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용산, 무응찰·단독입찰 속출…조합 “건설사 간 나눠먹기” 의혹 제기에 “경쟁 체제 여전” 반박
조합이 입찰 공고에 내건 공사비는 1평(3.3㎡)당 830만 원. 조합 관계자는 “정비사업 공사비가 2~3년 전 평당 500만 원 수준이던 것에 비해 굉장히 많이 올렸음에도 건설사들이 도무지 꿈쩍하지 않는다”며 “몸을 사리는 것인지, 공사비를 더 올리라는 무언의 갑질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동안 재건축·재개발 사업성이 상대적으로 좋은 곳으로 분류돼온 서울 강남권과 용산구 한강변 등에서 최근 시공사 선정이 유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여러 건설사의 ‘수주 경쟁’이 예상된 곳 중 상당수가 입찰을 2~3차례 거듭하다 간신히 1개 건설사 ‘단독 입찰’로 마무리하고 있어, 건설사들이 출혈 경쟁을 피하려 ‘사업장 나눠먹기’에 나섰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강남구 개포주공5단지 재건축조합은 지난 4월과 5월 진행한 두 번의 입찰 모두 대우건설 1곳만 참여해 유찰 처리됐다. 입찰 공고에 제시된 평당 공사비(예정)은 840만 원이었다. 강남구 도곡개포한신 재건축조합은 지난 3월 평당 공사비 920만 원을 내걸고 1차 시공사 입찰에 나섰는데 아무도 참여하지 않은 ‘무응찰’ 기록을 냈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12차 재건축조합은 두 번 입찰에 롯데건설 1곳만 단독 응찰해 수의계약으로 전환했다. 인근 신반포27차 재건축조합은 1차 입찰에서 참여자가 1곳도 없자 공사비를 평당 908만 원에서 958만 원으로 5% 올렸다. 2차에 단독 입찰한 SK에코플랜트와 수의계약 체결이 예상된다. 평당 950만 원을 제시한 용산구 신용산역북측제1구역 재개발조합도 두 번의 유찰 후 3차에 단독 입찰한 롯데건설과의 수의계약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내 핵심지역에서 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거의 사라진 최근 현상은 건설사들의 사업장 ‘옥석 가리기’가 더욱 엄격해졌음을 드러낸다. 수주가 확정된 다음에도 조합과 시공사가 추가 공사비 인상 등으로 갈등을 빚다 착공이 지연거나 공사비 수급이 난항을 겪는 일이 발생하다 보니 건설사들의 사업장 선별 기준이 더욱 까다로워지는 추세다.
한 유명 건설사 관계자는 “정비사업장의 사업성이란 곧 조합원들이 공사비를 감당할 여력과 연결되는데 높아진 공사비를 부담할 여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고 있어 건설사들은 확실히 공사비를 받을 수 있는 현장만 취사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전직 임원 A 씨도 “건설사들이 재개발·재건축에 사업비를 투입했다가 물려버리고 사업 진행은 안 되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다 보니 건설사끼리 경쟁까지 해가면서 ‘제 살 깎아먹기’를 할 생각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상 못 한 유찰 사태에 당황한 정비사업 조합들은 건설사들이 경쟁을 자제하는 수준을 넘어 입찰 현장을 사실상 배분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1차 입찰 때부터 1개 건설사가 단독으로 참여하는 사례가 늘자 더욱 의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아무래도 건설사들이 누가 어느 현장에 들어갈지 다 판을 짜고 있는 것 같다”며 “(경쟁이 적다보니)관심을 보인 건설사는 단순히 공사비를 받고 공사만 해주려는 게 아니라 감 나와라, 배 나와라, 이것저것 간섭도 많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현실적으로 불가한 일이라며 조합들의 의혹을 일축한다. 눈에 띄는 수주 경쟁을 벌이는 사업장 수가 줄어든 것일 뿐 인기 사업장을 따내기 위한 경쟁 체제는 여전하다는 반응이다.
한 대형 건설사 홍보팀장 B 씨는 “시공사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조합 입장에서는 그런 추정을 할 수 있지만 건설사 입장에서는 사업성이 좋은 현장이 있다면 당연히 서로 경쟁해 다투는 것이 기본”이라며 “건설사마다 각 현장의 사업성을 분석하는 기준에도 차이가 꽤 있어 집단적인 ‘교통 정리’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무응찰이나 단독 입찰이 이뤄지는 ‘비인기’ 사업장도 현장설명회에 5~10개의 많은 건설사가 참석하는 패턴을 보면 ‘사전 분배설’은 더욱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록희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겸임교수는 “현재는 건설사들이 서로 담합해 사업장을 나눠 가진다기보다는 각자 간을 보다가 해당 현장에 더 오래 공을 들인 건설사가 누구인지 판단하며 자연스레 봐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상대적으로 늦게 뛰어들어 2~3배 공력을 쓰느니 차라리 경쟁사가 없는 사업장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론적으로)만약 몇 개 인기 건설사가 정말 담합해 사업장을 몰아주기하려 한다면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내부 관계자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주제로, 건설사들의 설명에 기대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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