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캠프 꾸리며 세 결집, 주류 친윤계 ‘원희룡 카드’로 반격…다자구도·결선투표 등 변수로
#원희룡, 친윤 유니폼 입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6월 20일 언론에 보낸 입장문에서 “전당대회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 가운데 첫 공식 출마 선언이다. 원 전 장관은 출마 배경과 관련, “총선 패배 후 대한민국과 당의 미래에 대해 숙고했다”며 “지금은 당과 정부가 한마음 한뜻으로,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온전히 받드는 변화와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낸 원 전 장관은 지난 4월 총선 때 인천 계양을에 출마했다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패했다. 그 이후 전당대회 출마 후보군으로 꾸준히 거론됐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친윤 진영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는 분석이 나왔다. 용산에서도 원 전 장관의 출마를 설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렸다.
원 전 장관 출마 일성은 예상됐던 대로 ‘당정일체’였다. 그의 말을 풀어보면 “국정 책임을 확실하게 지는 당정 관계를 위해선 한동훈 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윤 대통령과 삐걱거리는 사이가 됐다는 얘기를 넘어 불화설까지 나도는 한 전 위원장은 당대표가 절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원 전 장관은 2021년 윤 대통령과 겨룬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뒤 ‘윤석열 선대위’ 정책본부장으로 합류했고, 대선 과정 땐 ‘대장동 일타강사’를 자처하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이 공을 인정 받아 윤석열 정부 초대 국토부 장관에 임명됐고 윤 대통령의 최측근 장관으로 각인됐다. 4월 총선 패배 직후에도 대통령실 정무라인으로 불러 일을 시키려할 만큼 윤 대통령 신임이 두텁다.
당 사무총장, 최고위원까지 지낸 3선 의원 출신인 동시에 제주지사까지 역임한 원 전 장관은 당내 지형, 사정 등에 대해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출마 선언을 두고 ‘표 계산’을 끝낸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민심 반영(20%)이 도입되긴 했지만, ‘1호 당원’ 대통령의 확실한 지지를 받는다면 압도적 당심으로 한 전 위원장과 겨뤄볼 만하다고 계산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당대표를 지냈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6월 20일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분석에 힘을 보탰다. 그는 원 전 장관 출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다른 후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단언했다. 이 의원은 “윤 대통령이 (한 전 위원장 등을 향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준석 의원은 “원 전 장관은 능력 있는 분이고 윤석열 정부 들어 중책을 역임했다”면서 “원 전 장관과 대통령의 친밀도를 볼 때 (출마를) 결심한 배경에 대통령과의 상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대통령 의중이 작용하기 시작했다”며 “지난 전당대회 때 국민의힘에서 일어난, 대통령께서 교감이 적었던 후보들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이 있었던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의 말이다.
“당대표 선거는 민심 반영 비율 20%가 있지만 당원 투표 비율이 80%에 이르는 사실상 당내 선거다. 당원들은 정치 고관심층이어서 ‘왜 원희룡 전 장관이 치고 나왔을까’에 대해 상당 부분 그 의미를 짐작한다. 그리고 나경원 의원은 왜 결심을 빨리 못할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대통령의 지나친 당무개입 같은 엉터리 얘기도 나오는데 대통령제하에서 여당의 간판은 엄연히 대통령이다. 당원들은 누구의 유니폼이 당정 원팀을 이룰 수 있는 유니폼인지 보는 눈이 있다.”
#한동훈, 예정대로 등판
‘패장 책임’ ‘당정 불화’ 등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저지 전술이 펼쳐지고 있지만 한 전 위원장은 결국 출마를 택했다. 6월 20일 정광재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한 전 위원장이) 이번에 잘할 수 있다. 잘해서 보수 정권을 재창출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 전 대변인은 6월 19일 당 대변인직을 사임하고 한 전 위원장 선거 캠프에 합류했다.
한 전 위원장은 국회 앞 대산빌딩 사무실을 계약한 데 이어 언론 공지용 단체 대화방도 개설하는 등 본격적인 채비에 들어갔다. 캠프 사무실 앞에는 지지자들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응원 화환과 꽃바구니도 목격됐다. 대산빌딩은 정치권에선 ‘선거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 때 캠프를 차렸다.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도 2023년 전당대회 때 대산빌딩에 둥지를 텄다.
