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건 충족 안된 상황이라 당론 채택 신중…“차근차근 국조·청문회” “명백한 위법 증거 필요” 목소리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 마비 사태
6월 20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 글에는 △해병대 박정훈 수사단장에 대한 외압 행사(군사법원법 위반) △뇌물수수·주가조작·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조작 등의 의혹(국정농단) △9·19 남북군사합의서 파기(평화통일 의무 위반) △제3자 변제 방안 추진 등 일본 강제징용 해법 강행(대법원 판결 부정) △일본 후쿠시마 핵폐수 방류 방조(국민의 생명·안전권 침해)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국민청원을 올린 사람은 권오혁 촛불행동 사무처장이다. 촛불행동은 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강경 진보 성향 시민단체다. 2022년 4월 19일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단체는 2023년 12월 11일 윤 대통령 부부와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의 얼굴 사진을 향해 장난감 활을 쏘는 이벤트를 열어 논란을 빚었다. 앞서 국회의장 민주당 경선 때는 정성호 의원을 ‘새로운 수박(비명계 의원을 비하하는 용어)’이라고 지칭했다.
국민동의청원은 국회에서 운영하는 청원 시스템이다. 청원법 제4조는 “청원사항은 피해의 구제, 공무원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한 시정이나 징계의 요구, 법률·명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 또는 폐지, 공공의 제도 또는 시설의 운영, 그 밖에 국가기관 등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청원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청원인은 실명인증을 통한 회원가입 후에 청원을 할 수 있다. 본인 인증절차가 있어 동의자 명단 조작이 불가능하다. 5만 명 이상 동의자를 얻으면 관련 상임위에 회부된다. 국회사무처는 의원들에게 발안자와 동의자 실명을 공개해서 넘겨준다. 상임위는 청원을 심사해 본회의 부의 여부를 결정한다. ‘N번방 방지법(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이 국민청원 첫 입법 사례다.
청원은 5만 명 동의를 얻어 6월 24일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청원은 법사위 청원심사소위에서 심사할 예정이다. 청원심사 소위 5명 중 4명(김용민 김승원 박지원 서영교 의원)이 민주당 소속이다. 나머지 1명은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다.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청원을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는 여건인 셈이다. 본회의를 통과하면 청원은 정부로 이송된다. 정부는 청원 처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6월 27일 김진표 전 국회의장 회고록 논란이 터졌다. 김 전 의장은 회고록에서 2022년 12월 5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국회조찬기도회에서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이태원 참사에 관해 강한 의심이 가는 게 있어 아무래도 결정을 못 하겠다”며 “이 사고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또 불거진 용산발 악재 여권 긴장…여의도 덮친 김진표 회고록 후폭풍).
김 전 의장의 회고록 논란 이후 청원 동의자 수가 폭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국민동의청원은 상임위에 회부되더라도 동의 기간(30일 이내)이 남으면 계속 동의를 받을 수 있다. 동의자 수는 6월 29일 60만 명을 넘어섰다. 이날 청원 사이트는 2시간 가까이 접속이 지연되기도 했다.
6월 30일 국회의장실은 서버를 증설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장실은 우원식 국회의장 개인 페이스북에 공지문을 올리고 “국민의 청원 참여는 헌법상 권리이고, 국회법은 국회가 청원 업무를 전자화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국민청원 권리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은 국회 본연의 의무”라고 했다.
