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계 “영부인 사과 시기 놓쳐 총선 망쳐”…한동훈 “공적 통로로 소통, 사과 의사 없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의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의혹은 7월 4일 김규완 CBS 논설실장이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지난 1월 김 여사가 한 후보에게 보낸 문자 내용을 재구성해 공개하면서 확산됐다.
문자에 따르면 김 여사는 “한동훈 위원장님 최근 저의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부담을 드려 송구합니다. 몇 번이나 국민들께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대통령 후보 시절 사과를 했다가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진 기억이 있어 망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어떤 처분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사과를 하라면 하고 더 한 것도 요청하시면 따르겠습니다. 한 위원장님 뜻대로 따르겠으니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이때(1월)가 디올백 문제로 당정 갈등이 굉장히 심했다. 문제는 한 전 위원장이 이 문자를 흔한 말로 ‘읽씹’했다”며 “김 여사 입장에서 굉장히 모욕을 느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자를 보낸 시점을 지난 1월 18일에서 21일 사이로 특정했다. 이에 앞서 1월 17일에는 한동훈 비대위의 김경률 비대위원이 소위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이 있었고, 한동훈 후보도 다음날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호응했다. 이후 김 여사가 한 후보에 문자를 보냈는데 한 후보가 이를 읽고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얼마 뒤 이 사실을 알고 격노, 1월 21일 이관섭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한 후보에 보내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한다.
실제 1월 19일 김 여사와 한 후보 사이에 텔레그램 메시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파장이 커지자 한 후보 측에서 즉각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발하면서도 김 여사에 디올백 문제 등과 관련해 문자 메시지를 받은 사실은 인정한 것.
한동훈 후보는 다음날 “내용을 재구성했다고 하지 않나. 내용이 좀 다르다”면서도 “내가 쓰거나 보낸 문자가 아닌데 그 내용에 대해 말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집권당의 비대위원장과 영부인이 사적인 방식으로 공적이고 정무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총선 기간 동안 대통령실과 공적 통로를 통해 소통했다”며 “동시에 국민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전달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같은 날 KBS ‘사사건건’에 출연해서는 “내게 무리하게 뒤집어씌우려 한다”며 “실제로는 사과하기 어려운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김 여사가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할 의사가 있었던 게 아니라 어렵단 취지였음을 암시한 것.
이러한 해명에도 ‘반한동훈’ 진영을 구축하고 있는 당권 경쟁주자들과 친윤계에서는 ‘배신의 정치’ ‘총선 책임론’을 앞세워 집중 공격했다. 나경원 후보는 자신의 SNS에 “한 후보의 경험 부족이 가져온 오판이다. (김 여사 대국민 사과 등)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돌파구를 찾았어야 했다”며 “한 후보는 지금이라도 당원과 국민, 우리 당 총선 후보자 전원에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원희룡 후보 역시 “총선 기간 중 가장 민감했던 이슈 중 하나에 대해 당과 한 전 위원장이 요구하는 걸 다하겠다는 영부인의 문자에 어떻게 답도 안 할 수 있나. 공적·사적 따지기 전에 인간적으로 예의가 아니다”라며 “‘절윤’이라는 세간의 평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더 나아가 ‘윤석열 1호 참모’라 강조하는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은 김 여사의 읽씹 문자가 5차례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김 여사가) 5번이나 모든 것을 책임지고 당의 결정을 따르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사과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는데 전부 무시한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민감한 정무적 이슈에 5번 읽씹이라는 무시와 방치로 직무유기를 했다면 당연히 이유를 설명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령 이재명 대표가 문자를 보내도 5번이면 최소 1번은 답장할 것 같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이 불거진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1월 문자가 반년 가까이 지나 공개된 것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심이다. 한 후보 역시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의아하다”고 밝혔다.
야권 한 관계자는 “김 여사와 한 후보의 텔레그램 메시지는 두 사람만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 후보는 전당대회가 한창인 지금 ‘문자 읽씹’이 알려져 좋을 게 없기 때문에, 김 여사 측에서 언론에 흘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이나 김건희 여사의 전당대회 개입이다”라고 지적했다. 향후 진실공방의 진행상황에 따라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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