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독립성 높일 방안 강구해야”…행동주의 펀드 활성화도 고려해볼 만
재계 6위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은 5개 회사에서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보수를 챙겼는데 그 규모가 177억 1500만 원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2018년 이후 매년 보수를 꾸준히 늘려왔다. 그 결과 2018년 57억 5000만 원이었던 보수가 지난해 177억 1500만 원으로 급증했다.
보수가 증가한 만큼 경영에 성실히 참여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신동빈 회장은 롯데지주,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등 4곳에서 이사회 구성원으로 경영에 참여했는데 평균 이사회 참여율은 71.5% 수준에 그쳤다. 4번의 이사회가 열리면 1번 이상은 불참했던 셈이다. 이들 회사 이사회에 참여한 이사들이 대부분 참석률 100%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총수가 겸직을 하면서 일반주주와 자신의 이해가 엇갈리는 경영적 판단을 내릴 때도 적지 않다. 현대차그룹에서 정의선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계열사와 거래를 통해 거둔 매출이 현대차 1조 3998억 원, 기아 1조 2106억 원, 현대모비스 4165억 원 등 총 3조 269억 원이다. 거래를 하고 있는 4개 회사 모두 상장사라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상충할 수 있다. 특히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의 등기임원(회장)으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이들 회사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이 거래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모두 고려됐는지는 의문이다. 김형균 차파트너스 상무는 “계열사 간 거래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가 많은데 임원으로서 이 같은 거래에 경영적인 판단을 내리는 게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미등기 임원 총수들도 경영에 성실히 참여하는지 의문이다. 이들은 이사회 참석 의무가 없어 성실히 기업경영에 참여했는지 판단할 잣대가 없다. 지난해 기준 10대 그룹 가운데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그룹 총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하이닉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한화·한화솔루션·한화시스템),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신세계·이마트), 이재현 CJ그룹 회장(CJ·CJ ENM·CJ제일제당) 등이다. 재계 사정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현실적으로 많은 계열사의 임원으로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를 해결하기 어려운 데는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한다. 지배주주의 전횡을 감시해야 할 이사회의 독립성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지배주주는 적은 지분으로 손쉽게 이사회를 장악한다. 이사회의 이사는 주주총회 의결사항인데 출석 주식수의 과반, 발행주식의 4분의 1 이상이 참석하면 선임된다. 하지만 통상 지배주주가 자신이 원하는 이사의 선임을 위해서 30% 정도의 지분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이나 기관투자자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도 실제로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하는 경우도 드물다. 국민연금이 직접적으로 주총에서 목소리를 내면 정치적인 공세에 휘말리기 쉽다.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정부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국민연금은 이 같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정 규모의 기금을 자산운용사에 맡겨 간접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도 주주총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 이들 자산운용사가 투자자금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제 목소리를 내다가 해당 기업과 관계가 틀어지면 해당 기업이 자금을 맡길 자산운용사를 선정할 때 배제될 수 있다. 한때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A 자산운용사가 최근 목소리를 낮춘 이유도 이 같은 압박이 작용했을 것이란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 관계자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우 직원들의 퇴직금 관리를 위해 자산운용사에 맡기는 자금 규모가 크다”며 “이외에도 맡길 수 있는 자금이 많아 자산운용사들이 기업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대안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자산운용사에 자금을 맡길 때 적극적으로 주주로서 목소리를 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일본 연기금 성격인 GPIF는 기금을 자산운용사에 맡길 때 이들 자산운용사에 적극적으로 스튜어드십코드(의결권행사 지침)를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스튜어드십코드를 적절히 적용하지 못했다고 판단된 자산운용사는 연기금 운용 계약을 다시 맺기 어렵다. 반면 우리나라는 형식적으로 맡기는 것에 그친다. 국민연금이 자산운용사에 스튜어드십코드 적용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은 없다.
행동주의 펀드를 활성화하는 것도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를 운영하는 자산운용사는 투자 회사와 이해관계가 단순하다. 행동주의 펀드 자산운용사가 유치하는 자금의 출처는 대부분 개인이다. 이 때문에 행동주의 펀드는 적극적으로 투자금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목소리를 낸다. 행동주의 펀드는 배당금 확대를 요구하기도 하고, 이사회나 경영진의 불합리한 경영적 판단에 반대하는 주주서한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특성을 보이는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가 커지면 비합리적인 총수의 겸직을 해체하려는 움직임도 강화될 수 있다.
다만 현재 행동주의 펀드 운용사의 규모가 작아 실질적인 영향력은 미미하다. 자금을 유치하기 어려워서다. 통상 자산운용사는 규모가 큰 기업의 자금을 유치해 운용해야 빠르게 성장하는데, 행동주의 펀드는 일반 주주의 이익을 지키는 것을 중점적인 가치로 삼고 있는 탓에 큰 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을 유치하는 경우가 드물다. 국민연금이 일정 규모의 기금을 행동주의 펀드 운용사에 맡기는 것이 행동주의 펀드 활성화 방안이 될 수 있다.
김형균 상무는 “해외와 같이 연기금이 행동주의펀드나 주주 관여 활동을 주요 투자전략으로 하는 자산운용사 등에 운용 기금을 배분해 기업들의 밸류업을 이끌 수 있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연기금 가입자, 즉 우리 국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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