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발 저린 피해자 40명에 10억 뜯어내…전문가들 “성매매법 처벌 걱정 말고 즉시 신고해야”
#“가족에게 유포하겠다” 협박
법조계에 따르면 6월 17일 의정부지법 형사 12단독 홍수진 판사는 범죄단체 가입, 범죄단체 활동 등 혐의로 기소된 사기 조직의 팀장급 조직원 A 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조직원 3명 중 2명에게는 징역 3년, 나머지 1명에게는 징역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이 소속된 조직은 중국에 사무실을 차려 두고 성매매 업소 등에서 보관하던 이용객들의 이름,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담긴 데이터베이스(DB)를 기반으로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피해자가 전화를 받으면 “예전에 이용했던 마사지 업소 사장인데 장사가 안 돼 방마다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성매매 장면을 촬영했다”며 “흥신소를 통해 (당신의) 가족, 지인 연락처 100개 정도 확보돼 있는데 돈을 주지 않으면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영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피해자가 우물쭈물하면 다른 조직원이 전화를 걸어 “나는 총괄 사장인데 우리 직원이 하는 말이 어렵냐”며 욕설하고 “당장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영상을 올리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들의 범행은 주로 2023년 말에 이뤄졌는데 이들에게 당한 피해자는 40명, 피해 금액은 9억 6493만 원에 달했다.
이들은 전화 통화를 담당할 한국인을 모집해 관리하며 기업처럼 움직였다. 조직 가입 희망자가 있으면 범행 방법이 적힌 대본을 나눠주며 시험을 거친 뒤 중국 비자와 항공권을 마련해 주며 중국으로 불렀다. 중국 현지 시각으로 오전 8시∼오후 5시 범행을 하게 하고 실적이 저조하면 오후 8시까지 야근까지 시켰다.
이들 조직은 범행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철저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경찰이나 공안에 발각될 것을 대비해 가명을 정하고 ‘평일에는 술을 마시지 말고 숙소에 사람을 데려오지 말 것’, ‘중국에서는 절대 신용카드나 위챗페이로 결제하지 말고 현찰을 쓸 것’ 등 행동강령을 지키게 했다.
재판부는 팀장급 조직원 A 씨에 대해 “팀장 및 관리책으로 기망 행위의 핵심적인 역할을 상당 기간 수행해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나머지 팀원들에 대해서는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피해자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경제적 피해를 줘 엄벌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방문 여부 상관없이 “신고부터”
불법 성매매가 공공연히 이뤄지며 이를 악용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영상을 통한 협박이 유행하기 전 대표적인 수법은 경찰 단속에 걸렸다며 ‘장부 파기비용’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성매매 업주들은 성매수자들의 개인정보를 기록하고 이를 서로 공유하는 특성이 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경찰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장부가 한번 유출되면 보이스피싱에 노출되는 이들은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에 달할 수 있다. 한때 회원 수 70만 명을 보유한 국내 최대 성매매 알선 사이트 ‘밤의 전쟁’이 보유한 약 260만 건의 개인정보 중 일부가 유출돼 보이스피싱 범죄에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밤의 전쟁 운영자 박 아무개 씨는 2022년 필리핀에서 검거 뒤 국내로 강제 송환돼, 2023년 3월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현재도 소셜미디어(SNS)와 포털사이트 등 온라인에는 성매매 장부 단속이나 영상 협박에 대응하는 방법을 문의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률 플랫폼 ‘로톡’에 ‘성매매 장부 협박’을 검색하면 400개가 넘는 상담 사례가 나온다. 이 중 일부는 경찰 단속에 걸렸다는 말에 속아 돈을 입금하고 뒤늦게 보이스피싱임을 알아차렸는데 돈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문의하는 내용이다.
한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스웨디시 마사지 단속에 걸렸다는 말에 속아 약 1700만 원을 대출받아 입금했다”면서 “전화를 걸었던 남자가 방문했던 업소 사장이라며 정확한 방문 날짜와 시간, 매니저 이름 등을 알고 있었다. 해당 매니저 가운데 1명이 미성년자로 밝혀져 본인들이 큰 처벌을 받을 위기라고 했다. ‘돈을 주면 손님의 CC(폐쇄회로)TV 영상 등을 지워주겠다’고 말해 너무 놀라고 당황했다. 돈을 입금하고 나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고, 이후 상대방의 휴대전화 번호는 없는 번호로 나왔다”고 말했다.
성매매 업소 방문 사실이 없더라도 긴장의 끊을 놓을 수 없다. 장부가 아닌 단순히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보이스피싱 범죄에 활용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한 30대 남성은 “성매매 경험이 없는데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당황한 적이 있다”면서 “이름과 나이 등 기본적인 신상은 틀리지 않은 것으로 미뤄봤을 때 특정 사이트 등을 통해 개인정보가 유출돼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성매매 없이 업소에 전화만 했다가 개인정보가 남아 보이스피싱에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며 “성매매 미수는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니 절대 보이스피싱에 속아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전화를 받은 즉시 신고해야 하며 이후 경찰에서 신고자를 성매매특별법 위반으로 수사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단순히 진술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같은 보이스피싱에는 절대 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의 조언이다. 보이스피싱이 아닌 실제 업주가 장부에서 이름을 삭제해주는 것일지라도 이는 범죄 은닉 및 증거훼손에 해당돼 업주는 물론 돈을 건넨 성매수자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돈만 갈취당한 경우에는 사기 및 협박 혐의를 보이스피싱범에 적용할 수 있지만 성매매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성매수자는 피해금을 보상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곽준호 변호사는 “일단 본인이 성매매 업소를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하지만 만약 성매매 영상이나 장부 등으로 협박하는 전화를 받았을 때 용기를 내서 신고를 해야 한다. 보이스피싱범들은 돈이 목적이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다. 업소 방문 기록을 지워준다는 핑계로 계속 돈을 요구할 것이다. 한 번에 끝나는 경우는 없다. 만약 나중에 사기라는 것을 깨달아도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조언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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