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 주공 ‘학령인구 감소’ 이유 부적절 결정에 입주민 분노…“단순히 ‘학교 총량’ 줄이면 합리성 떨어져”
무산 소식이 들려온 것은 중학교다. 당초 2014년 8월 서울시교육청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둔촌주공 재건축조합과 ‘학교용지 기부채납 협약’을 맺고 단지 안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병설유치원 등을 신설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2020년 교육부가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중앙투자심사에서 중학교 신설에 대해 ‘부적절’ 결정을 내렸고, 현재까지 최종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초등학교는 원래 단지 안에 있던 둔촌초·위례초 등 2곳(현재 휴교 상태)이 2025년 3월 다시 문 열고 학생 약 2500명을 받을 예정이지만 중학생은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입주 예정자들은 인근에 있는 둔촌2동 한산중학교를 단지 안으로 이전해달라는 요구도 내놨지만 현지 주민과 학부모들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한산중학교의 분교 형태인 ‘도시형 캠퍼스’를 중학교 계획부지에 설립하는 안을 추진하던 중 서울시가 해당 용지를 ‘공공 공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사실이 지난 5월 말 알려졌다. 공공 공지는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땅으로 향후 입주 진행 과정에서 용도를 정해 시설을 설립할 수 있다.
입주 예정자들은 정부의 이 단지 중학생 수(미래) 추산에 큰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2020년 교육부의 중앙투자심사 당시 참고한 이 단지 내 예상 학령기 인구 ‘1096명’은 ‘2023년 2월 이전 계약자’를 기준으로 추정한 것으로, 2028년 개교를 기준으로 산정하면 ‘최소 3000명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강동구청도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강동구청은 5일 보도자료에서 “최근 실거주의무가 3년간 유예되면서 전세 물량이 급증하고 있어 조합원, 수분양자, 세입자들의 입주 완료 시점인 2025년 3월이 돼야 그나마 구체적인 학령아동수를 가늠할 수 있다”며 “입주까지 남은 기간이 6개월로, 현시점에서 서울시가 학교 용지를 공공공지로 변경할 경우 학교 설립 수요가 있음에도 학교 설립이 불가능하게 될까봐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입주 예정자들은 당초 단지 내 동별 층수 등을 설계할 때부터 중학교가 들어설 것을 전제로 이뤄진 점을 강조하며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지민환 올림픽파크포레온 입주예정자협의회장은 ‘일요신문i’에 “입주자들이 당연히 학교가 들어올 것으로 알고 청약했고, 학교 예정 부지 주변 동은 일조권 때문에 (층수가 낮은)꼬마동으로 짓고 있다”며 “꼬마동은 입주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다니기 좋겠다는 판단에 계약한 분들도 있을 텐데 통탄할 노릇”이라는 목소리를 높였다.
저출생 심화로 학령 인구가 빠르게 줄면서 학교 신설이 무산되는 일이 신규 택지나 재건축·재개발구역 등에서 속출하고 있다.
충청권 대표 인구 증가 도시인 충남 아산에서는 탕정 테크노 일반산업단지 2공구(지원단지) 내 초등학교 신설이 계획됐다가 지난해 10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에서 재검토 결정을 받아 인근 ‘탕정 푸르지오 리버파크’ 아파트(2026년 7월 입주) 입주 예정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에서는 둔촌주공 사례처럼 학교 신설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사례가 매년 수십 건씩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i’가 교육부로부터 받은 ‘최근 3년간(2021~2023년) 중앙투자심사 제출 대비 승인 건수’ 통계를 보면 전국 17개 시·도가 제출한 총 255건 중 177건만 승인 처리됐고, 78건(30%)은 통과되지 못했다.
특히 신규 택지나 신도시가 많은 경기·인천·충남 등에서 미승인 건이 많이 나오고 있다. 경기도가 전체 101건의 신청 건 중 20건, 인천은 24건 중 9건, 충남은 27건 중 7건이 교육부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부정적 판정 사유로는 △학교 설립 수요 없음 △학군조정계획 확정 후 추진 △학생배치계획 재검토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 후 추진 △부지위치 재검토 등이 제시됐다.
시도 교육청, 지자체 등 관계 기관에 의해 학교 대신 다른 시설로 부지 용도가 전환되는 사례도 많다. 총 3000세대 이상이 입주할 서울 서초구 재건축구역 ‘방배5구역(디에이치방배)’은 당초 초등학교 부지가 배정됐지만 교육청 차원에서 ‘신설 불가’ 판단을 내려 체육시설 조성으로 계획을 바꿨다. 6000세대 규모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도 앞서 중학교 용지를 공공 공지로 전환했다.
정부나 지자체, 교육당국이 학교 신설을 주저하는 데는 심각한 저출생으로 향후 ‘텅 빈’ 학교가 속출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규모 신도시나 혁신도시 조성, 재개발·재건축 등이 정책적 관리와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단순히 ‘학교 총량’을 줄이는 기조는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구 증가 지역의 ‘콩나물시루 교실’ 문제나 원거리 통학 문제가 향후 ‘사회 문제’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학교 신설과 통합, 이전 등에 보다 유연하면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전체적으로 저출생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신도시나 재건축 단지에는 대규모로 학생 인구가 증가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학교를 줄이는)전체적 기조와는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며 “학생 수가 줄어든 지역의 학교를 신도시나 재건축 단지로 이전한다든가 대체하는 방식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재건축 단지는 인근에 기존 학교들이 있기 때문에 분산 배치되는 경우도 있고, 각 시도 교육청에서 학생 유발이 얼마나 되는지를 기준으로 설립 계획을 세우는 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신도시는 학교가 아예 없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를 신설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학교 수가 감소 추세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오히려 (전체)학교 수는 지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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