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오버액션’에 KT 반발…김경문 감독 적극 진화 나서
#벤치 클리어링 부른 오버 액션
상황은 이랬다. 한화가 10점 차로 크게 리드한 8회 말 마운드에 오른 박상원은 KT 선두 타자 김상수를 헛스윙 삼진 처리한 뒤 오른발을 높게 올리면서 발차기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포효했다. 이어 다음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를 다시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글러브로 크게 박수를 치며 기쁨을 표현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던 로하스가 박상원 쪽을 응시하며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KT 더그아웃은 그때부터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미 승부가 한화 쪽으로 눈에 띄게 기운 상황에서 박상원이 보여준 과도한 액션이 KT 선수들을 도발한다고 느낀 듯했다. 박상원이 마지막 타자 김민혁을 2루수 땅볼로 잡고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치자 장성우가 눈에 띄게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한화 선수들은 사태를 진화하려고 애썼다. 한화 에이스 류현진이 KT 덕아웃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왼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또 양손을 입에 대면서 "내가 (박상원에게) 잘 설명하겠다"는 뜻을 반복적으로 전달했다. 채은성, 안치홍 등 한화의 다른 베테랑 선수들도 박상원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무언가 충고하는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잡혔다. 그러나 사실상 '백기'를 든 상태였던 KT 더그아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여겼던 듯하다. 황재균, 장성우 등 KT의 베테랑 선수들이 끝내 박상원의 행동을 문제 삼았다. 다툼이 쉽게 진정되지 않자 결국 김경문 한화 감독과 이강철 KT 감독이 나섰다. 김 감독이 먼저 KT 벤치로 향했고, 이 감독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선수들 사이에서 상황을 진정시켰다. 그제야 양쪽 선수단은 벤치로 돌아갔다. 그 후 야구팬들이 모인 인터넷 사이트에선 다음 날까지 이 상황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대부분 패색이 짙은 상대 팀을 향해 과한 세리머니를 한 박상원도, 그 상황을 두고 지나치게 흥분한 황재균과 장성우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봤다.
#박상원은 왜 그랬을까
사실 박상원은 이전부터 마운드 위에서 감정 표현이 잦고 세러모니도 격하게 하는 스타일의 선수였다. 2017년 데뷔 후 빠르게 필승조로 자리잡은 터라 주로 적은 점수 차로 앞서 있거나 역전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등판했기 때문이다. 접전 상황에서 투수가 보여주는 강렬한 세리머니는 상대를 자극하거나 도발한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승부욕이 강한 박상원은 스스로 좋은 결과를 냈을 때 감정을 한껏 분출하며 에너지를 끌어올리곤 했다. 그는 그러나 올해 20경기에서 2패 1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7.64로 데뷔 이후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추격조로 밀렸고, 2군에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5월 28일 1군 복귀 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다 6월 5일 KT전까지 3경기 연속 무실점 투구로 페이스를 올리던 참이었다.
박상원은 이날도 원하는 대로 투구가 잘되자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평소처럼 오버액션을 펼쳤다. 시즌 초반부터 쌓인 답답함이 컸을 테고, 이제야 서서히 본인의 공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독기가 끓어올라 더 과격하게 밖으로 표출된 듯하다. 또 김경문 신임 감독 체제로 치르던 두 번째 경기라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컸을 테다. 그러나 이날은 경기 흐름상 "사려깊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화 주전 포수 최재훈이 5회와 7회 연타석으로 몸에 공을 맞고 불쾌감을 표현했던 뒤라 KT 선수단은 박상원의 세리머니를 그에 대한 보복의 느낌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KT의 한 선수는 "우리도 박상원의 승부욕은 이해한다. 평소에도 액션이 과한 선수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이 경기에서의 행동은 불문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상대를 자극한 것이다. 박상원이 1~2년 차 선수도 아니지 않은가. 역으로 우리가 크게 이기고 있을 때 자신보다 어린 상대 선수가 홈런을 치고 세리머니를 크게 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KT 선수는 황재균과 장성우 등 일부 선수가 과하게 흥분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우리가 화를 내고 있을 때 한화 선수들이 '미안하다'고 하더라. 이 사과가 무엇을 뜻하겠느냐"며 "경기에서 진 입장에서 이런 일을 만들어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고 했다.
