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선균 유작 가운데 첫 공개 “이선균의 일, 개인적으로 그저 안타까워”
“아주 개인적으로, 지인이었던 사람으로서 영화배우라는 것을 떠나서 그저 안타까워요. 아마 그게 어떤 일이었어도 안타까웠겠죠. 그리고 이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 느끼는 책임감이나 부담감 부분에 대해서는, 원래도 이 정도의 압박감은 늘 있었던 것이라서 (이선균의 부재와 관계없이) 똑같이 느껴져요. 다만 영화계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이렇게 사이즈가 큰 작품을 개봉하는 터라 느끼는 압박감은 확실히 있어요.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7월 12일 개봉하는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 스릴러 영화다. 주지훈은 공항대교 부근 주유소에서 투잡을 뛰며 인생 한방을 노리다가 재난에 엮이게 된 렉카(견인차) 기사 조박으로 출연해 긴장감 넘치는 서사에 무게를 덜어내는 ‘유쾌한 분위기 전환’ 담당 캐릭터로 열연을 펼쳤다. 특히 군데군데 어설프게 염색된 긴 머리카락과 꾀죄죄한 옷 차림으로 무장한 역대급 파격 변신 비주얼이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제가 어렸던 1990년대 초반에 제 주변에 주유소에서 일하는 형들이 있었는데 되게 이기적이었어요. 남의 돈도 막 훔치려고 하고(웃음). 또 나이도 어리고 돈이 없으니 고급 미용실에서 염색을 못하고 맥주로 염색하고 그랬죠(웃음). 그렇게 떠올린 이미지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걸 조박에게 적용한다면 조금 위험하긴 해도 작품에 잘 스며들 수 있을 것이라고 결정했어요. 이 친구의 옷차림 같은 것도, 굉장히 낡고 오래된 견인차를 모는 친구가 비싼 새 옷을 입고 다니진 않을 것 같더라고요. 이런 필(Feel·느낌)들이 모여서 조박의 비주얼이 만들어진 거죠.”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이기적으로 굴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미워할 수 없는 조박은 그 캐릭터성으로 인해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전체적인 결과 비교했을 때 다소 튀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시사회를 통해 먼저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는 그의 이런 모습이 영화 자체와 따로 노는 불협화음처럼 느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주지훈 역시 이런 비판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관점에 따라 다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박은 그게 맛이라고 생각해요, 튀는 맛(웃음). 관점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네 캐릭터가 튀어 보였다’고 말씀하시면 제가 뭐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죠. 사실 제가 봤을 땐 조박이 그렇게까지 튀어 보이진 않았거든요. 예를 들자면 자동차로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뾰족해서 저는 좀 아팠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어도 제 서스펜션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느끼셨다면 그게 또 맞는 거겠죠(웃음). 저는 이런 비판이나 대화가 터부시 되지 않고 건강하게 나눠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로서는 드물게 캐릭터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내는 현장이었다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에서 주지훈은 고된 액션도 스스럼없이 해낼 만큼 조박이란 캐릭터에 진심이었다고 했다. 특히 극중 군사용 실험견들의 위협에 입안에 머금은 위스키를 횃불에 내뱉어 ‘불쇼’로 방어하는 신을 촬영할 때는 부상을 입을 정도로 혼신의 열연을 펼쳤다고 한다.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에 “당연히 무서웠다”며 웃음을 터뜨린 주지훈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불이 멀리 나가게끔 위스키를 뿜어야 했는데 순간 목의 침샘이 열리면서 그 안에 위스키가 들어가 염증이 생겼어요. 사실 촬영할 때 되게 무서웠는데 다른 수가 있나요(웃음). 그 장면은 극적인 상황에서 위기를 타파하는 중요한 순간을 다루는 건데, 차력사나 전문가도 아닌 데다 원래는 꽤나 자기 안위를 챙기는 애가 동료애로 이런 일을 하는 신이었거든요. 거기서 또 너무 완벽하게 하면 이상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보시면 불을 뿜고 자기도 놀라죠(웃음). 조박이 그렇게 해내는 걸 표현하려면 저도 흉내가 아니라 진짜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극중 조박과 특별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준 사랑스러운 강아지, 조디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조박과 함께 재난의 현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게 되는 조디는 사람 배우들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여주며 신 스틸러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여기에 촬영 현장에서 인권보다 나은 견(개 견, 犬)권을 보여주며 주지훈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는 뒷이야기가 더해지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제가 계속 강아지를 들고 뛰어야 하는데 저는 덩치가 크지만 강아지는 굉장히 작거든요. 연기하다가 제가 잘못해서 꽉 안기라도 하면 다칠 수 있으니까 굉장히 비싼, 실제로 보면 놀랄 정도로 똑같은 인형을 만들었어요. 영화에서 등장하는 강아지 신에서 클로즈업을 제외하면 70~80%는 인형이에요. 같이 연기하며 배우로서 슬픈 점이 있었다면 강아지의 복지나 처우가 저보다 더 나았다는 거죠(웃음). 저희는 맨날 ‘힘든 거 아는데 한 번만’하고 꾀면 다 넘어가는데 강아지는 말이 안 통하니까 휴식시간하고 촬영시간이 다 보장될 수밖에 없거든요. 걔는 일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어서 촬영이 끝나면 딱 보내주고 그런 게 너무 부럽더라고요(웃음).”
이처럼 강아지와도 종을 넘어선 찰떡 케미스트리를 보여준 주지훈은 현재 tvN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 촬영에 한창이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처럼 특히 장르물에서 넘치는 존재감을 보이며 어느 순간부터 ‘비일상적 장르물 특화 배우’로 자리매김해 왔던 그에게 있어서는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일상물이라고 했다. 다만 특수한 배경이나 설정 덕에 어느 정도 연기의 면죄부가 주어지는 장르물과 달리 일상물은 생활 연기처럼 평범한 모습이 주가 되다 보니 대중들의 도마 위에 포장 없이 날것 그대로 올라간다는 두려움도 무시할 수 없을 터다. 이에 대해 주지훈은 “제 연기에 대한 비판이라면 100%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저는 완벽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제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아닐 지를 알지 못해요. 하지만 제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서 작품에 도전하게 되는 거죠. 부족한 것은 지탄 받아야 맞고, 또 저에 대한 이야기도 제가 감내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비판을 보면서 ‘나도 저 부분을 걱정했었는데, 이 부분은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여요. 다만 비판이 아닌 조롱은 아예 안 봐요. 누가 저한테 ‘너 내일 벼락 맞아 죽어라’ 하면 귀담아 듣지도 않죠, 난 안 맞을 거니까(웃음). 그렇게 조롱과 비판을 구분해서 듣는 게 배우로서 제겐 다행인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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