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이어 13년 만에 부부합작 시너지 폭발…“가장 큰 변화는 사랑하는 가족이 생겼다는 것”
“저도 ‘원더랜드’ 같은 세상이 있다면 정말 들어가 보고 싶거든요. 제가 많이 보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곳에서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안아주고 싶어요. 꿈에서만 보는 우리 외할머니도요. 꼭 한 번 다시 볼 수만 있다면.”
바이리의 어린 딸은 엄마가 그저 멀리 어딘가로 일하러 갔다고 믿고 AI 바이리와 영상통화로 애정을 나눈다. 늘 바쁘기만 했던 실제 바이리와 달리 AI 바이리는 딸에게 자신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게 하려는 듯 한없이 다정하고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만들어진 모정과 닿지 않는 실체 사이에 선 바이리를 연기하기 위해 탕웨이는 무엇보다 ‘정’이라는 감정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정이란 감정을 정확히, 그러면서도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데 집중했어요. 또 중간에 그의 감정에 변화가 있을 때도 어떻게 하면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죠. 사실 많은 장면에서 눈물이 자꾸만 자연스럽게 나오려고 했는데요, 그때마다 감독님이 ‘그거 안돼, 다시!’(웃음). 그래서 최대한 감독님이 요구하고 원하는 지점에 다다르려고 노력하고, 그게 완벽하지 않아도 감독님이 편집할 수 있다면 그 방향으로 따라갔던 것 같아요. 배우는 감독님의 도구니까요(웃음).”
진실을 알지 못하는 어린 딸에 대한 모정과는 다른 결로, 바이리는 그의 엄마 화란과도 가슴 아픈 가족애와 정을 그려낸다. 엄마와 함께하는 신을 찍을 때마다 감정 없는 AI를 연기하면서도 자꾸만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는 탕웨이는 화란 역의 배우 니나 파우를 향해 “눈만 보면 이미 제 마음속에 와닿는 능력을 가진 배우”라며 엄지를 치켜 들었다.
“홍콩에서 굉장히 훌륭하고 유명한 배우님이에요. 영화 ‘크로싱 헤네시’(2010)라는 작품에서 제 상대역의 어머니 역으로 출연하셨는데 그때 너무 인상 깊어서 꼭 다시 함께 일하고 싶었죠. 이번에 감독님이 어떤 배우를 캐스팅할지 물어봤을 때 그분을 바로 추천했었어요. 제가 그분과 인연이 깊다고 여겼던 게, 저희 친어머니를 아시는 분이 영화를 보고 ‘이 어머니 역 배우는 너희 엄마와 정말 많이 닮았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거예요. 이런 것도 인연이 아닐까요(웃음)?”
탕웨이가 연기에서 상대 배우들의 에너지를 받아 더 큰 시너지를 만들어낸 것처럼, 김태용 감독도 탕웨이의 도움으로 좀 더 ‘직감적인’ 연출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첫 만남이었던 영화 ‘만추’(2011) 이후 13년 만에 함께한 ‘원더랜드’는 부부의 합작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김 감독은 아내로서가 아닌 배우로서 탕웨이의 직감을 믿고 ‘원더랜드’를 더욱 구체화시켰다고 했다.
“감독님은 제 직감을 굉장히 믿는 편이에요. 저는 직감동물이거든요(웃음). 제 작곡가 친구도 항상 곡을 만들고 나면 ‘직감적으로 어떻냐’고 제게 물어봐요. 어떻게 보면 제가 ‘테스트 머신’ 같기도 한데요(웃음). 이번 작품에서도 감독님이 대사를 쓰시고 ‘이거 어때요?’하고 보여주시면 그 인물대로 감정을 몰입한 뒤 읽어봤어요. 그러다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찾아서 ‘이건 좀 안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씀드릴 때가 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를 처음 찍을 때부터 그런 것 같네요.”
‘만추’로부터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한 시간이 지난 뒤, 새로운 작품으로 마주하게 된 김태용 감독은 탕웨이의 눈에 어떻게 비쳐 보였을까. 어떤 세계를 향해서든 소년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김 감독은 탕웨이에게 있어 “늘 다음이 궁금해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김 감독이 보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를 함께 탐색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원더랜드’ 역시 행운처럼 느껴진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만추’는 감독님이 가장 잘하시는, 그때의 장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후에는 감독님도 삶의 어떤 경험이나 현실에서 느끼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며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과정들이 있었겠죠. 예전엔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만 했다면 지금은 시간이 흘러서 그것에서 벗어나 또 다른 것들을 하고 싶어하셨던 것 같아요. 표현과 탐색을 거부하지도, 이전에 비해 두려워하지도 않는 게 달라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더 ‘이 감독님의 다음 작품은 뭘까, 다음 단계는 어떤 길로 갈까’하며 기다려지는 것 같아요.”
김 감독만큼이나 탕웨이 역시 그 시간 동안 이룬 스스로의 변화를 누구보다 선명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이 생겼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낳았다.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마주하는 세계는 더욱 넓어지고 풍부해졌다.
“‘만추’는 2009년에 촬영했고, ‘원더랜드’는 2021년에 촬영했는데 가장 큰 변화를 생각해 본다면 제가 결혼해서 아이가 있다는 것이겠네요(웃음). ‘만추’ 촬영 때 저는 그리스를 여행 중이었는데 마침 아테네 신전을 보러 갔을 때가 제 생일이었어요. 그날 하늘에 정말 큰 달이 떴는데 그걸 보며 울고 있었죠. ‘나 서른 살이나 됐는데 남자도 없고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네, 너무 슬프다’하면서요(웃음). 그땐 그랬는데 ‘원더랜드’ 촬영 땐 제게 힘을 주는 사람들, 가족이 있었어요. 배우로서도 가정이란 따뜻함이 정말 든든하게 느껴져요. 이제 영화만이 제 세계가 아닌 것이니까요. 그게 가장 큰 차이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탕웨이가 곧 시네마’라고 곧잘 말한다. 그만큼 배우로서 시대와 국경을 넘어 많은 사랑을 받아온 탕웨이가 더욱 넓어진 그만의 세계 속에서 또 어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지에 너무나도 당연한 기대들이 모인다. 2007년 ‘색, 계’와 2011년 ‘만추’, 2022년 ‘헤어질 결심’ 그리고 ‘원더랜드’에 이르기까지 매번 시네필들에게 기분 좋은 기다림과 그에 따른 만족감을 안겨주었던 탕웨이의 다음 발걸음은 어느 곳을 향해 옮겨질까.
“시나리오를 직접 고른다기보단 감독님이 ‘이걸 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이 먼저 오는 식이에요. 배우는 피동적이거든요(웃음). 배우로서 제일 중요한 건 충전을 잘 시켜 놓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열심히 나라는 사람의 충전을 완전히 시켜 놓고 있으면 어떤 시나리오가 와도 그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되는 거죠. 제일 좋은 건 어떤 걸 하나 찍으면 그 다음엔 다른 걸 찍는 것일 테지만, 사실 그런 걸 염두에 두진 않아요. 그저 그 상황에 ‘이거 너무 좋은 시나리오다’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선택하게 되거든요. 당연한 바람이 있다면 더욱 우수하고 훌륭한 영화인들과 많은 작업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배우들에겐 무엇보다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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