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나경원·윤상현 ‘원톱 때리기’ 협공…“한동훈 팬덤층 두터워 쉽게 무너지지 않아”
#원·나·윤, ‘한동훈 배신자’ 한 목소리
원희룡 나경원 윤상현 후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연일 한동훈 후보를 때렸다. 이들은 한 후보가 윤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프레임을 앞세웠다. ‘친윤’계가 미는 것으로 알려진 원희룡 후보는 7월 1일 기자간담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약속된 대리인인 줄 알았던 한 후보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총선을 진행하면서 대통령과 의미 있는 대화 한마디 진행하지 않았다”며 “이걸 알면 당원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 후보는 같은 날 페이스북에도 글을 올려 “지금까지 자신을 아끼고 키워준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도 불사하겠다고 하고, 특검법도 발의하겠다고 한다. 참으로 나쁜 정치”라고 비판했다. 한 후보가 ‘배신하지 않을 대상은 국민뿐’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원 후보는 “뒤집어 말하면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배신, 당에 대한 배신은 별것 아니라는 것으로 들린다”며 “윤석열 정부 성공이나 당을 위한 길이 아니라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위한 노골적인 행보”라고 직격했다.
원 후보는 6월 30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한 후보에게는 3가지가 없다. 소통이 없고, 신뢰가 없고, 경험이 없다”고 했다. 원 후보는 “한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지난해 12월부터 총선이 끝난 4월 10일까지 저희는 (윤-한) 충돌이 있어도 약속대련인 줄 알았다”며 “나중에 한 후보를 만나서 대화했더니 (한 후보와 윤 대통령 간) 의미 있는 소통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해서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원 후보는 “우리가 알았던 한 후보가 대통령과 신뢰관계가 아니라는 팩트를 가지고, 당원들이 잘 판단해야 한다”며 “차별화와 배신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쏘아붙였다.
나경원 후보도 한 후보의 배신자론을 부각하고 나섰다. 나 후보는 7월 3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한 후보 개인은 진정성을 갖고 용산을 비판해도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매번 갈등, 충돌, 개인 욕심, 차별화, 선 긋기로 다뤄질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다”며 “이미 배신의 늪에 빠졌다”고 말했다.
나경원 후보 캠프의 김민수 대변인은 6월 30일 논평을 내고 “한 후보가 지금 서 있는 그 자리,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 장관까지 역임한 것은 역시 시험 치고 된 것이 아닌, 대통령과의 연에서 시작됐음을 잊지 않길 바란다”며 “당원들은 한 후보에게 묻는다. 대통령은 안전하냐. 국민의힘은 통합될 수 있는 것이냐”고 말했다.
윤상현 후보는 7월 4일 대구를 찾아 한동훈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다. 윤 후보는 이날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정책간담회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당을 살리고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고심해 달라는 차원”이라며 사퇴 요구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아무리 당대표가 급해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당이 분열할 위험이 커진다면, 한 후보가 당대표직을 양보해야 한다. 만약 후보직을 내려놓는다면 원희룡 후보도 물러서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남권에서 통할까
정치 전문가들은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원희룡 나경원 윤상현 후보가 배신자 프레임을 들고 나온 것은 노림수가 있다고 분석한다. 대통령과 집권당 리더 그룹이 반목했을 때 당이 어려움을 겪었음을 3명의 후보들이 당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신자 프레임의 핵심 공략 대상은 여당 최대 지지세력이자 당무 고관여층인 영남권 당원들로 본다.
원희룡 후보는 7월 1일 페이스북 글에서 “대통령과 당 대표가 갈등하면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2016년 새누리당,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 사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동영 후보 사례에서 이미 경험했다”고 했다.
원 후보가 언급한 2016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사례는 박근혜 대통령과 한때 그의 최측근으로 지냈던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간 갈등을 의미한다. 유 원내대표는 청와대를 향해 여러 사안에서 각을 세웠고 결국 배신자라는 정치적 낙인이 찍혔다. 이로 인해 본인도 큰 어려움을 겪었고 박근혜 정부는 결국 탄핵의 길로 빠져들었다.
