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룰개정 등 유리한 고지 점했지만 용산과 대립 부담…친윤계, 나경원 원희룡 등 대항마 찾기 분주
하지만 변수는 있다. 여권 주류인 친윤 진영 스탠스도 그 중 하나다. 한 전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는 배신자 프레임을 내세우면서 보수층을 향한 심리전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여기에 한 전 위원장 대항마 찾기도 빨라졌다. 현행 단일지도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바꾸는 논의까지 나왔는데, 이 역시 한 전 위원장을 겨냥한 포석으로 읽힌다.
#본격적인 몸 풀기
국민의힘은 파리올림픽 개막 이전인 7월 23일~25일 사이에 전당대회를 개최하기로 잠정 확정했다. 또한 당 대표 선출 규칙도 바꾸기로 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개정특별위원회는 6월 5일 당원투표로만 당 대표를 선출하는 현행 규정을 고쳐 일반국민 여론조사 방식으로 민심을 반영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여상규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5일 당사에서 열린 회의 후 브리핑에서 “당원투표 100%가 잘못됐다는 것에는 의견 일치가 됐다”며 “비율에 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밝혔다. 회의에서는 민심 반영 비율을 놓고 20∼30% 또는 50%로 위원들 간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파악됐다.
현행 규정인 ‘당심 100%’는 2023년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윤(친윤석열)계를 중심으로 밀어붙인 경선 룰이다. 이 규정에 따라 김기현 의원이 대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총선 참패 후 민심과 당심이 함께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으며 이제 규정 개정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민심 반영 비율을 높이면 인지도가 높은 한 전 위원장에게 유리하는 분석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당대표로 당선됐던 2021년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도 팬덤층이 강한 이 의원이 당심에서는 나경원 의원에게 밀렸지만 민심에서 앞서며 승리한 바 있다. 당시 룰은 당심 7, 민심 3이었다. 이런 연장선에서 민심 반영 비율이 올라갈 경우, 정치적 팬덤층이 형성돼있는 한 전 위원장 득표율이 크게 올라간다는 게 정치권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 출마 의지를 다지고 있다는 정황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가 “나라를 위해, 또 누구를 위해 해야 할 것 같으면 한다”는 각오까지 드러냈다는 소식도 5월 31일 나왔다.
한 전 위원장은 발언 내용이 전해지기 전날 가수 김흥국 씨와 만찬을 했는데 “저는 할 말은 하는 사람이고, 그 다음에 싸움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김 씨가 TV조선 유튜브에 출연해 밝혔다. 이날 만남은 총선에서 국민의힘 지원 유세를 했던 김 씨에게 한 전 위원장이 전화를 걸어 이뤄졌으며, 서울 종로 한 한정식집에서 2시간가량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 위원장은 총선 참패 이후 칩거에 들어갔다가 태세를 전환, 워밍업을 거쳐 최근엔 본격적으로 몸을 풀고 있다. 동네 도서관에 나타나 대중들에게 사진을 찍히는 간보기 정치에 이어 해외 직구 규제, 그리고 지구당 부활 등 여러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전하면서 정치 재개 의지를 다지고 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 말이다.
“이번 전당대회에 안 나오고 계속 쉰다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식사정치도 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도서관에 나타나 사진을 찍히거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은 자신이 지난 총선을 지휘한 만큼 현역 의원들이 자신을 도울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승산을 높게 보고 지금은 굳히기 단계라고 판단할 것이다.”
#뒤집기 가능성 남아
친윤계에선 ‘한동훈 비토’ 기류가 역력하다. 한 전 위원장에 대한 경계심이 크게 형성되고 있으며 ‘반한 세력’으로 뭉쳐지는 양상이다. 용산과 각을 세웠던 한 전 위원장이 당권을 잡으면 용산과의 차별화를 통해 자기 정치를 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는 한동훈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나설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지만, 친윤계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윤이 결집, 한 전 위원장에 맞설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고 본 그는 한 전 위원장 대항마로 황우여 비대위원장 카드까지 내밀었다.