7월 3일 오전 10시 30분께 동의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청원 동의 인원은 꾸준히 이날 청원 사이트 접속 대기자 수는 1만 8000명을 웃돌았고, 대기 시간은 40분이 넘게 걸렸다. 국회 관계자는 “접속자 수 폭증으로 담당 부서 연결이 안 되고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민주당 신중한 기류 속 강경 목소리 확산
야권은 일제히 공세 수위를 높였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수석대변인은 6월 30일 논평을 내고 “윤 대통령이 극우 성향 유튜브 방송을 보고 국정 운영을 해왔다는 정황이 드러난 이후 청원 동의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며 “조만간 국민동의 100만 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이는 청원에 대한 국회 심사가 본격화되면 청원인이 제기한 윤 대통령의 탄핵 사유를 꼼꼼히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조국혁신당은 윤 대통령 탄핵을 위한 증거 확보해 집중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성윤 민주당 의원은 청원이 올라온 직후 페이스북에 청원을 소개하며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적었다. 전략기획위원장인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김진표 전 의장의 회고록을 언급하며 “2년도 너무 길었다”며 “비정상적 사고를 가진 대통령에게 미래를 맡기는 것은 무면허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6월 28일 페이스북에 “오늘 접속이 어려우면 내일 꼭 참여해달라”고 했다. 장경태 의원은 같은 달 30일 페이스북에 청원 사이트 접속 지연 소식을 전하면서 “국가 서버의 문제로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중대한 문제”라며 “서버 증축을 통해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국회가 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원이 민주당 의원은 일요신문에 “100만 명이 신원이 드러나도 좋다는 결의와 각오를 가지고 서명했다. 예전에는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면 지금은 온라인상으로 촛불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사실상 심리적 탄핵을 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의원들의 개별 입장과 달리 민주당은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것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요건이 아직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탄핵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탄핵 추진은 시기상조라고 입장을 낼 수도 없어 난감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자칫 당원들이 거세게 반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원이 의원은 “당 차원에서는 생각이 깊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탄핵 요건은 까다롭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7월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 청구를 재판관 9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헌재는 ‘헌법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이 명확하게 입증돼야 탄핵이 인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무리하게 탄핵을 추진하다 역풍을 맞은 사례도 있다. 2004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다. 당시 노 대통령 지지율은 25% 수준이었다. 그러나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직후 탄핵 반대 여론이 약 75%까지 급증했다. 2004년 4월 15일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이 탄핵 반대 여론을 등에 업고 152석으로 과반 의석을 획득했다. 헌재는 같은 해 5월 14일 탄핵심판을 기각했다. 현재 윤 대통령 지지율은 31.6%다(리얼미터). 탄핵소추안 추진 때의 노 전 대통령 지지율보다 높은 수치다(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법사위원회 소속의 한 민주당 의원은 “국민적인 열망이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는 있는데, 의원 3분의 2가 (본회의에서) 동의해야 하고, 헌법재판소가 승인해야 하는 문제”라며 “숫자가 많다고 무조건 할 수는 없고, 위법 사항 같은 것들을 잘 정리해야만 가능하다. 무작정 감정대로 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청원 동의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가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더 공세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강경론에 불이 붙는 분위기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국회법에 규정된 수단을 활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청원심사소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심의·의결 과정에서 청문회나 국정조사를 열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법사위 소속 다른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얘기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며 “청원이 국민의 목소리로 들어왔다. 그 사유를 하나씩 확인하는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할 수 있다. 앞으로 그런 것들을 차근차근 확인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촛불행동은 7월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탄핵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며 “앞으로 야당 지도부를 만나 탄핵청원으로 표출되고 있는 국민들의 강력한 뜻을 전하고 탄핵 시간표를 확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강득구 김준혁 민주당 의원과 한창민 사회민주당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이런 청원과 민주당의 스탠스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경우에도 촛불집회가 계속 이어졌다. 그런 영향에서 헌법재판소가 자유롭지는 않다. 다만 적어도 헌법이 요구하는 요건은 충족돼야 한다”며 “(탄핵에) 상응하는 위법이나 위헌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보인다. 탄핵으로 가기에는 좀 어려운 상황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이 진행한다는 게 채 상병 특검이나 김건희 여사 문제다. 여기에 설령 개입했다는 게 나와도 탄핵은 되기 힘들어 보인다. 탄핵은 쉽게 되는 게 아니다”며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가 대법원에서 확정되기 전에 대선을 치르기를 바라는 게 민주당 입장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면 대선을 앞으로 당기는 방법밖에는 없다. 탄핵이나 임기 단축밖에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실은 7월 2일 “명백한 위법 사항이 있지 않는 한 탄핵이 가능할 거라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탄핵을 계속 언급하며 국정이 잘 진행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온 것 같다”며 “이 상황을 잘 주시하고 있고 국회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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