1997년 대선 때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대선 후보가 서로 등을 돌린 것 역시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이회창 후보는 자신을 감사원장·국무총리로 발탁해준 김영삼 대통령과 완전히 돌아섰다. 이 후보는 대선 경쟁자였던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 수사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요구했다가, 김 대통령이 이를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수사연기를 지시하자 김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은 김 대통령 화형식까지 열었고 감정의 골이 깊어진 두 사람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이인제 후보가 독자적으로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사실상 방기하면서 이회창 후보를 밀지 않았고, 이 후보는 김대중 후보에게 패하면서 여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대구·경북의 한 전직 의원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소박한 진리는 짧은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도 확인되는데 여당의 리더가 자신을 정치적으로 성장시켜준 대통령과 각을 세웠을 때 무조건 결과가 나빴다”며 “이 역사가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다시 소환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원희룡 나경원 윤상현 후보는 대구·경북을 비롯해 영남권을 집중적으로 방문하면서 배신자 프레임을 펼치고 있다. 과거의 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보수 진영을 집중 공략하는 작전이다. 영남권은 그 어떤 지역보다도 윤 대통령 지지세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수치적으로 봤을 때도 당원 80%, 일반 여론조사 20%가 반영되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영남권 당원 비율이 가장 높다. 7·23 전당대회 선거인단 규모는 역대 최대인 84만 3292명으로 확정됐다. 권역별 선거인단은 영남권이 40.3%로 가장 많고, 수도권은 37.0%를 차지했다. 충청권 14.1% 강원권 4.1% 호남권 3.1% 제주 1.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영남권과 수도권이 3%포인트(p)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만큼 영남권이 절대적으로 키를 쥐는 시대가 저물었다는 분석도 나오긴 한다. 하지만 영남권의 경우 수도권에 비해 투표 참여율이 매우 높은 터라 여전히 응집력이 가장 크다고 당원들은 입을 모은다. 게다가 역대 전당대회를 보면 수도권 당원들도 영남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이에 동조화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2021년 6월 전당대회 때 서울 노원에서만 출마했던 서울 사람 이준석 후보가 대구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이준석 바람’을 영남에서부터 일으켰다”며 “한동훈 후보를 추격하는 배신자론이 영남에서 먹히면 한동훈 후보가 앞서는 기존 판세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점쳤다.
#아직 대세론은 유효
홍준표 대구시장은 영남권의 대표적 정치인이면서 ‘한동훈 불가론’의 선봉에 서있다. 정가에선 홍 시장이 잠재적인 대권 라이벌을 견제하는 차원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7월 4일 ‘한동훈 배신자 프레임’이 먹히고 있다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1강 2중 체제에서 2강 1중 체제로 바뀌면서 1강이 1중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희룡 나경원 후보를 2강으로, 한 후보를 1중으로 분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 시장은 또 “정권과 동행을 거부하는 후보는 퇴출하자는 급격한 기류가 전당대회 흐름을 바뀌게 하고 있다”며 “경륜 있고 정치를 아는 사람이 난국을 이끌어야 하고 총선 참패 주범들은 이제 자숙하라는 게 대세”라고 한 후보를 겨눴다. 이어 “당원들의 회초리가 무섭다는 걸 보여주는 전당대회가 돼야 한다”며 “후안무치한 사람들에게 책임정치가 무언지 가르쳐 주는 전당대회가 됐으면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선 한동훈 후보의 대세론이 아직은 공고하다는 기류가 강하다. 복수의 여론조사 역시 이를 반영한다. 정치권에선 4명의 당대표 후보 중 유일하게 팬덤층을 형성하는 있는 것이 한 후보라는 측면에서 민심 20%를 발판으로 한 대세론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관측한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여론조사공정이 데일리안 의뢰를 받아 7월 1~2일 실시, 4일 발표한 ‘국민의힘 당 대표 적합도’ 여론조사 결과(무선 ARS 방식,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에 따르면 한동훈 후보가 35.0%로 1위를 차지했다. 원희룡(11.3%) 나경원(9.8%) 윤상현(5.2%) 후보 순이었다.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한동훈 후보가 62.9%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이어 원희룡(17.9%) 나경원(8.1%) 윤상현(2.7%) 후보가 그 뒤를 이었다(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 후보가 7월 2일 후원금 계좌를 연 뒤 9분도 안 돼 한도액을 다 채운 것만 봐도 그의 두터운 팬덤층을 확인할 수 있다. 한 후보 캠프에 따르면 후원자는 1792명이며, 이 중 10만 원 이하 소액 후원자만 1604명에 이른다. 총모금액은 1억 7749만 1377원으로 집계됐다. 모금 한도는 1억 5000만 원이지만 20% 범위 안에서 초과 모금이 가능하다는 선거관리위원회 확인이 있어 더 받았다는 게 캠프 측 설명이었다.
대구·경북 한 현역 의원은 “거대 야당의 폭주는 여권 전체의 단일대오 구축을 촉구하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한동훈 배신자 프레임은 남은 전당대회 기간 더욱 그 경로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 위원장은 배신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 노력이 먹히느냐 여부에 따라 대세론의 명운이 갈릴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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