의 내용이 담겼다.
원자력 산업과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국민의힘은 미래산업 육성 패키지 법안에는 원자력발전소 수출 등 원전산업 지원을 위한 지원, AI 산업 진흥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입법하겠다고 밝혔다.
지역균형 패키지에는 △기회발전특구를 설치하고 입주한 중소기업에 세제 혜택 제공 △5년 단위 지역과학기술혁신계획 수립 및 정부의 행정·재정 지원 △국가와 지자체가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 사업 공동 추진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 담겼다.
의료개혁 패키지에서는 △지역의 필수의료인력 및 관련 인프라 확충 △지역필수의사제 도입과 지역의료발전기금 신설 △국립대 병원 관할 부처를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 △필수 의료행위에 대한 형 감면 △PA 간호사(임상전담간호사) 제도화 등이 포함된 간호법 제정 등을 약속했다.
정점식 정책위의장은 “대한민국 미래를 생각하는 법안이다. 21대에서 야당이 반대해서 성사되지 못했지만, 앞으로 야당과 협의해서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수정해서라도 민생을 챙기고,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로 이 같은 1호 법안을 상정했다”고 설명했다. 정 정책위의장은 “정부와 협의를 거쳤고, 정부 의견을 다 듣고 정부의 이의 없는 부분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모시고 여러 말씀을 들었다. 많은 의원께서 공감했다. 의정활동의 방향성에 대한 것을 생각하는 시간 가졌다”며 “쇄신과 관련해서는 비대위원장께서 여러 의견 듣고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지도부가 꾸려지고 나면 여러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실행해 나가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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