#김경문 감독의 수습
김경문 한화 감독은 상황이 진정된 뒤 "야구를 하면서 배워야 할 건 배워야 한다. 경기 후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선 내가 더 가르치도록 하겠다"며 간접적으로 사과했다. 선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박상원에게 따로 충고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김경문 감독은 그 어느 사령탑보다도 그라운드에서 '예의'를 강조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과거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를 지휘할 때도 상대를 자극할 만한 행동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김경문 감독이 현역에 복귀에 복귀하자 많은 후배 감독이 축하 인사를 전하면서 "야구를 깔끔하게 하는 선배"라고 떠올린 이유다. 김 감독의 휘하에서 뛰던 선수들은 "때론 (상대에 감정 표출을 하지 못해)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예의를 강조하셨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화 부임 후 두 번째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이 발발하자 김 감독은 역시 같은 스탠스를 유지했다. 한화 선수들에게 자신의 야구 철학을 알리면서 강하게 어필한 KT 선수들의 화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었다. 김 감독은 다음 날인 6월 6일 경기를 앞두고도 "야구에는 불문율이 있다. 상대 팀이 좋지 않은 상황일 때는 서로 오해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선수(박상원)가 의도적이었던 건 아니었지만, 상대가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며 "이강철 감독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박상원도 정경배 수석코치와 함께 KT 선수단에 가서 인사하고 사과했다"고 했다. 김 감독은 또 "이 팀에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깨끗한 야구를 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선수들에게 이런 부분들을 잘 가르쳐서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박상원은 이날 야구장에 도착하자마자 정 코치와 함께 이강철 감독을 찾아갔다. 이 감독은 "나는 괜찮다. 김경문 감독님과 이미 얘기했으니, 선배들한테 가서 사과하라"고 다독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원은 이어 KT 라커룸을 방문해 KT 주장 박경수에게 전날의 일을 사과했고, 양측은 이 문제를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기로 했다. 박경수 또한 "잘 얘기를 마쳤다"며 사태를 일단락했다. 이 감독은 취재진에게 관련 질문을 받자 "다 끝난 얘기"라며 말을 아꼈지만, "그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팀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황재균과 장성우가) 고참으로서 할 일을 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류현진이 불씨 진화 애써
이 벤치 클리어링은 류현진이 KBO리그로 복귀한 뒤 처음으로 벌어진 '사건'이기도 했다. 류현진은 KT 선수들이 처음 흥분하기 시작하자 가장 적극적으로 사과 표시를 하고 중재의 뜻을 밝히며 불씨를 진화하려고 애썼다.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진 뒤에는 동기생이자 친구인 황재균에게 직접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류현진은 6월 6일 KT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해 승리 투수가 된 뒤 "전날 밤엔 팀이 이겼는데도 아무래도 그 일로 인해 분위기가 무거운 느낌이 있었다"고 털어놓으면서 "재균이와 통화하면서 '고의가 아니었으니 좋게 풀었으면 좋겠다'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박상원이 일부러 도발하려고 그런 행동을 한 건 절대 아니고, 우리도 상대를 자극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걸 KT 선수들에게 열심히 설명했다"고 했다. 또 "박상원이 시즌 초반 좋지 않다가 최근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큰) 행동이 나왔다"며 "박상원도 이제 서른이 넘었고,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선수라 본인도 벤치 클리어링 이후 많은 걸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고 후배를 감쌌다.
벤치 클리어링 때 가장 먼저 달려나갔던 데 대해서는 "솔직히 우리가 잘못한 부분이 있었고, KT 쪽에서 흥분한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화를 가라앉히고 싶어서 앞에 나왔던 것 같다"며 "그 이후에 더 난리가 났던 부분에 대해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그래도 고참이면 (그런 일에) 당연히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에선 이런 상황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류현진은 "미국에도 그런 불문율 문화가 있어서 아예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며 "메이저리그였다면 (상원이도) 그런 행동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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