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300억대 비자금’ 유입 판단…재산 증식 두고 최태원 측 “부친이 물려준 것” vs 노소영 측 “함께 일궈”
지난 17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혼 소송과 관련해 공식 석상에 직접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날 변호사들과 함께 항소심 재판부가 노소영 관장의 내조 기여를 과다하게 계산했다며 2심 재산 분할에 오류가 있음을 주장했다. 이후 최태원 회장은 상고했다.
최태원 회장은 노소영 관장과 이혼 소송 항소심 2심 판결에서 1조 3808억 원대의 재산 분할 부담을 안게 됐다. 최태원 회장의 상당 부분 재산이 SK(주) 주식인 점을 감안하면 법원 판결대로 재산 분할을 진행하면 개인 지배력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의 SK(주)의 지분 가치는 2조 원가량이다. 1심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재산분할 명목으로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한 바 있다.
2심 재판부가 1심과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은 '특유재산' 인정 여부 때문이다. 특유재산은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상속·증여받은 재산이다. 특유재산으로 인정되면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혼인 기간이 길거나 배우자가 특유재산 증식·유지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되면 그만큼 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인정한 최태원 회장의 특유재산을 상당 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태원 회장의 재산 증식 과정에서 노소영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기여도가 상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은 1988년 결혼했는데 그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됐다. 최태원 회장이 1994년 11월 취득한 대한텔레콤 주식은 선대에서 물려받은 특유재산에서 제외되면서 분할 대상이 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임기는 1993년 2월 끝났는데, 1년 뒤인 1994년 대한텔레콤은 인허가를 통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면서 이동통신 사업 진출에 성공했다. 재판부는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남아 있어 대한텔레콤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더욱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이 최태원 회장 일가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판단했다. 노소영 관장 측은 그동안 1991년 해당 자금이 최태원 일가에 흘러갔다며 노소영 관장 어머니인 김옥순 여사가 자금 제공을 대가로 보관하고 있던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의 300억 원 어음을 증거로 제시했다. 노소영 관장 측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이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전달됐고, 이를 통해 1992년 태평양증권을 인수했으며 일부는 최태원 회장이 대한텔레콤 인수 자금으로 활용했다고 주장했는데, 2심 재판부가 이를 상당 부분 인정한 것이다. 최태원 회장 측은 당시 확보한 대한텔레콤 매입 자금이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증여받은 2억 8000만 원이었기 때문에 대한텔레콤 주식은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텔레콤 지분이 특유재산에서 제외되면서 최태원 회장의 SK(주)도 분할 대상이 됐다. SK(주) 전신이 대한텔레콤이었기 때문이다. 대한텔레콤은 1998년 SK컴퓨터통신을 흡수합병하면서 SK C&C로 사명을 바꿨다. 이후 SK C&C는 SK(주)로 사명을 바꿔 지주사 체제로 출범했다.
최태원 회장 측은 2심 재판부의 판단에 반발했다. 최태원 회장 측 법률대리인 이동근 화우 변호사는 최태원 회장이 1994년 취득한 대한텔레콤 주식 가치 산정에 항소심 재판부가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 판결문에서는 1994년 11월 최태원 회장이 취득 당시 대한텔레콤의 가치를 주당 8원,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에는 주당 100원, 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에는 주당 3만 5650원으로 계산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측은 이 계산법이 최종현 선대 회장의 기여 부분을 12배로, 최태원 회장의 기여 부분을 355배로 잘못 판단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 측은 최종현 선대회장 시기 증가분이 125배고, 최태원 회장 시기 증가분은 35배에 불과했다며 SK그룹은 ‘승계상속형’ 기업임을 거듭 강조했다. 즉 최태원 회장이 확보한 재산은 부부생활 과정에서 증식한 것이 아니라 승계받은 재산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 측의 계산법 발표 이후 판결문의 일부 수정된 부분이 재산 분할의 비율 등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최태원 회장의 특유재산을 확정하고 재산 분할 비율을 산정하기 위한 과정에서 최종현 선대회장이나 최태원 회장의 기여도는 쟁점 사항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오히려 최태원 회장이 승계받은 재산이 비자금이나 '6공 후광'이라는 직간접적인 지원 통해 만들어졌다면 해당 기여분만큼 재산 분할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법률사무소 정 정지웅 변호사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이라면서 “이혼할 때 현재 가치로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보고, 각자의 기여분을 나누는 것이 쟁점이지 주당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전했다.
최태원 회장 측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이 최태원 일가에 유입됐다고 인정된 사실과 SK그룹 성장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6공 후광이 있었다는 것은 실체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향후 재판에서는 SK그룹 성장에 미친 노태우 전 대통령의 기여도가 주요 쟁점사항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양보연 기자 by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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