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즈’ 줄이고 될 만한 영화에만 선택적 투자…이선균 유작 연이어 개봉 ‘출혈경쟁’도
여러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투자금이 크게 줄었다는 의미다. 이는 개봉을 앞둔 영화들의 제작비 규모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바캉스 시즌은 6∼8월은 극장가 최대 성수기로 꼽힌다. 주요 투자배급사들이 이 시기에 경쟁력 있는 대작을 줄줄이 배치한다. ‘일정 수준의 흥행이 보장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무너진 지 오래다. 올해 개봉을 앞둔 영화들의 ‘사이즈’가 이를 증명한다.
#2022·2023년에는 1000억 원 육박했는데…
여름 성수기에 개봉되는 영화는 ‘텐트폴’이라 불린다. 통상 텐트를 칠 때 지지대가 되는 폴을 땅에 깊숙이 박는다. 폴의 높이와 안정감이 텐트의 완성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텐트폴 영화의 성패는 한 해 장사의 성패와 직결된다. 그래서 여름에 ‘어떤 영화를 배급하냐’가 중요하다.
지난해를 보자. ‘밀수’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 ‘더문’ 등이 개봉됐다. ‘더 문’이 280억 원이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됐고, ‘밀수’도 175억 원 수준이었다. 네 편의 제작비는 도합 860억 원이었다.
2022년도 만만치 않다. ‘외계+인 1부’를 비롯해 ‘비상선언’ ‘한산: 용의 출현’ ‘헤어질 결심’ ‘브로커’ 등이 쏟아졌다. 제작비 총합은 1000억 원에 육박한다.
2024년에도 6월부터 한국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제작비 규모를 따지면 상대적 박탈감이 꽤 크다. 7월 12일 개봉되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배우 이선균의 유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작비는 약 185억 원. 하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100억 원 언저리거나 그 미만이다. ‘파일럿’과 ‘행복의 나라’가 100억 원 수준이고, 배우 혜리가 주연을 맡은 ‘빅토리’는 83억 원 정도다. 이보다 먼저 개봉된 ‘핸섬가이즈’와 ‘탈주’는 약 49억 원, 80억 원으로 ‘중소’ 규모다.
물론 이 역시 적은 제작비는 아니다. 하지만 ‘텐트폴’로서는 과거 비슷한 시기 개봉된 영화들과 사뭇 비교된다. 최근 주 52시간 노동 시행으로 인건비 및 장비 대여료가 부쩍 상승한 것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제작 규모는 5년 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밀어내기’ 식 개봉도 도마에 올랐다. 업계 불황에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개봉을 못해 미뤄두었던 작품이 줄줄이 개봉 일정을 잡다보니 출혈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같은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가 연이어 개봉되는 것이 대표적 예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와 ‘행복의 나라’는 이선균이 주인공으로 나선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는 등 화제를 모았으나 2021년 촬영을 마친 후 3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행복의 나라’에는 조정석이 함께 출연했다. 게다가 조정석은 코미디 영화 ‘파일럿’도 선보인다. 물론 이선균과 조정석이 각각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의 결은 다르다. 하지만 같은 얼굴이 담긴 포스터가 극장에 동시에 내걸리는 것을 반기는 영화 관계자는 드물다.
#제작비 왜 줄일까
충무로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줄이 마른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팬데믹의 여파로 볼 수만은 없다. 팬데믹 시대에 오히려 호황을 누린 엔터테인먼트 영역도 있다. OTT, K팝 등이다.
팬데믹 기간, 개봉 영화의 수익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2022년 기준, 김우빈·김태리·류준열을 앞세운 ‘외계+인 1부’를 비롯해 송강호·이병헌·전도연이 뭉친 ‘비상선언’ 등은 큰 손해를 봤다. ‘한산: 용의 출현’ ‘헤어질 결심’ 정도만 체면치레했다.
2023년은 어땠을까. 돈을 번 영화는 ‘밀수’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하지만 ‘더 문’과 ‘비공식작전’의 성적은 처참했다. 100억 원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
이를 두고 ‘팬데믹 때문에 극장에 가지 않는다’는 분석은 옹색하다. 뮤지컬·연극 등 시장은 활황이었기 때문이다. ‘라이브’가 기반인 뮤지컬이나 연극은 OTT로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녹화물을 상영하는 방식인 영화의 경우 ‘스마트폰으로 봐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된 탓이다.
‘대박’의 기준인 1000만 영화 현황을 보면 무조건 ‘불황’으로 치부할 순 없다. 2023년 연말부터 반 년 사이 ‘서울의 봄’ ‘파묘’ ‘범죄도시4’ 등 3편의 1000만 영화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중이 극장에서 ‘볼 영화’와 ‘안 볼 영화’를 구분 짓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기반으로 볼 때, 제작비 역시 ‘선택적 감소’로 보는 것이 옳다. 흥행이 될 만한 영화에는 투자가 쏠리지만, 애매한 포지션의 영화는 아예 외면받는 셈이다. 차라리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얼굴을 앞세운 중소 영화가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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