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사기 분양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단체의 대책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런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우리가 속은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상가를 다시 다른 사람에게 분양해서 돈을 받으면 어떨까요?”
자기 이익 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을 대리한 단체소송을 제기했다. 하는 짓들이 가지각색이었다. 몰래 사기범에게 가서 자기 돈만 달라고 아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겉으로는 정의를 말하지만 개인 이익에 부딪치면 빵 한 조각에도 짐승이 된다. 그런 속에서도 우뚝 솟은 정신을 발견했었다. 70대쯤의 여성이 상가분양 피해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저는 시장바닥에서 40년 동안 떡볶이 장사를 해 왔어요. 늘그막에 좀 편해 보려고 평생 모은 돈으로 상가를 분양받았다가 이렇게 사기를 당했습니다. 우리가 힘들어졌다고 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기를 당했다고 남에게 다시 사기를 치자고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를 농락한 사기꾼들에게 머리를 굽히면 되겠습니까? 교활한 그들은 미꾸라지 같이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결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집니다. 돈을 받는다면 여러분에게 순서를 양보하고 저는 제일 나중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단결합시다.”
그녀는 가난해도 영혼의 깊이가 남다른 것 같았다. 그녀 한 사람의 존재로 그 단체의 품격이 달라졌다. 사회의 참 모습은 이를 형성하는 개인에게 있지 않을까. 좋은 정신만 있으면 그 사회는 타락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미국산 소고기만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선동이 있었다. 시청 앞 광장에 1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흥분해서 몰려들었다. 한 청년이 군중을 향해 소리쳤다.
“미국 소고기를 먹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아요.”
군중들은 비웃고 그에게 침을 뱉었다. 그들은 왜 상식을 벗어난 말을 듣고도 광장으로 몰려 나온 것일까. 모두가 좌향좌 하는데 혼자 우향우 하는 그 청년은 누구일까.
박근혜의 탄핵을 주장하는 시위대의 물결이 광장을 휩쓸었었다. 여성 대통령이 방을 아방궁같이 차려놓고 남자를 끌어들인다는 괴소문도 돌았다. 흥분한 군중들이 지도자를 끌어내려 진흙탕 속에 던져버렸다. 그 후 나는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의 변호사가 되어 수사기록을 보다가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대통령 방의 오래된 나무문짝이 뒤틀어져 문을 여닫을 때마다 마찰음이 났다. 대통령은 그 정도로 문짝을 바꾸라고 지시하는 게 미안했다. 양초를 문짝에 비벼 부드럽게 해서 소리가 나지 않게 했다. 가난했던 우리세대가 쓰던 방법이었다.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을 탕녀 취급했다. 군중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특정인을 숭배하면서 쥐 떼같이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진실에 관계없이 그 쥐 떼에게 걸리면 뼈도 추리지 못한다. 그들이 이 사회에 먼지를 날리고 진흙을 일으킨다.
구순의 한 노인이 국민들을 매섭게 질타한 글을 봤다. 그는 국민들의 마음속에 있는 증오와 시기가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증오와 시기로 뭉쳐진 다중의 마음은 한 사람의 속보다도 더 좁다고 했다. 그는 국민이 버릇없어졌다고 했다. 그저 애지중지하며 아무도 매를 들지 않는 아이처럼 그렇게 방자해졌다는 것이다. 그런 국민에게 정치가 따라가는 것을 천민 민주주의라고 했다.
“10대 강국이라면 그 국격에 맞는 긍지 있는 국민이어야 하고 자존심 있는 국민이라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국민을 매섭게 질타한 구순의 그 노인은 한국일보 편집국장이었던 김성우 옹이다. 국가도 빵으로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라는 국토나 빵이 아니고 그 국민의 정신이 아닐까.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