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업체 자격 놓고 뒷말, 야권선 국면 전환용 의심…첫 시추 연말 예정, 경제성은 불투명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란들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첫 국정브리핑을 열고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며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에 대한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동해 가스전 주변에 더 많은 석유 가스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에 물리 탐사 심층 분석을 맡겼다”며 “최근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수 연구 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석유·가스가 대량 매장됐을 가능성이 높은 가스전 후보지에 ‘대왕고래’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번 사업이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유다.
동해 영일만 일대에 최대 140억 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회사는 미국계 액트지오(ACT-GIO) 사다. 액트지오는 지질탐사 전문 자문 업체다. 자료를 분석, 해석과 평가하는 일이 주요 업무다. 직접 지질탐사를 하는 회사는 아니다. 컨설팅을 진행할 때는 내·외부 전문가들이 프로젝트 단위로 협업한다. 상근 직원 수는 14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평균 매출액은 3800만 원이었지만 2023년엔 70억 원으로 매출이 급증했다. 야권에선 영일만 프로젝트 수주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액트지오의 프로젝트 담당자이자 설립자인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는 2008년경 엑손모빌의 가이아나 해역 유전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이 해역에 있는 ‘리자-1’ 시추 때 지질 분석 및 매장 가능성 평가를 지휘했다. 그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선임 기술고문으로 일했고, 나중에는 지질 그룹장 등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2015년 10월 액트지오를 설립했고 2023년 11월까지 몸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근무 기간은 영일만 컨설팅이 진행되던 시기와 겹친다. 지금은 같은 업종의 회사인 플럭서스(FLUXUS)에서 일하고 있다.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가 2023년 1월 이 사업에서 발을 뺀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우드사이드와 석유공사는 15년 동안 공동으로 동해 해역을 탐사했다. 우드사이드는 반기보고서에서 “더 장래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구역에서는 철수해 탐사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최적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장래성이 없는 지역’ 중 한 곳으로 한국이 언급됐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영일만 유전 사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이처럼 세계적인 회사도 사업에서 물러난 상황에서 소규모 회사의 분석만 믿고 수천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무모한 결정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대통령이 발표한 것 역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뒤를 잇는다. 정부가 추산한 영일만 지역 시추 비용은 시추공 하나당 1000억 원에 달한다. 시추공은 지하자원 탐사나 지질 조사를 위해 땅속 깊이 뚫는 구멍을 뜻한다. 영일만 시추에는 최소 5개 이상의 시추공을 뚫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 5000억 원 이상이 소요되는 셈이다.
석유공사는 “우드사이드는 더 정밀하고 깊이 있는 자료 해석을 통해 시추를 본격 추진하기 전 단계인 유망구조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철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마치 우드사이드가 유망구조에 대한 심층 평가를 통해 장래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해석은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무리한 결정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탐사 정보 유출 등을 고려해 우수한 업체 한 곳을 선정하여 분석한 후, 다양한 전문기관을 통해 그 결과를 검증받는 것이 일반적인 업계 관행”이라며 “지명경쟁 입찰을 수행하여 최적의 업체인 액트지오를 용역 업체로 선정하고 분석 용역을 의뢰했다”고 했다.
국내 전문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검증이 없었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이 대목에서는 석유공사와 지질자원연구원 말이 엇갈렸다. 석유공사는 보도자료에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소속 연구원이 검증 작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검증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며 “검증 작업은 아니고 단순 자문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연구원과 협의가 안 된 채 나온 해명자료라며 “액트지오와 (프로젝트를) 한 것과 (대통령실이) 발표한 내용은 사전에 몰랐다”고 했다.
산업부는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6월 6일 김원이 민주당 의원은 산업부 측이 자료 제출을 요구한 액트지오 관련 항목 모두에 ‘자료 제공 불가’라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액트지오와의 계약 과정, 액트지오와 주고받은 공문, 액트지오가 제출한 사업성 평가 결과를 검토한 자문단 회의록 및 결과보고서 등의 자료 제출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는 △해당 문서들은 석유공사와 액트지오 사이의 기밀 사안 △자문단 명단은 본인 동의 없이 공개 불가 △자문단 검증 최종 결과보고서는 국가 자원안보에 관한 중요 정보가 있어 공개 불가 등을 거절 사유로 밝혔다.
#정치권 뜨거운 공방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국면 전환을 위해 이 같은 발표를 했다고 보고 있다. 채 해병 특검, 김건희 여사 특검 등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이슈는 덮고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위한 카드라는 입장이다. 석유공사는 첫 탐사부터 생산까지 7~1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결과물이 윤 대통령 임기가 끝난 다음에 나오게 된다. 윤 대통령으로선 정치적 부담이 적은 셈이다.
