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 언급” 파문…대통령실 “독대 멋대로 왜곡” 야권 “음모론 경도” 총공세
김진표 전 의장은 회고록 ‘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에서 2022년 12월 5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윤 대통령과 독대해 나눈 이야기를 공개했다. 당시 여야는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책임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때였다. 특히 야당은 주무부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고, 정부 여당은 이에 반대하고 있었다.
회고록에 따르면 김 전 의장은 윤 대통령에게 “이상민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게 옳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이 “그 말이 다 맞으나 이태원 참사에 관해 강한 의심이 가는 게 있어 아무래도 결정을 못 하겠다”고 말했다는 게 김 전 의장 주장이다. 김 전 의장이 “그게 무엇이냐”고 묻자 윤 대통령은 “이 사고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그럴 경우 이 장관을 물러나게 하면 그것은 억울한 일”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태원 참사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박홍근 의원이 6월 28일 자신도 김 전 의장으로부터 이러한 내용을 전해들었다며 당시 기록한 메모를 공개해 파문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박 의원은 “윤 대통령은 ‘MBC와 KBS, JTBC 등 좌파 언론이 사고 2~3일 전부터 사람이 몰리도록 유도한 방송을 내보낸 이유가 의혹이다. 우발적 발생이 아닌 특정 세력이나 인사에 의한 범죄성 사건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태원 참사 후 몇몇 보수 유튜버들은 온라인상에서 각종 음모론을 퍼트렸다. 김 전 의장 회고록에서 윤 대통령이 언급했다는 조작 가능성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물론, 유튜버들이 제기했던 음모론은 추후 경찰 조사 등을 거쳐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김 전 의장 회고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윤 대통령이 근거 없는 유튜브 상의 음모론을 국회의장과의 독대 자리에서 언급했다는 것으로 거센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덕진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대외협력팀장은 JTBC 인터뷰에서 “음모론을 제기하는, 어떤 그런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대통령이) 국회의장과 만난 자리에서 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도 회고록에서 “극우 유튜버 방송에서 나오고 있는 음모론적인 말이 대통령 입에서 술술 나온다는 것을 믿기가 힘들었다”며 “윤 대통령의 의구심이 얼마나 진심이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상당히 위험한 반응이었다. 나는 ‘그런 방송은 보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고 썼다.
파문이 일자 대통령실은 출입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김 전 의장 회고록 내용을 반박했다. 이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국회의장을 지내신 분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멋대로 왜곡해서 세상에 알리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면서 “대통령은 당시 참사 수습 및 예방을 위한 관계 기관 회의가 열릴 때마다 언론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혹을 전부 조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고 했다.
야당은 십자포화를 쏟아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6월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의장의 회고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이라면서 “국민 생명과 안전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가 떠드는 ‘아무 말 음모론’에 경도된 것도 모자라 사실로 굳게 믿고 국정 운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한다. 지금도 극우 유튜브를 시청하는지 명백히 밝히라”고 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같은 날 “야비하고 악랄한 음모론은 극우 성향의 유튜브 채널과 온라인상의 여권 지지자들이 대규모로 퍼뜨렸다. 일국의 대통령이 음모론을 믿고 있는 것”이라면서 “윤 대통령이 왜 그리도 유가족을 매몰차게 대했는지도 이해가 간다”고 주장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참 나쁜 대통령”이라면서 “누군가는 대통령이 그랬을 리가 없다고 하지만 저는 그랬을 분이라고 단언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실 입장을 일단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김진표 전 의장을 향해 날을 세웠다. 박준태 원내대변인은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왜 그때 직언하지 못했나. 회동을 마치고 나서라도 언론에 알렸어야 했다”고 했다. 박준태 원내대변인은 “허무맹랑한 가짜 뉴스를 국회 상임위원회장까지 끌고 들어와 정치공세를 펼쳤던 모습과 겹쳐진다”면서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사례를 거론하기도 했다. 박 대변인은 “(청담동 술자리는) 명백한 거짓임이 밝혀졌지만, 그 누구도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당권주자인 한동훈 후보도 6월 28일 기자들에게 “대통령실에서 그런 취지의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낸 것을 봤다”라며 “그 말을 신뢰한다”고 했다. 내용과는 별개로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공개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여권에선 나온다.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은 28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 “대통령과의 독대나 사적인 대화를 쌍방이 확인하고 동의하지 않은 방식으로 공개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어른인 국회의장 출신으로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에선 일단 용산의 해명이 나온 이상 이를 믿고 기다려보자는 기류가 강하다. 그러나 결이 다른 얘기들도 곳곳에서 나온다.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실은 국회의장을 지내신 분이 이야기를 멋대로 왜곡했다고 한다. 행정과 입법의 수장인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체 누구의 말이 사실인가”라면서 “정말 우리 대통령이 했다고는 믿기 어렵고 믿기도 싫은 말”이라며 “이 일은 대통령실이 왜곡이라고만 퉁치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만약에 이런 말이 있었다면 이것은 굉장히 충격적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은 6월 27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서 “(김 전 의장이) 없는 말을 할 그럴 분도 아니고, 실제로 걱정이 많이 돼 독대한 내용까지 공개한 것 아닌가 싶다”며 윤 대통령을 향해 “극우 유튜브를 그만 보시라”고 했다.
한 초선 의원은 28일 통화에서 “왜곡이라고 한 것은 대화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면 사실이 아니라고 했으면 됐다.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만약, 대통령이 그런 취지로 말했다는 게 확인이 되면 초대형 악재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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