신평 변호사는 6월 4일 YTN 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 승부’에서 “한동훈 전 위원장이 반드시 출마할 것이지만 그 경우 친윤이 단일 세력을 형성해 하나의 대표자를 내세울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며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승부가 이루어지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진행자가 “김기현 대표 선출 때처럼 윤심이 작동할 가능성은 있는가”라고 묻자 신 변호사는 “충분히 있다. 윤심이 작용한다기보다도 친한 세력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친윤을 중심으로 뭉쳐 대표자를 한동훈 위원장 대항마로 내세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황우여 비대위원장이 윤석열 정부가 상대해야 했던 어떤 대표들보다도 더 국민의힘을 잘 이끌어 나가고 있다”며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면 황우여 비대위원장을 차기 당대표로 옹립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거리가 부쩍 가까워진 홍준표 대구시장도 연일 ‘한동훈 때리기’에 나섰다. 용산이 ‘반 한동훈’ 기조라는 정치적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 최근 ‘대통령 보호론’을 강조하고 있는 홍 시장은 지속적으로 ‘자격 미달론’을 내세우며 한 전 위원장을 비판하고 있다.
홍 시장은 5월 24일 페이스북 글에서 “한 번 임명직으로 당을 지휘하다가 그 밑천이 드러나 정권 2년 차 중차대한 총선거를 망친 사람을 또다시 선출직으로 맞아들인다면 이 당(국민의힘)에 미래는 없다”고 말하면서 한 전 위원장을 직격했다.
홍 시장은 이에 앞선 5월 21일에도 페이스북 글을 올려 “우리를 지옥으로 몰고 간 애 앞에서 모두 굽실거리며 떠받드는 거 보고 더더욱 배알도 없는 당이라 느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때 야당을 향한 이른바 ‘적폐수사’ 지휘 선상에 있었던 한 전 위원장을 정면으로 겨눈 발언이었다.
친윤계는 한 전 위원장에 대한 보수 진영 지지세가 피로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6월 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에서 한 전 위원장 당 대표 출마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42.3%, ‘반대한다’는 응답은 49.1%로 찬반 의견이 오차범위 내였지만 일단 반대가 더 많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표와 수석최고위원을 동시 선출하는 2인 지도체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렸는데 이 역시 ‘보험용 전술’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한 전 위원장이 당권을 잡을 것에 대비해 지도부에 견제용 인물을 앉혀놓으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한 전 위원장이 일단은 가장 유력하다”면서도 “그러나 야권의 독주가 계속되는 가운데 한 전 위원장이 대표가 되면 당과 대통령실이 반목하며 여권이 분열할 것이라는 보수 지지층의 걱정이 많다”며 “한동훈 대세론이 의외로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다.
#흔들리는 '어대한'
6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여당 내에서는 ‘어대한’ 쪽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러나 한동훈 대세론이 정점을 찍었던 5월말과는 확연히 다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총선에서 진 후 한동훈 말고 누가 당을 구할 수 있겠느냐라는 위기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황우여 비대위 출범 후 어느 정도 안정이 됐고, 총선 패배 후유증에서도 조금 벗어났다”면서 “한동훈 대세론은 공고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 중심으로 국정을 이끌고 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점도 ‘어대한’의 리스크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하는 국정브리핑을 신설하고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보수의 트레이드마크인 강한 나라를 천명했다. 당에 대한 그립감을 놓지 않겠다는 뜻 역시 여러 차례 천명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재선 의원은 “강력한 경쟁 후보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동훈 대세론이 강하지만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보고 움직이는 것”이라며 “22대 국회 개원 초반 벌어지고 있는 야권의 힘자랑이 여권의 총결집을 요구하는 여론으로 흐른다면 용산과 코드가 맞는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 나타나고 그가 당권을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권에서는 한 전 위원장 대항마로 나경원 의원이 가장 유력하고,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차선이 될 걸로 보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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