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흙·물·불의 예술
도자기는 흙으로 빚은 그릇을 구워내는 방법에 따라 ‘도기’(陶器)와 ‘자기’(瓷器)로 나누어진다. 장독으로 쓰이는 옹기가 도기의 일종이라면, 청자와 백자는 대표적인 자기라 할 수 있다. 자기는 흔히 ‘사기’(沙器)라고도 불리는데, 백토(고령토) 등을 혼합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그릇을 말한다. 이처럼 사기를 만드는 전통 기술 또는 그 기능을 가진 장인을 가리켜 사기장(沙器匠)이라 하며, 1996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사기장이란 조선시대에 사옹원(음식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서 사기를 제작하던 장인을 일컫던 말이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도자기의 산지로 유명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천하제일의 비색 청자로서 그 명성을 국외에 떨쳤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기관인 사옹원에서 자기를 만들었는데, 왕실에서 사용하는 자기의 경우에는 경기도에 따로 설치된 분원에서 특별히 제작했다. ‘경국대전’ 공전에는 사기장 380명이 사옹원에 배정돼 일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명나라 사신들이 조선의 도자기를 받기를 청하는 대목이 나와 우리 자기의 우수성을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 세종 때에 명 황제 인종의 요구에 따라 10탁분의 백자 그릇을 광주의 요(기물 등을 굽는 가마)에서 만들어 올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조선 후기에는 관요(정부 관리하에 도자기를 만드는 곳)가 폐쇄되면서 실력 있는 장인들이 문경, 괴산, 단양 등 지방으로 흩어져 민요(민간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곳)가 번창하게 됐다.
전통 자기를 만드는 제작 과정은 크게 여덟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흙을 선별해 채취하는 일이다. 보통 도자기 흙으로는 고령토와 사토(모래가 많이 섞인 흙)가 적합하다. 두 번째는 도자의 밑감이 되는 흙(태토)을 만드는 과정으로 ‘수비’(水飛) 과정이라고도 한다. 점토와 원료를 물에 풀어서 가라앉혀 이물질이 제거된 앙금만 걷어서 쓴다. 세 번째는 앙금에서 얻은 보드라운 흙에 물을 부어 반죽하는 ‘꼬박 밀기’ 과정이다.
네 번째는 물레를 이용해 사발 등의 그릇을 성형하고 건조하는 과정이다. 이때 나무로 만든 물레를 시계 방향으로 회전시키며 모양을 잡는데, 이렇듯 왼발로 물레를 돌리고 손으로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방법이 도자기 장인들의 고유한 기술이다. 다섯 번째로, 건조된 사발 등의 그릇 굽(밑바닥에 붙은 나지막한 받침)을 깎고 서서히 말리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섯 번째는 그릇을 가마에 넣고 800℃ 전후의 온도로 굽는 초벌구이 과정, 일곱 번째는 유약을 만들어 초벌한 그릇에 입히고 건조시키는 과정이다. 초벌구이 후에 그릇에 문양이나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유약은 도자기에 액체나 기체가 스며들지 못하게 하며 겉면에 광택이 나게 한다. 여덟 번째로 1200℃ 이상에서 마지막 단계인 재벌구이 작업까지 마치게 되면 하나의 도자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 중 하나라도 모자란 것이 있으면 결코 제대로 된 자기가 나올 수 없다고 하니, 사기장의 작업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서민적이면서도 활달한 조선분청사기와 단아한 선비의 향을 담고 있는 조선백자와 같이, 도자기 장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걸작들은 한국적 정감과 멋을 나타내는 전통 도자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초대 사기장 기능보유자인 김정옥 선생은 경북 문경에서 210여 년간 7대에 걸쳐 전통 민속 사기를 빚어 온 명가의 후손이다. 선생의 아들(김경식)도 사기장 전승교육사로 활동하고 있으니 8대가 도자기 외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흙이 가마 속 불을 통과해야 아름다움을 얻듯, 김 사기장의 집안도 오랜 세월 동안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야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의 요업이 일본 상인들의 하청 수준에 머무르면서 도자 장인들의 삶도 지극히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고, 광복 이후에는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대량 생산되는 다양한 그릇에 밀려 우리 도자기가 설 자리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 사기장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선조들의 전통 도자 기술을 그대로 계승하고 발전시켜 우리 도자기를 부활시킨 주인공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빚어낸 분청사기와 백자 찻사발, 다기류, 청화백자 항아리 등은 조선시대 사대부와 명장들이 표방했던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과 멋이 그대로 재현돼 있어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자료 협조=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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