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다 대고” “쳐봐” 여야 디스전 도 넘어…양 진영 “집토끼 사수” 극한대립 장기전 전망
‘디스’는 다른 그룹이나 사람을 폄하·공격한다는 의미를 지닌 힙합 용어다. 일상적으로도 자주 활용된다. 정치권에서도 ‘디스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치권 디스전이 수위는 도를 넘고, 수준은 반대로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7월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선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이 설전이 펼쳐졌다. ‘채 해병 특검법’ 관련 필리버스터가 24시간 진행된 뒤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토론 종료를 요청했다. 이에 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석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여당 의원들은 발언을 계속해서 진행하게 해달라는 취지로 거세게 항의했다.
여야 의원 간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진성준 의원은 “국회법대로 처리해 달라”고 외쳤다. 잠시 뒤 진 의원은 “마무리하고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배현진 의원이 진 의원 말을 맞받아쳤다. 이에 진 의원이 “무슨 소리 하고 있어?”라고 묻자, 배 의원은 “어디서 반말이냐”고 맞섰다. 진 의원은 “어디다 대고”라고 말하자, 배 의원은 “뭐, 뭐, 뭐”라면서 “쳐봐”라고 응수했다. 두 의원 사이 마찰이 거세지면서 여야 의원들이 두 의원을 말렸다.
여야 의원들이 오랜 시간 대치한 끝에 표결에 돌입한 ‘채 해병 특검법’은 찬성 189표, 반대 1표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 이후 표결이 강행됐다면서 국회 개원식 불참을 선언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흡사 술자리에서 일행 간 시비가 붙었을 때나 벌어질 법한 일이 입법의 심장인 국회 본회의장에서 일어났다”며 “제22대 국회에서 이런 장면을 빈번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가 여소거야 국면으로 개편되면서, 사실상 국회가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 대리전 무대가 됐다”며 “윤석열 정부 입장에선 총선 참패로 인해 ‘국회 어웨이 게임’을 계속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이 주도해 통과시킨 특검법 및 입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한 재표결에서 부결되는 패턴이 22대 국회 초반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 가운데 여야 힘대결이 극한으로 치달으며 디스전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지금 국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투쟁뿐”이라며 “여당 의원임에도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은 상당히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의석에서 압도적으로 밀려 가동범위가 극한으로 작아졌는데, 싸우지도 않으면 민심이 여당을 더욱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민주당 입법부 장악 시도에 투쟁이라는 맞대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야권 역시 입장은 정반대지만 투쟁이 필요하다는 방향성은 같다. 야권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민생이 무너지고, 검찰독재만 남았다”며 “검찰독재를 심판하라고 국민들이 총선에서 야권에 힘을 실어줬다. 윤석열 정부 폭주를 견제하는 것이 제22대 국회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채 해병 특검을 비롯해 김건희 특검 등 현 정부 최고위층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규명하는 것은 도덕성 검증 첫 걸음”이라며 “그동안 폭주해 온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면 야권이 되레 국민들로부터 무능하다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일선에선 행정부와 입법부 대리전 양상을 띠는 국회 내 극한대립이 물러설 수 없는 승부라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특검’ ‘탄핵’ ‘방탄’ 등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야 극한대립은 장기전 양상을 띨 전망이다. 여기에 국민의힘이 전당대회 이후 전열을 재정비하며 여야 대립각은 더욱 날이 매서워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회 곳곳에선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는 신경전이 국지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6월 24일 육군 중장 출신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민주당 정청래 법사위원장을 겨냥해 “위원장과 법사위원들이 국회의원이 맞는지 눈과 귀를 의심했다”며 “청문회에서 해병 순직 의혹 진상 규명을 하기는커녕 군인을 세워놓고 갑질 막말 조롱을 일삼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 의원은 정 위원장을 향해 “군대 갖다 왔느냐”며 “의원 지위를 악용해 인권을 유린하고 개인 권리를 묵살해도 되느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문제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보이콧을 멈추고 복귀한 6월 25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은 유상범 의원을 향해 “저기요”라며 “위원님 성함은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이어 정 위원장은 유 의원에게 “국회법 공부 좀 하고 오시라”고 덧붙였다.
해당 발언으로 국민의힘은 들끓었고, 정 위원장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여당을 향해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응수했다.
7월 1일엔 국회 운영위에서 신경전이 오갔다. 야당 측에서 대통령비서실, 안보실, 경호처 등의 업무보고 자료가 사전에 제출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민주당 원내대표 박찬대 운영위원장은 “아무런 준비를 안 하고 나오신 것 자체가 국회를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여당 간사도 공식 선임되기 전인데 무슨 협의가 이뤄질 수 있느냐고 맞섰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야당 측 입장을 ‘갑질’이라고 표현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강 의원은 “‘민주당 아버지’는 그렇게 가르치느냐”고 외쳤다. 민주당 지도부 인사가 “민주당 아버지는 이재명 대표”라고 말한 것을 빗댄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운영위는 여야 의원들의 고성으로 얼룩졌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더 센 막말 이후 서로가 서로를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제22대 국회에선 윤리위가 가장 바쁠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회에서 막말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는 이유와 관련해 정치적 이념 대립이 심해지면서 여야가 ‘집토끼 공략’ 차원으로 상대를 비방하는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관계자는 “민주당은 ‘이재명 사천 논란’을 겪을 정도로 이 대표 및 팬덤과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이 공천돼 국회로 입성했다”며 “국민의힘도 공천에 큰 혁신을 주지 않으면서 ‘집토끼 사냥’에 능숙한 이들이 주로 공천됐고,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은 주로 ‘양지’ 출신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핵심 지지층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사이다 정치’가 유행하면서, 협치보다는 서로가 대립각을 세우며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심을 양분 삼아 인기만 높이려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권에서 막말 구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며 “각자 진영에서 강성 지지층에게 잘 보이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진영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국민소환제 등을 실시하면 정치인들의 막말을 견제할 수 있다. 다만 국민소환제를 실시하려면 개헌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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