이해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석유·가스 매장량이나 사업성을 확인하기도 전에 대통령이 매장 추정치를 발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며 “지지율 하락세를 전환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1976년 영일만 석유 발견 소동’을 거론하며 “지지율을 떠받치려고 벌였던 전형적인 선전”이라며 “근거가 불확실한데 유전이 발견되었다고 떠든다”며 “대통령 말 한마디로 5000억 원이 투여되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1976년 1월 15일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경북 영일만 부근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소문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석유가 발견된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이후 중앙정보부가 외국 전문가까지 고용해 시추에 나왔지만, 석유는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은 송곳검증을 예고했다. 이재명 대표는 페이스북에 “막판 대역전을 외치며 수천억 쏟아붓고 결국 국민 절망시킨 부산엑스포가 자꾸 떠오른다”며 “십중팔구 실패할 사안이라면서 전액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것도 걱정이고, 주가 폭등에 따른 추후 주식투자자 대량 손실도 걱정”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국회 차원에서 철저히 점검해야 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에선 벌써부터 국정조사 시나리오가 나온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섣부른 기대와 예측을 하자는 게 아니”라며 “불확실성이 큰 자원개발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경험의 축적 끝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일종 사무총장은 “대한민국 발전을 저주하는 고사를 지내는 듯하다”며 “국가의 미래가 달린 석유·가스 개발에 당력을 집중해 비난하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여권 일각에선 이번 발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기류를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긴 한다. 윤희석 국민의힘 선임대변인은 6월 5일 일요신문 유튜브 채널 ‘신용산객잔’에 출연해 “국민들이 이런 저런 비판하는 것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도 “(윤 대통령 발표는) 기쁜 일 아니냐. 그런데 국민들이 의심을 하는 건 신뢰의 위기”라고 꼬집었다(관련기사 ‘신용산객잔’ 장성철 “영일만 유전 의심, 신뢰의 위기”).
#성공 여부 아직은 미지수
석유 시추 성공 여부는 지금 시점에서 판단하기 이르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1998년 석유공사는 동해에서 총 11개 시추공을 건설해 한국 최초로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가스를 발견했다. 이때 만들어진 가스전은 2004~2021년까지 4500만 배럴 분량의 천연가스를 생산한 뒤 폐쇄됐다. 한반도에 석유·가스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입증된 사례다.
아브레우 박사가 참여한 가이아나 유전의 경우 1916년부터 여러 차례 석유 탐사가 진행됐다. 실패가 거듭되자 엑손모빌의 파트너사였던 셸은 2014년 컨소시엄을 탈퇴했다. 이후 헤스와 중국해양석유총공사가 파트너로 참여했다. 그러다 이 회사들은 99년 만인 2015년 유전 개발에 성공했다.
여기에 아브레우 박사가 참여한 리자-1의 지형은 영일만 일대와 유사하다. 리자-1 지역은 해안에서 약 190km 거리에 있다. 수심은 약 1.7km다. 영일만 일대는 해안에서 약 38~100km에 분포해 있고, 수심은 1km 내외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브레우 박사는 영일만 일대 유망구조(석유·가스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곳)가 가이아나 유전의 지질학적 특성과 유사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엑손모빌이 100조 원 가까이 투입한 가이아나 유전 프로젝트에서 아브레우 박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과장일 수 있다고 본다. 또 아브레우 박사가 참여한 미얀마 AD-7 광구 사업은 개발에 실패해 약 1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아브레우 박사가 발언을 무조건 신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아브레우 박사는 6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20%의 성공률은 굉장히 양호하고 높은 수준의 가능성을 의미한다”며 “지난 20여 년간 발견된 유정 중 가장 매장량이 큰 가이아나 광구의 성공 가능성이 16%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20% 성공률은 80%의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성에 대해서도 신중한 모습이었다. 그는 “석유와 가스가 존재하려면 모래가 있고, 대륙붕 4면이 진흙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며 “우리가 분석한 (영일만 일대) 분지에 모든 요소가 갖춰져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다만 큰 규모의 경제성이 있다는 정황 증거인 탄화수소 누적 여부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석유공사는 첫 시추 일정을 2024년 연말로 계획하고 있다. 자금은 정부 재정, 석유공사의 해외투자 수익금, 외국 기업 투자 유치 등으로 조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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