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특정 신체부위, 물건 등에 대해 성적욕망을 보이는 것을 ‘페티시즘’이라 한다. 특이한 페티시즘의 세계에 대해 일본의 <주간겐다이>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페티시즘(Fetishism)은 본래 원시부족이 사냥하며 가지고 다니는 조개껍질이나 돌멩이를 두고 붙여진 말이다. 짐승을 잡을 때 성공하길 바라는 주술적 의미를 담아 부적처럼 지니고 숭배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근대 이후 점차 뜻이 넓어져 경제학에서는 화폐에 대한 물신숭배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성적인 면에서 페티시즘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87년.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가 논문에서 제시했다. 비네는 성적 페티시즘의 예로 군복, 간호사복, 수녀복 등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이에게 에로틱한 상상을 하는 제복 애호가를 들며 이들을 ‘제복의 연인’이라 불렀다. 성적 페티시즘이란 한마디로 애초에 성적인 대상이 아닌 것에 성적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비네에 따르면 성적 페티시즘에는 생리적인 것과 정신병리적인 것이 있다. 이를테면 이성을 좋아하는 행위는 생리적인 페티시즘으로 본능에 가깝다. 반면 구체적인 신체부위나 물건에 집착을 보이면 정신병리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가슴이 좋다’는 건 생리적 페티시즘인데 ‘큰 유두가 달린 가슴이 좋다’거나 ‘함몰된 유두가 좋다’는 건 정신병리적 페티시즘이다. 정신병리적 페티시즘에는 도착에 이를 정도로 심한 경우도 있는데 남에게 해를 끼치는지 아닌지로 일탈의 정도를 판단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점점 페티시즘의 대상이 늘어나고 있다. 서양문화권에서 롱부츠를 신은 여성, 가죽재킷이나 바지를 입은 여성에게 성적인 환상을 품는 남성들이 대표적이다. 페티시즘을 가진 사람은 여성보다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20여 년 전부터는 여성이 남성에 대해 갖고 있는 페티시즘도 등장했다. 거칠고 큰 손을 가진 남성, 움푹 팬 쇄골을 드러낸 남성에게 큰 매력을 느끼는 여성이 그 예다.
페티시즘 대상은 대개 신체부위, 패션, 상황 3가지로 나뉜다. 배꼽, 발바닥, 무릎 등 몸의 특정부분이나 하이힐, 속옷, 안경과 같은 소품을 떠올리면 된다. 상황은 좀 유별난 경우가 많은데 이를테면 사람이 자고 있을 때, 입고 있는 옷을 찢을 때 등이다.
그런가하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독특한 페티시즘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오리처럼 두툼한 입술에만 관심을 갖는 이, 암내를 맡으며 겨드랑이 털을 좋아하는 이, 벽이나 칠판만 보면 흥분하는 이 등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하얗고 통통한 여성의 허벅지에 페티시즘을 가진 남성들이 있는데, 이런 남성들은 허벅지를 ‘절대영역’이라고 지칭한다.
물론 일반인들이 이렇게까지 세분화된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이성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신체부위에 페티시즘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듬직한 어깨에 두툼한 팔뚝이 드러난 민소매 상의를 입은 남성, 둥근 엉덩이나 좋은 각선미를 가진 여성에게 성적 흥미를 보이는 정도에 그친다.
그럼 사람은 대체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쳐 페티시즘을 갖게 되는 것일까? 영국의 의사 겸 성과학자 헨리 해블럭 엘리스(Henry Havelock Ellis)는 저서 <성애의 상징화>에서 페티시즘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고유한 특성이라기보다는 유년기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획득되는 것이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걸치고 있던 의복이나 소지품, 신체부위에 대한 기억이 자라면서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고 원래 사랑하던 사람 이상으로 대상 자체에 애정을 품게 된다. 결국 이런 애정은 대상으로 모두 옮겨간다. 즉 사랑하는 이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과 같은 감정이 사랑하는 이를 상징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또 사춘기 이전에 우연히 성적인 자극을 받게 되면 그게 기억에 남아 있다가 페티시즘으로 변한다. 엘리스가 상담한 러시아 청년은 어렸을 적 유모의 앞치마에 얼굴을 묻고 잠에 드는 습관이 있었다. 어느 날 바지 위에 어쩌다 앞치마 자락이 닿으면서 성적쾌감을 느꼈고 이후 성년이 된 그는 앞치마를 입은 여성에게만 흥분하게 됐다. 엘리스에 따르면 우연한 기회에 겪은 성적인 상황일수록 기억에 남아 페티시즘이 될 확률이 크다.
한편 현재 일본남성들에게 가장 인기가 끌고 있는 것은 제복 페티시즘이다. 일본의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는 실제 스튜어디스가 입었던 유니폼이 한 벌에 무려 20만~30만 엔(약 270만~41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또 일본의 한 연애사이트에서 10~30대 여성 20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의 목소리, 체취, 복근 순으로 페티시즘을 느낀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