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직 안에서 하급 경찰관을 상대로 한 '먼지털이' 식 감찰 등은 최근 유독 문제가 돼 왔다. 특히 상대적 소수 집단에 속한 여경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왠지 잦다는 문제의식이 꾸준했다. 그럼에도 비슷한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어 경찰 내 지휘부나 감찰 등을 향한 불신은 갈수록 깊어지는 분위기다.
#3년 치 복무자료에 남편 카드 내역도 '탈탈'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경찰청과 광주광역시 북부경찰서에 '경찰의 부당한 처우에 의한 인권침해' 사항을 통지하며 해당 관리자에 대한 직무교육 재실시를 권고했고, 청문감사실 관계자를 포함한 2명에게 복무점검 시 정확히 근거자료를 확인한 후 자료를 요구할 것과, 제3자가 있는 공간에서 스피커폰으로 수사 내용과 관련한 통화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문서로 통지했다.
이번 사건은 2022년 10월 불거졌다. 북부서 소속 여경 A 경사는 '시간선택제' 형태로 근무해오며 여러 문제를 느껴 상급청인 광주경찰청의 담당자와 면담을 진행했다. 시간선택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목적으로 경찰관이 원하는 시간만 일하는 제도인데, 실상은 초과근무가 많고 적정 임금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면담 후 A 경사는 북부서에서 징계 대상에 올랐다. 청문감사실이 돌연 A 경사에 과거 3년 치 병가 등 휴가를 소명할 각종 자료 100% 제출을 요구했다. 같은 경찰관인 A 경사 남편의 카드사용 내역 제출까지 요청했다. 이와 동시에 A 경사의 근태 사항과 초과근무 임금 과지급 사례 등을 다시 살피기도 했다.
북부서는 A 경사가 허위로 병가 등을 갔다며 전자기록 등 위작 혐의로 2023년 4월 고발했다. 하지만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 결과는 무혐의. 광산서는 약 4개월 동안 수사를 벌인 끝에 "소명 자료를 확인한 결과 허위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공전자기록위작 혐의 적용은 어렵다"고 밝혔다.
A 경사 입장에선 간신히 무고를 입증한 셈이지만, 피해를 돌이키긴 힘들었다. 고발 첫날부터 '휴가·근태 허위보고 광주 여경'으로 묘사돼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광주경찰청은 '이런 행위는 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교양자료를 만들어 모든 직원들에게 배포까지 한 상태였다.
미리 승인받아둔 연가가 감찰조사 직전 갑자기 취소되는 일도 겪었다. A 경사는 이 과정에서 연가 직전 직속상관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출근하지 않으면 신상에 해로울 수 있다"는 등 경고를 들었다고도 주장했다. 반면 직속상관은 "연가 사용은 자유이므로, A 경사의 연가도 결코 제한한 적이 없다"고 맞서왔다
A 경사의 이 같은 사연은 일요신문이 2023년 10월 25일 처음 보도하며 알려졌다(관련기사 [단독] '시간선택제 문제제기 하자…' 여경, 소속 경찰서와 법적다툼 준비 내막). 사안 조사에 나선 인권위는 약 8개월 만인 올 6월 내놓은 결과에서 북부서 등이 A 경사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회적 평판에도 악영향" 인권위의 일침
인권위는 A 경사가 직속 상관의 압력 탓에 연가 사용을 못했으며, 이는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A 경사가 상관과 통화를 마친 후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출근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점으로 미뤄보아 연가 취소가 자의는 아니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A 경사가 당시 주변에 극심한 괴로움을 토로한 메시지도 발견됐다.
