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임기 만료라지만 7월 초 만찬까지 취소하고 갑작스럽게…한국에 대한 강경 노선 철회 복선 가능성
6월 28일 한 중국 소식통은 일요신문과 만나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본국으로 소환될 예정”이라면서 “대사가 교체될 것”이라고 했다. 7월 초 서울 모처에서 싱 대사 참석이 예정됐던 만찬은 취소됐다고 한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대사관 측은 만찬 취소를 갑자기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대사관 측은 만찬 취소 사유에 대해 “너무 죄송하다”면서 “싱하이밍 대사님 임기가 만료돼 갑자기 소환된다”고 했다. 중국 대사관 측 관계자는 “나도 혼란에 빠졌다”면서 “7월 초 모임은 일단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상황이 정리된 다음 다시 논의하겠다”고 부연한 것으로 전해진다.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한 관계자는 “중국 대사관 측이 공지한 내용을 보고 어리둥절했다”면서 “임기가 만료되는 것은 통상 예정된 일인데, 임기가 만료돼 ‘갑자기’ 소환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리송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임기 만료가 예정돼 있던 일이라면, 7월 초에 만찬 약속을 잡을 리 없지 않느냐”면서 “해당 통보를 받은 당일 언론 보도를 통해 싱 대사 소환 사실이 공식화됐다”고 말했다.
싱 대사 본국 소환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다. 싱 대사는 그동안 한국에서 ‘파이터 기질’을 자랑하며 사사건건 한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왔다. 정치권과 외교가에선 싱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 인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과거 중국 외교관들은 ‘물렁한 외교’로 본국의 지탄을 받아온 전례가 많았다. 시진핑 주석이 집권을 시작한 이후론 외교관 캐릭터가 전반적으로 바뀌었다. 이른바 ‘전랑(战狼) 외교관’이 육성돼 전 세계로 파견됐다.
전랑 외교관은 말 그대로 번역하면 ‘늑대전사 외교관’이다. 중국 관련 예민한 이슈와 관련해 ‘파이터 기질’을 뽐낼 수 있는 전투력을 갖춘 강성 외교관을 일컫는 말이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중국 전랑 외교관들은 무례한 발언으로 빈축을 사왔다.
전랑 외교관 대표적인 예가 싱하이밍 대사였다. 싱 대사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국면 때인 2020년 1월 주한대사로 임명됐다. 그는 중국 정부 파견 유학생 프로젝트 일환으로 북한 사리원농업대학을 졸업했다. 능통한 한국어 실력을 여러 차례 뽐냈다. 싱 대사는 김치왜곡, 한복공정 논란 등 한중관계에 있어 예민한 이슈와 관련해 적극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논란 중심에 서 왔다.
싱 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당시 윤 후보의 외교관 등을 반박하는 기고문을 언론에 게재하기도 했다. 2023년 6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선 윤석열 정부를 향해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한중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키는 방아쇠를 당긴 발언이었다.
싱 대사의 소환에 대해 또 다른 중국 소식통은 “북·러 정상회담 나비효과가 싱 대사 소환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최근 북·중 관계가 심상치 않다”면서 “북한 최선희 외무상이 주중 북한대사관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5월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세 나라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를 거론하자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TV는 “난폭한 내정간섭으로 낙인하며 강력히 규탄 배제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중국에 상당부분을 의존하던 외교 시스템의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바로 러시아였다. 2024년 들어 ‘밀월무드’에 돌입한 북·러 양국은 6월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파트너십을 공식화했다. 중국에 편향된 외교 채널 새로운 물꼬를 트는 조치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에게 있어 중국은 산소호흡기 같은 존재”라면서 “호흡기가 없으면 숨이 끊어질 수 있지만, 호흡기에서 나오는 산소만으론 성에 안차는 것이 북한의 입장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대북제재 국면 활로를 개척하는 루트를 러시아로 잡는 동시에 그간 누적된 북·중 외교 불만이 폭발하며 북·중 갈등이 본격화한 양상”이라고 했다.
앞서의 중국 소식통은 “러시아를 낀 북·중 갈등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면서 중국 당국도 외교 노선을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간 한국 정부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던 싱하이밍 대사를 중국으로 소환한 것이 노선 전환 복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이다.
“그동안 중국은 한반도 정세에 있어서 무게추를 북한 쪽에 두고 있었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월에 돌입하면서, 중국은 여러 방면에서 심기가 불편한 상황을 맞았다. 온건 성향 주한 중국대사를 파견해 한중관계를 회복하고 한반도 정세 관련 외교적 무게중심을 한국 쪽으로 옮기는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다.”
신임 주한 중국대사로는 천하이 주미얀마 중국대사, ‘일본통’ 슝보 주베트남 중국대사 등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천하이 주미얀마 중국대사는 중국 외교부 아주(아시아)국 부국장을 지내며 사드 배치 이슈와 관련해 “소국이 대국에 저항해서 되겠느냐”고 망언했던 인물이다.
한국통이면서 ‘친화력’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인사를 전격 기용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국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외교관들 이름이 차기 주한 중국대사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소식통은 “중국이 후임자를 인선하지 않은 상황에서, 싱 대사 교체를 결정할 정도로 의지가 강한 셈”이라면서 “짧은 시간 동안 변화하는 북·중·러 외교 상황 등을 후임자 인선에 반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식통은 “북한이 ‘삐딱선’을 타는 강도가 심해질수록 한국과 우호적 스탠스를 취할 수 있는 인물이 후임자로 부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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