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패널’ 화재 취약, 외국인 파견직 피해 키워…아리셀 측 “불법 없어, 사고 책임 다할 것”
#사망자 23명, 외국인 17명
6월 25일 오전 11시 53분쯤 시작된 합동감식에는 경찰·소방·국과수·한강유역환경청·국토안전연구원·고용노동부·산업언전관리공단 등 9개 기관에서 총 40여 명이 참여했다. 불이 시작된 지점으로 의심되는 2층 배터리 패키징룸(포장·보관실)을 중심으로 정확한 발화 원인과 소화 장비 가동 여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합동감식은 애초 10시 30분 착수할 예정이었으나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돼 미뤄졌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사망자들과 달리 1층에서 발견됐다"며 "화재 발생 후 일부 구간이 무너진 탓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번에 발견된 시신 역시 훼손이 심해 당장 신원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곧 DNA를 채취하고 유족 대조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아리셀 화재에 따른 사망자는 총 23명으로 늘었다. 국적별로는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이다. 성별로는 여성 17명, 남성 6명인데 대부분 사업장 구조를 자세히 모르는 파견·일용직 노동자로 추정된다. 다친 사람도 8명에 달한다.
#"도저히 식별 불가…" 역대급 재앙
6월 24일 오전 10시 31분쯤 발생한 불은 다음날 오전 8시 48분에서야 완전히 진압됐다. 신고 접수된 지 약 22시간 만이다. 사고 발생 당일 오전 10시 54분부터 '대응 2단계'(8~14개 소방서에서 51~80대의 장비를 동원하는 경보령)로 격상한 비상발령은 25일 오전 0시 42분에야 해제됐다.
그런 만큼 사건 발생 직후부터 현장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직접 현장을 찾아 곳곳을 둘러보고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다. 곳곳에서 정부와 경기도 및 관련 기관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댄 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책임·지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는 대화가 기자 귀에 들렸다.
소방당국 역시 신속히 불을 제압하고 실종자 등을 찾고자 밤샘 작업을 벌였다. 공장이 위치한 경기 화성시는 물론 인근의 남양주시와 전북 익산시 등에서 출동한 소방·구급대원들이 일제히 화재 현장에 뛰어 들었다. 대부분의 시신이 2층 패키징룸에서 발견돼 수습 자체는 비교적 빨랐으나 문제는 역시 신원 파악이었다.
화재 진압·구조에 들어간 한 소방대원은 "강철 기둥인 H빔마저 녹아내렸을 정도라 시신 훼손도 워낙 심해 무엇 하나 식별이 쉽지 않았다"며 "건물 도면을 보고는 '피해자들이 패키징룸에서 잘못 대피했구나' 추측할 뿐, 실제 대피로가 잘 만들어져 있었는지 혹은 각 길목에 적체물들이 쌓여있진 않았을지도 현재로선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방서의 한 간부는 "건물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녹아내린 점에 비춰보면 폭발이 순간적으로 일어나 대피할 여력조차 없었을 수도 있어 보인다"며 "혹은 공장이 '샌드위치 패널' 소재로 만들어진 까닭에 불길이 매우 빠르게 진행됐을 가능성도 의심할 수 있는 구조"라고 바라봤다.
#비용 아끼려다?…이주 노동자들 '안전'마저 취약
샌드위치 패널은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철판을 붙여 만든 건축용 자재다. 화재에 취약한 데다 불길이 붙었을 때 내뿜는 유독가스도 심각한 수준으로, 2020년 4월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38명 사망·10명 부상) 등 여러 사건에서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러다보니 아리셀 인근 공장의 직원들도 불안감을 토로하긴 마찬가지다. 아리셀이 위치한 '전곡 산업단지'의 대부분 공장이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탓에 만에 하나 불길이 번졌다면 상상조차 힘든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일대에서 만난 이웃공장 한 직원은 "이 동네가 사실상 모든 사업장이 샌드위치 패널이고, 게다가 배터리를 만드는 곳도 여럿"이라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24시간 생활하도록 하는 공장도 일부 있기 때문에, 혹여나 앞으로 또 어디선가 불이 나면 되돌리기 힘든 피해를 일으킬 수 있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통상 샌드위치 패널은 상대적으로 값이 싸기 때문에 '원가 절감' 목적으로 쓰는 기업이 많다. 아리셀 역시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피해자 상당수가 외국인이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회사가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일용·파견직 형태로 대거 인력을 고용했다는 추측이 나온다.
이 경우 이주 노동자들이 안전 측면에서도 얼마나 취약한지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그동안 이주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는 자주 문제가 됐으나, 언어장벽에 놓인 이들을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없이 단순반복 작업에 주로 투입해온 관행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아리셀 패키징룸도 단순포장 공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인근의 또 다른 배터리 공장에서 만난 한 방글라데시 국적 노동자는 "안전교육이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이 동네 대부분 공장에 동남아 출신이 많지만, 저 공장(아리셀)은 중국인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식당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우리처럼 한국말을 잘 못했다"고 떠올렸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에 따르면 일용직 근로자는 채용 때마다 1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일용직이 아니라면 8시간 이상 받아야 한다. 어기면 500만 원 이하 과태료다. 아리셀 현장에서 만난 고용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산안법을 넘어 중대재해법 여부도 봐야 하고, 전방위로 안전 관련 위법 여부를 들여다볼 듯하다"고 전했다.
#검·경 '중대재해법' 수사…100여 명 전담팀
검찰과 경찰은 각각 수사팀을 꾸리고 이번 참사 전반을 들여다 볼 방침이다. 수원지방검찰청은 이번 사건을 중대재해 사고로 바라봐 안병수 2차장 검사를 팀장으로 공공수사부와 형사3부 7개 검사실을 묶었다. 경기남부경찰청도 광역수사단을 본부장으로 한 130명 규모의 수사단을 구성했다.
화성시는 화성시청 5층에 피해통합지원센터를 만들어 운영에 들어갔다. 행정안전부·고용노동부·주한중국대사관·화성시로 구성된 상황총괄반 등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유가족 지원·사고 수습을 지원하는 곳이다. 화성시는 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건의한 상태로서, 당장 지역 곳곳에 합동분향소도 설치할 방침이다.
사망자들은 화성유일병원, 화성송산장례문화원, 화성장례문화원, 함백산추모공원, 화성중앙종합병원 등 5곳에 안치됐다. 경찰은 영안실에 안치된 시신을 부검할 계획이다. 신원이 확인된 한국인 사망자에 대한 부검도 예정돼 있다. 해외에 있는 유족들에 대해서는 법무부가 입국·체류 등을 돕고 있다.
한편 참사가 발생한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는 사고 이튿날 공장에서 모습을 드러내 사과의 뜻을 밝혔다. 박 대표는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게 돼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큰 책임감을 갖고 고인들과 유가족분들께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진심을 다해 필요한 사항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에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파견직이 포함되기는 했으나, 업무는 파견업체가 지시하는 형태로서 불법은 없었다"면서 "상시적으로 안전교육을 하고 있고 작업장 곳곳에 비상대피 매뉴얼도 비치했다"고 주장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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