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확장 노리며 운 뗐지만 대통령실 발표 후 입장 선회…물밑 ‘조세개혁 TF’ 가동 중 알려져
대통령실이 상속세 인하, 종부세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세제 개편에 불을 지폈다. 6월 16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KBS ‘일요진단’에서 “(상속세) 최고 세율은 60%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6.1% 내외로 추산된다. 따라서 최대한 30% 내외까지 일단 인하하는 것에 대해서 필요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현행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 형태로 상속세 부과 형태를 바꿔야 한다. 상속세 공제 한도(일괄공제 5억 원, 배우자 최소공제 5억 원)는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실장은 “종부세는 지방 정부 재원 목적으로 활용되는데 사실 재산세가 해당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재산세로 통합 관리하는 것이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종부세 제도를 폐지하고 필요시 재산세에 일부 흡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종부세는 기본적으로 주택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한 반면에, 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 있는 요소가 상당히 있다고 보인다. 초고가 1주택 보유자와 가액 총합이 매우 높은 다주택 보유자에게만 종부세를 물리는 식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야당, 여론 등의 반응을 살피면서 감세 정책 추진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6월 16일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에서 “‘종부세 사실상 폐지’ ‘상속세 최고세율 30%로 인하’는 여러 검토 대안 중 하나”라며 “향후 구체적 개편 방안은 세수 효과, 적정 세 부담 수준, 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는 한편,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7월 이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보다 앞서 민주당에서도 감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5월 8일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종부세의 전향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아무리 비싼 집이라도 1주택이고, 실제 거주한다면 과세 대상에서 빠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5월 24일 공개된 신동아 인터뷰에서 “종부세로 인해 민주당이 집이 있고 부자인 사람을 공격하는 세력처럼 상징화됐다. 집값이 많이 내려갔고 공시지가 변화도 있어 예전처럼 종부세를 내지 않을 것이고 폐지한다고 해서 큰 변화는 없겠지만, 상징적 의미 변화는 매우 클 것”이라며 종부세 폐지를 주장했다.
6월 4일 국세청 차장 출신인 임광현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공동주택 공시 가격 상승으로 2022년 기준 상속 재산가액 5억∼10억 원 구간 과세 대상자가 (2020년 대비) 49.5% 늘어났다. 이 구간에 속하는 상속세 결정세액은 68.8% 급증했다”며 “그런데 일반 상속세 일괄공제 규모는 28년째 그대로인 5억 원”이라고 지적했다. 집값이 상승하면서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이 과도하게 늘어난 만큼 공제 한도를 높여 대상을 확대하자는 논리다. 여야 모두 중산층의 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큰 틀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셈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잇달아 세 부담 완화 정책을 거론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이재명 대표 대권 가도와 연관 짓는 해석이 나왔다. 중도층 외연 확장을 노리고 ‘우클릭’ 정책 군불때기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2022년 대선 때 종부세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당시 부동산 의제는 대선 향배를 가른 요인으로 꼽힌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부동산 정책과 후보자 도덕성: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슈가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보고서에 따르면 대선 투표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였다. 응답자의 31.1%가 1순위로 부동산 문제를 꼽았다.
앞서 인터뷰에서 고민정 최고위원도 “정권 재창출 실패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잘못만 따로 도려내서 본다면 아무래도 부동산이 컸다”며 “정권을 잡지 못하는 정당은 의미가 없다. 모든 선거는 중도 싸움일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서민의 정당만을 표방할 것인가. 기존의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이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종부세는 진보 진영의 상징적인 부동산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종부세는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됐다. 납세자 1% 미만의 고가주택·다주택 소유자를 대상으로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부유세 개념으로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종부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했다. 그렇다 보니 종부세 폐지를 두고 전통적인 진보 지지층 반발이 큰 상황이다. 그동안 ‘부자감세’라는 프레임으로 보수 진영을 꼬집어온 민주당이 감세 정책을 추진해 ‘조세 정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토끼(중도층) 잡으려다가 집토끼(지지층)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5월 24일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민정 최고위원의 종부세 폐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부동산, 금융 등 자산불평등 심화를 막고 공정사회를 실현한다’는 문구가 적힌 민주당 강령을 올렸다. 고 최고위원 주장이 당 강령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민주당은 곧바로 수습에 나섰다. 6월 4일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에서) 개별적인 견해들이 나오면서 시민사회에서는 당이 종부세를 폐지하고 완화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당에서는 공식적으로 종부세 관련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종부세에 대한 접근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감세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자 민주당은 ‘부자 감세’라고 비판하며 당초 입장을 선회했다. 상속세 인하를 언급했던 임광현 원내부대표는 6월 16일 “작년 세수 펑크가 56조 원이고, 올 4월까지 관리 재정 수지 적자가 64조 원이며, 중앙정부 채무는 1129조 원으로 전월 대비 13조 원이 증가했다”며 “나라 곳간은 거덜나고, 골목상권은 줄폐업하며, 민생은 도탄에 빠졌는데, 자산가들 세금 깎아주는 것이 지금 그렇게 시급한 현안이냐”고 대통령실을 비난하는 입장문을 냈다.
일각에선 정부·여당이 감세 정책을 추진하면 민주당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이 전통적 지지층 반발을 고려해 한발 물러섰으나, 물밑에선 박찬대 원내대표 지시로 조세개혁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당내 전문가로 구성된 TF는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재명 대표 ‘경제책사’로 불리는 이한주 민주연구원장도 진보 진영 반발에도 불구하고 ‘종부세 완화론’에 힘을 실었다.
이 원장은 5월 21일 공개된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평생 건실히 살아오면서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장만했는데 갑자기 집값이 뛰면서 종부세 대상이 된 분이 많다. 특히 은퇴하고 연세 드신 분들이 종부세 때문에 고충이 컸다”며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는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 다만 전면 폐지는 안 된다. 세목을 한 번 없애면 나중에 필요해져도 되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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