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애인 등 몸 불편한 사람들 천천히 지갑 꺼내 계산…친근한 농담 주고받는 점원 배려도 호평
94세 여성이 반찬 팩 몇 가지가 담긴 쇼핑카트를 밀고 ‘슬로계산대’에 섰다. 그러자 직원이 “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라며 말을 건넨다. 천천히 지갑을 꺼내고 지폐와 동전을 세어 정산을 마쳤다. 여성은 “이제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 나이다. 이 계산대라면 뒷사람의 눈치를 안 봐도 돼 편하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일본 후쿠오카현 유쿠하시시에 위치한 슈퍼마켓 ‘유메타운 미나미유쿠하시점’은 2020년 7월 슬로계산대를 처음 설치했다. 점장에 의하면 “고객이 스스로 바코드를 찍어 계산하는 셀프계산대와 바코드는 직원이 찍어 주지만 정산은 고객이 하는 세미셀프계산대를 중심으로 운영 중이었는데, 혼잡시에는 계산대에 긴 줄이 생기고 서둘러 지불하려다 지갑을 떨어뜨리는 등 당황하는 고령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에 초조해하지 않고 잔돈이나 카드로 느긋하게 계산할 수 있는 슬로계산대를 운영하게 됐다.
당초 월 2회만 시행했으나 예상외로 호평이 이어져 2021년 1월부터는 상설 운영 중이다. 담당 점원들에게는 운영 매뉴얼을 만들어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할 것” “무거운 바구니는 옮겨줄 것” “영수증은 별도로 전달할 것” 등을 강조하고 있다.
9년 전 뇌경색이 발병한 50대 여성은 오른쪽 손발이 불편하다. 지팡이를 짚으면서 천천히 걸어야 하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데도 시간이 제법 걸린다. 계산할 때면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는 “계산대에 줄 서는 것이 무서웠다”라고 했다. 쇼핑은 반드시 가족이나 도우미와 함께였다. 하지만 “슬로계산대가 생겨 혼자서도 방문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한다.
이처럼 슬로계산대에는 고령자 외에도 몸이 불편한 사람, 임산부, 경도인지장애 환자 등의 고객들이 줄을 선다. 계산원은 결코 고객을 재촉하지 않고 친근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담당 직원(52)은 “천천히 듣기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계산대에서의 대화를 즐기러 오는 고객도 있어 오히려 힘을 얻을 때가 많다”며 “슬로계산대와 비슷한 조치들이 확산돼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점원들의 배려가 입소문을 타면서 해당 점포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더욱 늘고 있다고 한다. 아사히TV에 따르면 “느린 계산대를 설치한 이 슈퍼마켓은 최근 매출이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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