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로 지정 안 돼 불법 투약자는 과태료 처분…불법 판매자만 약사법 위반 혐의 처벌
‘2023년 9월 서울 강남구에서 람보르기니 차량을 주차하다 시비 붙은 상대 차주를 흉기로 위협한 30대 남성 홍 아무개 씨에게 전산마취제 A를 투약해 준 의사 등 병원 관계자 9명을 적발한 경찰이 이들을 검찰에 송치했다.’
최근 화제가 됐던 ‘오재원 사건’과 ‘람보르기니 남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 전산마취제 A는 에토미데이트다. 중요한 부분은 에토미데이트는 마약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7월 4일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람보르기니 남’ 홍 씨에게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해준 의사 등 B 병원 관계자들을 검찰에 송치했다. 마약범죄수사대가 나섰지만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마약류관리법 위반이 아닌 약사법 위반. 7월 10일 강남경찰서는 오재원의 마약류 대리 처방 및 투약에 연루된 이들을 검찰에 송치했는데 에토미데이트 앰풀 수천 개를 진료와 처방 없이 판매한 병원 원장 등 관계자들에게 약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B 병원은 2019년 9월부터 2023년 9월까지 병원을 찾은 환자 75명에게 회당 10만~20만 원을 받고 하루에 56회까지 에토미데이트를 판매했다. 이렇게 4년 동안 무려 8921회에 걸쳐 에토미데이트 4만 4122㎖를 판매·투약한 B 병원은 12억 5410만 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에토미데이트는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전신마취제지만 프로포폴과 달리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있지 않은 전문의약품이라 마약류관리법 위반이 아닌 약사법 위반 혐의만 적용 가능하다. 그나마도 경찰이 에토미데이트 불법 투약 의사에게 약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은 ‘람보르기니 남 사건’이 처음이다.
에토미데이트가 세간의 화제를 집중시킨 결정적 계기는 2016년 11월 국회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청와대 의약품 구입현황’ 자료가 공개된 것이었다. 여기에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정, 팔팔정, 국소 마취제인 리도카인염산염수화물 주사 등과 함께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청와대 측은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는 자발적 호흡이 불가능한 응급상황에서 기관삽관술을 할 때 진정제와 근이완제로 쓰이며 응급 상황에 신속하게 처치할 수 있도록 구입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과도한 양이 문제가 됐다.
에토미데이트의 정식 명칭은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Etomidate-lipuro Injection)로 신경계감각기관용 의약품으로 중추신경계용약인 전신마취제다. 무색투명한 앰풀에 든 백색의 유제성 주사제로 전신마취 유도제로 쓰인다. 프로포폴과 유사한 효과를 지녔지만 임상연구를 통해 중독성과 내성, 신체적 의존성 등이 의료용 마약류로 지정할 만큼 높지 않다는 결과가 나와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았다. 의약계에선 사용 빈도가 높으면 의존증에 시달릴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료용 마약류 지정을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오남용 문제점은 분명하지만 중독성 없는 약까지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할 경우 사용에 제약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에토미데이트는 2011년 프로포폴이 마약류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되면서 오남용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유사한 효과를 지녀 마약류로 지정된 프로포폴을 대체할 수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후 프로포폴 대용품으로 에토미데이트를 고가에 불법 판매하다 수사기관에 적발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에토미데이트는 마약류가 아니어서 투약자는 사법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번 B 병원의 사례에서도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70여 명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마약류가 아닌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에 과태료 처분만 받았다.
2020년에는 가수 휘성이 서울 송파구의 한 건물 화장실에서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뒤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틀 뒤에도 광진구의 상가 화장실에서 또 다시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채 발견돼 화제가 됐다. 휘성은 에토미데이트 불법 투약으로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2021년 3월 휘성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 에토미데이트뿐 아니라 프로포폴도 상습 투약했기 때문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것이다. 프로포폴 불법 투약 수사 진행 중에 프로포폴과 유사한 효능이 있는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점이 양형 요소에서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결국 집행유예로 실형을 피했다.
반면 휘성에게 에토미데이트를 건넨 판매책 남 아무개 씨는 긴급 체포돼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이러다 보니 에토미데이트를 불법 판매하는 이들이 “(투약 사실이) 적발될지라도 위법이 아니라 과태료 처분으로 끝난다”며 영업 활동을 하고 있을 정도다.
‘오재원 사건’과 ‘람보르기니 남 사건’에서 거듭 에토미데이트 규제의 필요성이 드러나자 경찰은 식약처와 법무부에 에토미데이트의 의료용 마약류 지정을 제언했다. 현재 식약처는 에토미데이트의 의료용 마약류 지정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를 위해 자료조사 및 의견조회를 실시해 전문가 심의위원회 회의를 가질 계획이다.
다만 2019~2020년에도 식약처가 관련 움직임을 보였지만 결국 마약류로 지정하진 않았다. 당시 식약처는 전문가 자문 및 국외 마약류 지정 현황 등을 종합 검토했지만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마약류 지정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3항은 향정신성의약품을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것으로서 이를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미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 지정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식약처가 새로운 과학적 근거가 등장한 상황도 아닌데 마약류로 지정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유엔(UN)을 포함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스위스 등 해외 주요 국가들도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관리하지 않고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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