A 경사가 고발당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자체도 문제라고 봤다. 인권위는 "비록 익명보도였지만 북부서 직원들은 기사 속 주인공을 쉽게 유추하고 특정할 수 있었다"며 "이런 탓에 A 경사는 복무를 악용한 당사자로 특정돼 사회적 평판과 명예에 큰 악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A 경사 사건은 논란이 한창이던 당시 '시간선택제'로 짧은 시간 일하는 여경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경찰의 고질적이고 그릇된 조직문화가 원인이란 시선도 일부 있었다. 이번 인권위 조사에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이 일부 파악됐다. 2022년 북부서에서 자녀를 양육하며 시간선택제로 일한 경찰관은 A 경사가 유일했다고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인권위 조사에서 모든 부분이 A 경사에 유리하게 나오진 않았다. 인권위는 북부서 감찰이 A 경사에 과거 3년 치 복무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피의사실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정식 수사를 의뢰한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이는 각 조치가 과도했는지를 떠나 경찰 고유 권한으로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속칭 '먼지털이'를 연상케 하는 조사 방식이 우려된다는 뜻만큼은 명확하게 담았다. 인권위는 '의견'임을 전제로 "이번 권고와 별개로 앞으로 피진정인들의 복무점검(감찰)을 할 때에는 정확한 근거부터 확인한 이후에 대상자들에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당부했다.
경찰 안팎에선 인권위의 이번 결정을 유의미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여경을 대상으로 한 부당 감찰 등의 논란이 반복돼 온 상황 속, 모처럼 외부기관이 개입해 경찰 조직 문제를 꼬집은 사례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경찰의 노동조합 격인 전국 경찰직장협의회도 경찰청 등에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공식 촉구했다.
인권위 결과를 확인한 광주경찰청은 A 경사의 직속상관 및 북부서 감찰 관계자들을 조사할 방침이다. 부당한 업무지시 및 감찰의 절차상 하자 여부 등을 따져보기 위해서다. 감찰 대상에 오른 한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인권위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저도 아파서 쉬고 있으니, 이 일로 더는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 경사는 "10년여 전 경찰이 너무 되고 싶어 지나가는 순찰차만 봐도 가슴이 벅차 눈물을 흘렸는데, 이제는 순찰차를 보면 저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되고 숨이 막힌다"며 "인권위가 미처 지적하지 못한 부분은 증거를 보강해 이의를 제기할 계획이다. 주요 관계자들은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소를 마쳤다"고 밝혔다.
반복 또 반복…'먼지털이식' 감찰 논란 언제까지?
여경을 둘러싼 경찰의 부당감찰 논란은 2023년 4월 서울 성동경찰서 소속 박인아 경위 사건을 계기로 공론화했다. 박 경위는 파출소장 지시로 근무 도중 '지역 유지'로 불린 80대 노인을 응대하다 성추행 등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수사 결과 주요 내용들이 사실로 확인되며 문제의 노인은 강제추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그 후 박 경위는 파출소장의 '역진정'으로 감찰 조사에 시달렸다. 파출소장이 '보복성 신고였다'며 중도 취하했는데도 감찰 조사는 계속됐다.
박 경위는 감봉 3개월 중징계를 받았다. 점심시간에 형사복을 입다 '근무 중 사복 착용' 등이 적용된 결과라 논란이 컸다. 노인 응대를 지시한 파출소장은 직권남용 등으로 입건돼 검찰에 송치됐는데, 정작 경찰 감찰은 가장 가벼운 '견책'으로 끝났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제주경찰청에서는 한 여경이 전자기록 등 위작 등 혐의로 감찰을 받다 검찰에 송치된 사건이 벌어졌다. 수사과 소속 B 경위가 고소·고발인 동의를 얻었다고 꾸며내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에서 허위로 '고소 반려' 처리를 했다는 혐의다.
이 역시 여러 언론에 보도됐으나,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에는 되레 "과도한 감찰이었다"는 탄원이 잇따르고 있다. 경찰 내부망에도 사건을 조사한 제주청 감찰 등을 향한 비판 글들이 연달아 게재됐다.
이들은 △B 경위 소속팀은 팀장의 암묵적 동의로 킥스 아이디·비밀번호를 이미 공유해 왔고 △2023년 9월 당사자 구두동의를 받고 고소를 반려한 사안이 문제의 발단이 됐는데 △제주청이 3년 치 기록을 전부 훑는 별건 조사로 송치를 했다고 항변했다.
다만 제주청 관계자는 "해당 사안은 감찰에서 수사로 이어진 사례로 혐의 입증을 위해서는 옛 기록도 살피는 게 당연하다"며 "정말 팀장의 묵인이 있었다면 B 경위는 무죄일 텐데, 진실이 무엇인지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