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 모든 선수의 꿈…팀의 가을야구가 먼저”
해마다 무섭게 성장하던 강백호에게 슬럼프가 찾아온 건 2022, 2023시즌. 부상과 부진 등으로 각각 62경기 타율 0.245 6홈런, 71경기 타율 0.265 8홈런에 그쳤고 야구 외적인 논란 등으로 비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24시즌의 강백호는 큰 변화를 이뤘다. 먼저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6월 6일 현재 강백호는 61경기 83안타(3위) 17홈런(2위) 55타점(1위) 45득점(공동3위) 타율 0.324 OPS 0.946을 기록 중이다. 그리고 수비가 외야수나 1루가 아닌 포수로 출전 중이다. 강백호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2024시즌 변화의 배경을 알아봤다.
강백호에 지난 두 시즌과 달리 올 시즌 성적 상승의 요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별다른 변화는 없다고 설명했다.
“크게 변한 건 없다. 이전에 부진했던 건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탓이다. 좋지 못한 몸 상태로 시즌을 준비하다 보니 시즌 성적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는데 올 시즌을 앞두고 건강한 몸 상태로 시즌을 준비했던 게 좋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크게 변한 게 없다고 말하지만 강백호의 올 시즌 가장 큰 변화는 ‘포수’다. 강백호는 지난 3월 31일 대전 한화전 당시 포수 마스크를 썼다. 고교 시절 포수로 활약했지만 프로에서는 외야수와 1루수를 봤기 때문에 강백호의 포수 전향은 적잖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포수 마스크를 쓰면서 강백호는 타석에서 성적 지표가 수직 상승했다.
“포수를 맡은 게 터닝 포인트가 된 건 맞다. 지명타자로 나서면 방망이에 대한 부담을 갖게 되더라. 그러다 수비로 포수 마스크를 쓰고 투수들과 호흡에 더 집중하는 게 타석에서도 힘을 내게 한다.”
강백호는 투수에게 사인을 낼 때 자신이 그 투수를 상대한다고 가정하고, 그 투수가 어떤 코스에 어떤 공을 던질 때 공략하기 어려운지 미리 분석한 다음 사인을 낸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올 시즌 강백호는 어떤 계기를 통해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된 걸까.
“어느 날 (이강철) 감독님이 방으로 나를 부르셨다. 수비 관련해서 대화를 나누다 내게 어떤 고민이 있냐고 물으시길래 나는 어느 포지션이든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감독님이 맡겨주신다면 1루도 볼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감독님이 혹시 포수도 가능한지 물으셨고, 나는 포수든 투수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대답했는데 그다음 날 바로 포수 마스크를 쓰고 수비를 보게 됐다. 그때가 8회였고, 우리가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감독님이 나를 보시곤 '너 포수 나갈 수 있느냐'고 물어보셔서 '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해서 올 시즌 포수를 맡기 시작했고, 매 경기는 아니지만 팀 상황에 따라 포수로 수비를 보고 있다.”
강백호가 이강철 감독에게 “1루든 포수든 투수든 다 할 수 있다”고 말한 건 진심이었다. 팀을 위해서라면 어떤 포지션이라도 맡으려 한 것이다.
그는 포수로 야구를 하는 게 신기하다고 말한다.
“2019년과 2021년 두 차례 포수 마스크를 쓴 적이 있다. 그때는 일시적인 거라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은 포지션이 정해진 터라 묘한 기분을 느낀다. 마치 인터넷 게임을 하는 것처럼 프로 선수들이 내 앞의 타석에서 타격폼을 잡고 제구 잘된 공을 홈런으로 만들어내는 장면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내가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때 투수들이 불안해하지 않는다면 성공했다고 본다. 주전으로 나가진 못하지만 매일 야구장에서 배터리 코치님이랑 포수 훈련하면서 항상 준비하고 있는 편이다.”
KBO리그 포수의 ‘대부’ 격인 두산 양의지가 경기 중 강백호에게 “이전부터 포수한 것마냥 정말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고, 같은 팀의 포수 선배인 장성우가 세심하게 챙겨주고 경기 후 피드백을 건네는 상황들이 강백호는 감사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강백호는 1루수, 외야수, 포수 중에서 어떤 포지션이 가장 편하게 다가올까. 강백호의 대답은 포수였다.
“그래도 포수할 때 내 마음이 제일 편한 것 같다. 포수할 때는 불안하지 않은데 외야나 1루를 맡을 때는 타구가 올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포수는 투수와 교감에 집중하면 된다. 그런 상황이 나한테는 더 편하게 다가온다.”
강백호는 올 시즌 평균 타구 속도가 145km/h로 리그 1위에 올라 있다. 이전보다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고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데뷔 때부터 타석에선 자신 있게 임했다. 안타를 만들어내려는 생각보다 좀 더 강한 타구를,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내자고 생각했던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방망이 무게가 (880g에서 910~920g으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가벼운 방망이로 좀 더 빠른 스피드의 강한 타구를 만들어 내자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조금 더 무거운 방망이를 가벼운 방망이처럼 활용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이후 타구 스피드가 빨라졌고 2스트라이크에도 장타가 나오는 듯하다.”
강백호는 시즌 초반에는 투수의 공과 싸웠다면 지금은 투수의 실투를 치자는 마인드로 타석에 임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타석에서 투수의 실투가 보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투수가 공을 놓는 포인트의 높이를 본다. 그 투수의 공이 어떤 궤적으로 오는지 알고 있다 보니 릴리스 포인트를 보고 판단한다.”
2024시즌을 정상적으로 마칠 경우 강백호는 해외 진출을 위한 포스팅 자격을 얻는다. 그런 그에게 메이저리그 진출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해외 진출은 모든 선수의 꿈이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이제 포지션을 바꾼 터라 준비해야 할 게 많다. 포스팅으로 나갈 수 있지만 2025시즌 마치면 FA 자격을 얻는다. 지금은 개인적인 목표보다 우리 팀이 더 순위를 끌어 올려 ‘가을야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강백호의 프로 생활은 순탄하게 흐르지 않았다. 특히 대표팀에서 태도 논란으로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도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 것 같다고 말한다.
“정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그런 경험들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프로 데뷔 첫 타석을 홈런으로 장식했고, 우리 팀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도 기억나고, 도쿄올림픽과 WBC대회, 프리미어12대회 등 대표팀에서 정말 많은 경험을 쌓으며 성숙해진 면도 있다. 이전의 나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열정, 패기 등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많은 팬들이 지켜보고 있고, 선수로서, 사람으로서 팬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내가 먼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 사람 괜찮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 시절 많이 아파봤기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이전 일들을 떠올리는 것 같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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