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작품은 2020 창작산실 무용분야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BLACK’ 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최영현 안무자는 미국의 시인 메리앤 무어(Marianne Moore)의 “가장 깊은 감정은 항상 침묵 속에 있다”는 문장에 영감을 받아 침묵을 검정에 대입했다. 침묵 같은 검정이라는 공간에 인간의 여러 감정과도 같은 무용수들의 몸짓과 움직임이 극도의 제한된 빛을 통해 형이상적인 모습으로 우리 눈에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작가가 바라보는 작품 ‘BLACK’은 빛의 이면인 검정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 사진과 닮았다. 어둠 속에서 극도로 제한된 빛으로 몸과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어둠 속에서는 공간을 가늠할 수 없기에 무대에서 보이는 모습은 단면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분은 3차원 공간을 2차원으로 표현하는 사진의 특성과 같다.
또한 어둠 속에서 아무리 움직이고 있어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는 것처럼 침묵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 제한된 빛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것만을 보게 한다. 빛 안으로 무용수가 들어오는 순간에만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있다. 사진에서 순간 포착 하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작품은 2019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국내 초청작으로 공연한 ‘검정감각’이란 작품이다. ‘검정감각’ 작품을 안무한 황수현 무용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검정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하나는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색. 물론 이게 검정은 아니지만, 눈을 감아도 보인다는 아이디어에서 검정을 생각했고, 두 번째는 블랙박스에서의 상상력, 허구적인 공간으로서의 검정, 세 번째는 미지의 감각, 눈을 감았을 때 오히려 소리에 주의해서 생기는 위치와 공간 감각을 검정이라고 상정했어요.”
인터뷰에 있는 내용처럼 이 작품은 검정을 감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요소들을 무대에 구현시켜 관객들에게 안무자가 인식한 검정을 제공한다. ‘검정감각’에 나오는 무용수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다.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입과 몸으로 소리를 내는 무용수들은 특정 언어가 아닌 말 그대로의 소리를 내어 표현한다. 흔들리는 형상 속 눈을 감고 있는 모습, 즐거운 표정과 벌어진 입에서 나오는 소리, 팔과 손으로 공간을 인지하는 동작 등 무용수들이 표현하는 검정감각을 작가적 해석으로 바라보고 사진으로 다양하게 담아보았다.
5년 전에 촬영한 작품이지만 지금도 검정감각이란 제목을 보면 묘한 감정이 든다. 작품 ‘검정감각’을 통해 무대라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담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검정에 대해 생각해본다. 무대에서의 검정은 단순한 어둠 이상의 무엇이다. 빛이 비춰지는 곳에서 보이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면 빛의 이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보이는 것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검정을 통해 무대는 비로소 실존하는 가상공간이 된다.
그렇다면 사진에서의 검정은 어떨까? 빛을 받아들인 카메라에 상이 맺히는 곳을 촬상면이라고 하는데 촬상면에 빛이 투과하지 않은 곳의 색이 검정이다,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으로 표현하는 사진은 카메라를 이용해 빛으로 음과 양을 적절히 조절한 결과물이다. 검정을 통해 차원이 왜곡되고 원근이 변형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이야말로 검정감각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소개한 두 편의 공연을 통해 사진작가로서 검정을 이렇게 정의해 본다. ‘검정은 눈으로 보이는 가장 형이상학적인 색이다.’
옥상훈 공연예술사진작가, 스튜디오 야긴 대표, 온더고 필름 디렉터. 국악반주에 맞춰 추는 승무에 반해 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올해로 19년이 되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서울무용제(SDF), 창작산실,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KIADA) 등 다수의 공연페스티벌과 여러 기관 단체, 안은미컴퍼니,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서울교방 등 다양한 공연 단체들과의 작업을 통해 사진으로 공연을 담고 있다.
옥상훈 스튜디오 야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