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이성민·유연석과 호흡 맞춰 박찬욱 감독 영화로 컴백…“현빈과 결혼? 인격에 많이 반했다”
손예진이 돌아왔다. 지난 4일 개막한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올해의 배우 특별전의 주인공으로 손예진을 선택하고 그의 대표작인 ‘덕혜옹주’와 ‘비밀’ 등 작품을 상영했다. 이에 맞춰 2년 만에 관객과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낸 손예진은 예전에는 작품의 성공 여부에 따라 마음이 달라졌지만 지금은 아이가 한 끼 이유식만 잘 먹어도 기쁘다고 말했다. 결혼을 통해 일상이 달라지면서 배우로서 마음도 달라졌다는 말이다.
2022년 3월 배우 현빈과 웨딩마치를 울리고 그해 11월 아들을 낳은 손예진은 2년 동안 온전히 가족에 집중했다. 마지막 출연 작품은 결혼 직전 공개한 드라마 ‘서른, 아홉’. 결혼과 함께 작품 활동도 멈췄다. 그사이 육아에 집중한 손예진은 “앞으로는 스스로 다치게 하거나 너무 채찍질만 하면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누군가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일상의 여유를 갖고 더 넓은 시선을 갖고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20대 때 예쁜 걸 모르고 지나왔다” 고백
손예진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아 기자회견 및 관객과 대화에 잇따라 참여해 근황을 밝히고 배우로 살아온 20년의 시간을 돌아봤다. 오랜만에 팬들과도 가깝게 만난 그는 어디서도 들려주지 않았던 지난 일들을 이야기했고,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손예진이 풀어낸 여러 이야기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끈 발언은 ‘청순의 아이콘’,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뜨겁게 사랑받았던 20대 시절에도 자신이 예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작품의 성공이나 연기 도전과 변신에 더 열중한 나머지 그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20대 때 정말 풋풋하고 예뻤는데 당시에는 제가 예쁜 걸 모르고 지나왔다”는 손예진은 그때 주연한 영화 ‘클래식’이나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다시 보면 “‘이런 눈빛이었구나’ ‘이런 표정이었구나’ 싶은데 그때 왜 즐기지 못했을까 싶다”고 돌이켰다. 대중은 열렬히 손예진의 청순한 아름다움을 칭찬했지만, 정작 그는 사람들의 반응과 무관하게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고백은 영화제 현장을 찾은 영화팬들을 놀라게 했다.
손예진은 2001년 MBC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연기를 시작해 이듬해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드라마도, 영화도, 시작부터 주연을 맡은 건 분명 행운이다. 데뷔 순간부터 주목받았지만 손예진은 그 이미지에 안주할 생각이 없다는 듯 도전을 거듭했다.
이번 영화제를 계기로 영화를 통해 도전을 거듭한 손예진의 여정이 새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데뷔 초 주연한 로맨스 영화 ‘연애소설’이나 ‘클래식’을 넘어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의 이야기 ‘내 머릿속의 지우개’, 배우자들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외출’, 남편을 두고도 또 결혼하겠다고 선언하는 ‘아내가 결혼했다’, 운명을 건 처절한 복수의 이야기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까지, 모두 20대 때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소화한 다채로운 작품들이다.
손예진은 “가련한 이미지로만 국한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고 그걸 이루기 위해 다른 역할을 하고 싶은 몸부림으로 여러 작품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현빈과 결혼한 이유도 처음 공개
손예진은 이번 영화제 기간 관객들과 직접 만나 대화하는 메가토크 자리에서 남편인 배우 현빈에 대한 이야기도 처음으로 허심탄회하게 풀어냈다. 영화제를 찾은 한 관객은 손예진에게 ‘현빈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왜 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모두가 궁금하지만, 공식적으로는 한 번도 묻지 못했던 질문이 나오자 메가토크 현장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갑작스러운 관객의 질문에 잠시 당황한 빛을 보인 손예진은 “엄청 신선한 질문”이라고 웃은 뒤 현빈을 만나고 자신의 ‘결혼관’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동료 배우와 교제를 하거나 결혼을 염두에 두는 삶을 선호하지 않았지만 현빈을 만나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손예진은 “배우들이 수많은 작품을 하면서 상대 배우를 만나는데 거기서 많은 분이 결혼도 하고 연애도 하지만 저는 그 부분(배우들끼리의 연애)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다”며 “하지만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교제 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자꾸만 손예진과 현빈이 닮았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손예진은 ‘정말 닮았나?’, ‘느낌이 비슷한가?’ 궁금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무렵 손예진은 현빈과 2018년 영화 ‘협상’과 2019년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연이어 함께하면서 인연을 깊게 맺었다. 작업 과정에서 손예진은 “그 사람(현빈)에게 인격적으로 많이 반했다”며 “(현빈은) 옛날 사람으로 치면 선비 같은, 너무 바르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싫은 소리를 좋게 포장하거나 자기를 어떻게든 포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굉장히 담백한 모습이었다”고 떠올렸다. 한 번 시작한 남편 자랑을 멈출 생각이 없다는 듯 손예진은 “믿음직스러운 데다 잘생겼고 키도 크다”고 덧붙였다.
현빈과 결혼 이후 인생을 함께하면서 손예진은 “배우는 이기적인 경우가 많은데 아이를 낳고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이 여려진 것 같다”며 “제가 배우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 시간이었다”고 돌이켰다. 또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와 처음 엄마가 된 순간이 비슷하다고 느껴진다고도 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어려운 걸(육아) 아무렇지도 않게 잘해왔구나 싶다”며 “생전 처음 겪는 이런 감정들을 배우로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다짐도 밝혔다.
2년의 공백을 딛고 손예진은 연기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는 새 영화 주연을 맡아 이병헌, 이성민, 유연석과 호흡을 맞춘다. 손예진과 박 감독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 현재 촬영을 준비 중인 영화는 구체적인 스토리나 캐릭터 등 세부 사안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손예진 역시 “아직은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며 조심스러워했다. 다만 박찬욱 감독이 2022년 내놓은 ‘헤어질 결심’ 이후 선보이는 신작인 데다 초호화 캐스팅을 갖춘 만큼 손예진의 복귀작은 단숨에 한국영화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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