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산부인과 1567곳 중 85곳만 분만 가능…농어촌뿐 아니라 대도시 산모들도 갑작스런 폐원에 ‘발 동동’
현재 둘째를 임신 중인 A 씨는 출산을 두 달 앞둔 지난 4월 말, 첫 아이 임신 때부터 쭉 다니던 경기도 성남시 소재 산부인과가 곧 폐원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A 씨는 “갑자기 폐원한다니 아이를 어디서 낳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며 “친정어머니가 우리 남매를 모두 출산하셨던 병원이라서 더욱 믿고 다녔는데 그야말로 멘붕 상태(머릿속이 어지러움)”라고 토로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사는 임산부 B 씨도 최근 다니던 산부인과가 문을 닫아 급히 산부인과를 옮겼다. B 씨는 “부산의 한 신도시에서 분만 가능 병원 두 곳이 갑자기 폐원해 산모들이 쩔쩔매고 있다는 보도를 얼마 전 봤지만 나의 일이 될 줄은 몰랐다”며 “내가 다니던 병원이 진해에서 유일한 분만병원이었는데 이제 창원 시내까지 나가서 진료를 받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주요 도시와 지방 대도시에서 분만 가능한 병원이 사라지고 있다. 출산율이 낮은 농어촌, 소도시뿐 아니라 비교적 신생아 출산이 많은 대도시, 신도시에서도 분만 병원이 문을 닫아 산모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30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곽여성병원’이 폐업했다. 1981년 개원 후 지금까지 신생아 17만 9000여 명이 태어난 곳으로, 2018년 전국 분만 건수 1위를 기록한 지역 대표 산부인과다. 이 병원 대표원장은 홈페이지 공지문에서 “경제적 운영 악화에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더 이상 분만병원 운영이 힘들어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신도시에 있는 ‘정관일신기독병원’도 지난 2월 분만 진료를 종료하고 산후조리원도 폐원했다. 70년 된 이 병원은 분만 진료를 중단하기로 한 이유로 저출생 추세, 24시간 응급 진료가 필수인 산과 의료진 수급의 어려움 등을 들었다. 같은 재단이 운영 중인 부산 북구 화명일신기독병원도 지난 5월 분만 진료를 마감했다. 광주광역시를 대표하는 ‘문화여성병원’도 지난해 9월 폐업했다.
‘일요신문i’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의 ‘의료자원 통계, 기관수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2년 기준 상급 의료기관 및 병‧의원 등을 포함한 전국 산부인과 수는 5259곳으로 확인됐다. △서울 1567곳 △경기 1137곳 △대구 320곳 △부산 271곳 △경남 245곳 △인천 239곳 등의 순으로 많았다.
이 중 분만이 가능한 곳은 10%가 채 안 됐다. 2022년 기준(KOSIS 국가통계포털) 분만 기관은 총 474곳으로 2003년 1371곳이었던 것과 비교해 20년 새 65.8%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경기 103곳 △서울 85곳 △경남 33곳 △부산 32곳 △인천 27곳 △전북 24곳 등에 그쳤다. ‘분만 기관’에는 조산원도 포함되기 때문에 상급종합병원과 병‧의원으로 좁히면 그 숫자는 더 줄어든다.
현재 전국 250개 시‧군‧구 중 22곳은 산부인과가 아예 없다. 산부인과는 있지만 분만실을 갖추지 못한 시‧군‧구도 50곳에 달한다. 즉 전체 시‧군‧구 10곳 중 3곳은 해당 지역 안에서 분만을 할 수 없다. 분만실이 없는 지역에는 경기 과천시‧의왕시‧안성시‧용인시 처인구 등 수도권 도시와 울산 북구 등 지방 광역시도 포함돼 있다.
서울 상황도 불안하다. 심상덕 산부인과 전문의(서울 마포구 진오비산부인과 원장)는 “20년 전 개원 당시 이 지역에 분만 가능 병원이 6군데 정도 있었는데 현재는 3군데 정도로 절반이 줄었다”고 말했다. 홍순철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지난 4일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분만병의원협회 등이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도 한계에 달한 것을 느낀다”며 “분만 인프라는 대학병원조차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다른 지역으로 아기 낳을 곳을 찾아 떠나는 국내 원정 출산은 2010년대 후반부터 이미 증가 추세를 보였다. 한국모자보건학회지에 실린 ‘한국의 관내 분만율 현황’ 보고서를 보면 전국 평균 관내 분만율이 2014년 48.2%에서 2020년 44.5%로 3.7%포인트(p) 감소했다. 분만실이 있는 지자체로 좁혀보면 해당 기간 전국 평균 관내 분만율은 4.3%포인트 감소, 시 지역은 8.6%포인트 감소했다.
분만 인프라 실종은 산모와 아기 모두의 건강에 큰 위험 요소가 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모자보건학회 보고서는 “산모 거주 지역에서 분만 병원이 멀어 접근성에 장애가 발생하면 모자 보건(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임산부들에게 질환별로 적정 이동시간을 권고하고, 정부에서는 이에 합당한 분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영주 대한모체태아의학회장(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국내에서 안전한 분만 인프라가 유지되려면 분만 가능 기관이 최소 700여 개는 돼야 한다”며 “저출산 환경에 처한 산부인과 병의원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폐업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임산부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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