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에 ‘이슈피드’ 등 신원 정보 공개 신청…응원 분위기 속 ‘너무 늦은 대처’ 팬덤 지적도
최근 하이브와 그 산하 레이블 쏘스뮤직은 악플러와 사이버 렉카 유튜버, 소셜미디어(SNS) 이슈 채널 운영자 등에 대한 고소 방침을 밝혔다. 하이브는 X(옛 트위터)에서 ‘길티 아카이브’라는 이름의 계정을 운영하는 이용자를, 쏘스뮤직은 사이버 렉카형 유튜브 채널 ‘이슈피드’와 ‘숏차장’에 대해 고소하는 한편, 이를 위해 미국 법원에 이들의 정보 제공 명령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소된 이들 가운데 구독자 수 약 33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이슈피드’는 ‘제2의 탈덕수용소’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친 연예 관련 사이버 렉카 채널이다. 탈덕수용소는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을 중심으로 악성 허위 콘텐츠를 제작, 게시해 온 또 다른 유명 사이버 렉카 채널로 최소 2억 원 이상의 수익을 챙겼다가 아이브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스타쉽)에게 피소돼 현재 재판 중이다.
탈덕수용소의 신원 정보는 유튜브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 구글의 해외 서버에 저장돼 있어 국내에서는 그의 신원을 특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구글을 관할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이 스타쉽 측의 정보 제공 명령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고소의 물꼬가 트였다. 당시 스타쉽 측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리우 정경석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증거개시, 재판 전 양측 당사자들이 문서나 증거를 상호 공개하도록 하는 절차로 사건과 연관된 제3자에게도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를 이용해 탈덕수용소 채널 운영자 박 아무개 씨(여·36)를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플랫폼 뒤에 숨은 익명의 악성 계정도 신원이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이 탈덕수용소의 사례로 입증되면서 이번 고소 소식을 알게 된 이슈피드는 채널을 비공개로 돌리고 잠적했으며, 구독자 수 19만 명의 숏차장 역시 사과문을 게재하고 문제 영상을 삭제 조치하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다만 실제 쏘스뮤직 측이 미국 법원에 신청한 디스커버리 절차는 사법공조조약에 의거하더라도 한국 형사 당국의 범위 안에 있으므로 한국에서 진행되는 것이 적합하다는 취지로 6월 5일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팔로어 11만 4000여 명을 보유한 X 계정 ‘길티 아카이브’에 대한 고소 건의 경우는 조금 결이 다르다. 하이브가 5월 2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직접 고소한 것으로 확인된 이 계정은 하이브와 방탄소년단(BTS)에 대해 4월 중순부터 급속도로 확산돼 온 각종 음모론을 게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당시 하이브는 명상기업 ‘단월드’와의 모종의 관계성이 의심된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길티 아카이브가 이 내용을 정리해 올린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하이브가 미국 법원에 신상 정보 제공 명령을 신청하면서 제시한 구체적인 근거는 길티 아카이브가 ‘하이브 산하 쏘스뮤직의 전 소속 걸그룹 여자친구의 해체 배경에 또 다른 쏘스뮤직 소속 걸그룹 르세라핌이 있다’ ‘방탄소년단이 데뷔 쇼케이스를 연 일지아트홀은 단월드와 관련이 있다’는 허위 사실을 올렸다는 것이다. 특히 단월드는 하이브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만큼 11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대형급 소셜미디어 계정의 허위사실로 소속사와 아티스트들이 입는 피해가 막대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앞선 두 사이버 렉카와 달리 X 계정 ‘길티 아카이브’는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린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고, 허위사실 유포로 하이브에 대한 ‘지속적인’ 업무 방해가 실재했는지도 현재까진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신원 파악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법상 형사상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소속사로서는 허위사실에 따른 업무 방해와 이로 인한 막대한 손해에 초점을 맞추면서 동시에 국내 수사기관으로는 신원 확인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정확한 신원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탈덕수용소도 2022년 11월부터 고소 시작으로 구글에 3차례에 걸친 정보 공개 청구까지 거쳐서야 재판대에 올릴 수 있었던 만큼 하이브 역시 국내 악플러 고소와는 별개로 이들과는 지난한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하이브의 고소를 놓고 대중과 팬덤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아티스트들의 공식 계정에 달리는 악플의 수위가 매우 높았던 만큼 강경 법적 대응 자체만 놓고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높지만, 그 배경에 하이브 및 산하 레이블 사이의 분쟁과 갈등이 있었다는 점을 배제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그룹인 쏘스뮤직 소속 르세라핌, 빌리프랩 소속 아일릿의 팬덤 내에서는 “소속사끼리 분쟁이 불거지면서 소속사가 먹어야 할 욕까지 멤버들이 방패막이로 다 먹었는데 이제 와서 뒤늦게 대응하는 걸 잘했다고 박수 쳐줘야 하냐”며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미성년 멤버에 대한 악플과 성희롱이 넘쳐나는 공식 계정 댓글란을 채증을 이유로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소속 아티스트에게 배려가 없었다는 불만도 일었다.
하이브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명백히 판명된 허위사실 이외에 의혹 제기 수준의 반응에도 재갈을 물리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에 하이브가 고소한 단월드 관련 의혹의 경우, 단월드가 방탄소년단을 앞세워 수년 동안 홍보해 온 자료에서 촉발된 의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이브는 “관계없다”는 입장 외에 어떤 근거도 제시한 바가 없다. 더욱이 하이브가 단월드에게 이에 대한 항의나 법적 대응을 한 사실도 확인되지 않은 만큼 대중 사이에선 이들의 관계성에 의구심이 짙어질 수밖에 없는데 무리하게 입막음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한 엔터사 관계자는 “원래 법무팀이나 로펌과 함께 악플과 허위사실을 채증해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게 대부분 엔터사에겐 연례행사지만, 하이브의 경우는 앞선 분쟁 이슈와 맞물려 있어 대중들의 반응이 엇갈리는 것으로 보인다”며 “보통 이렇게 강경 대응 입장을 밝히면 악성 악플러나 사이버렉카들도 어느 정도 몸을 사리기 마련인데 오히려 하이브 쪽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도 그런 게 어느 정도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이후 법적 대응의 결과로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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