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 4분기 중 HBM3E 12단 제품의 엔비디아 퀄 테스트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월 삼성전자는 HBM3E 12단 개발에 최초로 성공했다. 올해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HBM3E 12단 제품을 2분기 중 양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아직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퀄 테스트 통과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HBM3E 제품 공급 시점을 하반기, 특히 3분기로 예상하는 이야기가 많았다”며 “시장에서 기대했던 것만큼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AI(인공지능) 가속기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엔비디아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38%로 SK하이닉스(53%)에 이은 2위다.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구형인 HBM2(2세대)와 HBM2E(3세대)에서 대부분 나온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3를 사실상 독점 공급해 왔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HBM3E 8단을 양산해 엔비디아에 납품했다. 삼성전자도 HBM3E 8단에 대한 엔비디아 퀄 테스트도 진행 중이다. 다만 SK하이닉스가 이미 HBM3E 8단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어 매출을 높이기 위해선 HBM3E 12단 납품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 남건욱 극동대 글로벌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먼저 퀄 테스트 인증을 받고 납품하면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경쟁사가 인증을 통과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그만큼 독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엔비디아는 기술을 까다롭게 검증한다. SK하이닉스를 뒤쫓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승우 연구원은 “처음 공급하는 업체가 물량을 가장 많이 가져갈 수 있어 유리한 측면이 있다”라고 밝혔다.
HBM은 AI 가속기의 필수 부품이다. D램을 쌓아 만들며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HBM3E 12단은 D램을 12층 쌓아 올린 제품이다. 엔비디아가 내년에 출시하는 X100 등에 HBM3E 12단이 장착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HBM3E 12단을 공급해야 내년 엔비디아 제품에 탑재할 수 있다. HBM3E 12단은 차세대 HBM인 HBM4(6세대) 전 마지막 단계다. HBM4는 엔비디아가 2026년에 출시할 차세대 GPU ‘루빈’에 탑재된다.
경쟁사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 HBM3E 12단 제품 양산을 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당초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SK하이닉스는 내년 HBM3E 12단 제품을 양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가 양산 시기를 앞당겼다. SK하이닉스는 7월 1일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 반도체위원회를 신설하며 HBM 총력전을 펼치는 모양새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HBM 업체 중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퍼스트 벤더사다. 퍼스트 벤더사를 제치고 세컨드 벤더사를 먼저 쓰는 일은 관례상으로 거의 없다”며 “삼성전자는 아직 엔비디아로부터 HBM3E 8단의 퀄 승인도 못 받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도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6월 26일(현지시간) 마이크론은 2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2025년 말까지 HBM 시장 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지난해 기준 마이크론의 HBM 시장 점유율은 9%다. 삼성전자와 패키징 공법이 비슷한 마이크론은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 H200에 탑재되는 HBM3E 8단을 소량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은 내년 HBM3E 12단 양산이 목표다.
이민희 연구원은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고객사를 다양화하는 편이 낫다. HBM 업체들끼리 경쟁을 시켜 낮은 가격으로 제품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삼성전자는 수율 등 품질을 끌어올리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송재혁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 CTO(최고기술책임자) 사장은 7월 3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나노코리아 2024’ 기조연설 이후 엔비디아 HBM 품질 테스트와 관련해 “열심히 하고 있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DS부문은 7월 4일자로 HBM 개발팀 등을 신설하며 역량 강화에 나섰다.
‘영업기밀 보안 강화까지…’ 정치권 반도체 육성 법안 잇따라 발의
지난 6월 28일 이재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 기술의 보호·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발의했다. 전략기술 보유자가 외국 정부로부터 전략기술과 관련한 정보 제출을 요구받으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게 골자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따른 보조금 지원 조건으로 영업기밀인 예상 웨이퍼 수율(생산품 중 합격품 비율)과 반도체 공장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등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재관 의원실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요구받았을 때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장관이 최종 승인한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좀 더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기밀정보가 유출됐을 때 국회에 보고할 수 있어 감시 역할이 강화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7월 3일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했다. 올해 일몰 예정인 세액공제 기한을 2034년까지 10년 연장하는 방안이 담겼다. 세액공제율을 최대 10%포인트까지 올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반도체 기술 시설투자와 연구개발(R&D)에 대한 공제율을 각각 15~25%에서 25~35%로, 30~50%에서 40~50%로 높이는 것이다. 김 의원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재정 지원 등을 강화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안’도 대표발의했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반도체 산업 육성 법안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지난 5월 31일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은 K-칩스법 일몰 기한을 2030년까지 6년 연장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난 6월 19일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반도체 생산시설 구축에 보조금 등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게 그 골자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