한 전 위원장은 최근 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출마 의사를 밝히며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위원장은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할 ‘러닝메이트’ 역시 측근 그룹 중에서 물색 중이다. 당선되더라도 외톨이 대표가 아닌 최고위원 호위를 받는 세력화된 대표가 되기 위함이다. 이는 친윤계와 마찰을 빚다 축출된 이준석 전 대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윤계 저지와는 별개로 정가에선 여의도 문법상 ‘한 템포 쉬고 가는 게 더 좋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긴 했다. 그럼에도 한 전 위원장이 출마한 것은 압도적인 지지율 때문이다. 6월 중순까지 나온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치를 놓고 볼 때 한 전 위원장 승리는 유력하다. 당심 반영 비율이 여전히 높다고는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치러진 전당대회 선거의 경우 여론조사 결과치와 동조화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한 전 위원장의 승산을 높게 보는 국민의힘 또 다른 의원은 “지역구 주민들 얘기를 종합해보면 지난 총선에서 비록 졌지만 새롭게 변신할 국민의힘 상징으로 한동훈을 능가하는 인물이 솔직히 당내에는 없다는 게 일관된 목소리”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상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한동훈 최적임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전 위원장 측이 줄곧 내세워왔던 ‘대안 부재론’을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적극 부각시킬 것으로 점쳐지는 대목이다.
#전당대회 판세 요동
이로써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진표가 완성됐다. 원희룡 전 장관과 한동훈 전 위원장, 여기에 나경원 윤상현 의원이 붙는 4자 구도다. 다자구도의 특성상 합종연횡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에 따라 한 전 위원장의 대세론이 흔들릴 가능성도 높다. 싱겁게 끝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던 국민의힘 전당대회 판세가 짙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한 전 위원장에 대한 당 안팎의 비토 여론이 겹겹이 쌓여가는 것은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친윤 진영에서 ‘가랑비에 결국 옷은 젖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선봉엔 ‘친윤’ 핵심 이철규 의원이 서 있다. 그는 6월 17일 ‘어대한’에 대해 “당원들을 모욕하는 말”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이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 나가 “(어대한은) 일부 언론에서 몰아가는 하나의 프레임이다. 선거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했다.
이철규 의원은 총선 전후 한 전 위원장 지지도 여론조사 추이에 대해 “보수 지지층 지지율이 한 40% 이상 다운돼 있고, 당 지지자들의 지지도도 많이 내려갔다”며 “특정인이 대세를 장악하게 됐다고 보도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신평 변호사도 6월 18일 페이스북에 “한동훈이 당대표가 된다면, 이준석 전 당대표 이상으로 당정 관계에 심각한 불협화음이 일어날 것”이라며 “총선 참패로 가뜩이나 큰 어려움에 봉착한 윤 정부에 치명타를 먹일 것이고, 2026년의 지방선거, 2027년 대선 패배로 이어지면서 아마 ‘보수의 궤멸’까지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측근인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도 6월 20일 SNS를 통해 “실패를 모르고 자란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받아들이기가 어렵기에 빠른 시일 내에 이를 뒤집어서 예전 모습을 되찾으려고 한다”면서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더 큰 것을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정인을 지목한 것은 아니지만 당대표 선거에 나서는 한 전 위원장을 겨냥해 ‘패장이 지금 나설 때가 아니다’라는 뜻을 발신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국민의힘 최대 지지 세력이자 당원들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대구·경북(TK)에서 ‘한동훈 불가론’이 나왔다는 것에 의미가 남다르다.
결선투표도 또 다른 변수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이 나오지 않을 경우 결선투표가 진행되는데, 이 경우 조직력이 강한 쪽이 유리하다. 당내 주류인 친윤계의 표 결집이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전 위원장 측으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도 “사실 친윤계의 비토는 대세론에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친윤계 인사들조차 한동훈 캠프 합류를 타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하면서도 “결선투표로 가면 좀 걱정이긴 하다. 한 전 위원장이 1차에서 반드시 과반으로 이겨야 한다”고 했다.
숱하게 많은 전당대회를 경험했다는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 통화를 했고, 또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덕담을 했다고 한 위원장 측이 언론에 공지했다. 이 부분을 당원들이 관계 복원으로 과연 볼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이다. 다투고 겨루는 모습보다는 당의 안정을 희구하는 쪽으로 당원들의 표심이 쏠릴 가능성이 높다. 각 후보들이 이 부분을 어떻게 다스려 나가면서 메시지를 낼지가 당락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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