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뮤직페스타는 장애예술가들을 위해 건립된 모두예술극장에서 4일간 공연과 포럼, 워크숍을 열었던 첫 음악축제였다. 필자가 총괄기획을 맡아 국내의 대표적인 장애음악단체와 장애음악가들과 함께 만든 첫 페스티벌이다. 음악가와 음악을 통해 'Belonging-소속감'을 주제로 정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소속감’에 대해 음악으로 감각하고 사유할 수 있기를 바란 기획이었다.
자신을 자신 안에 오롯이 세워보는 ‘나’를 주제로 하는 첫날을 시작으로 ‘우리’, ‘연결짓기’ 그리고 ‘해방되기’로 이어진 나흘간의 음악 여정을 구성했다. ‘나’를 소주제로 구성한 첫날 프로그램에 6명의 음악가들의 음악 세계가 조명되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유지민,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 첼리스트 배범준, 마림바 전경호, 스코틀랜드의 작곡가 벤 룬, 그리고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최준까지 음악가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어 청중에게 이야기를 건낼 수 있는 악곡을 선택해서 무대에 올렸다. 이들은 조금씩 다른 장애를 안고 연주 활동을 펼치는 음악가다. 각 연주자의 고유함을 오롯이 세운 여섯 개의 무대에 이어 존 케이지 작곡의 ‘4분 33초’로 음악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창을 열었다. 그 열린 창으로 연주자 전원이 함께 올린 마지막 무대가 바로 ‘인 시’였다.
‘인 시’는 미국의 작곡가 테리 라일리가 작곡한 곡이다. 악보는 한 페이지와 부속 설명서 한 페이지 반이 전부다. 악보에는 53개의 짧은 프레이즈 혹은 패턴이라고 일컫는 파편들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파편은 그야말로 한 단위의 프레이즈가 적게는 2개의 음으로, 많게는 10개 내외의 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박자나 조도 없다. 함께 연주하는 여러 연주자들은 각자 53개의 프레이즈를 순서대로 연주를 하면 끝나는데, 각 프레이즈를 몇 번 반복 한 후에 그다음 프레이즈로 넘어갈지는 각 연주자가 결정할 몫이고 변형도 가능하다. 다만 마지막 연주자가 53번째, 즉 마지막 프레이즈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 앙상블 전체가 마지막 프레이즈를 함께 연주하다가 마칠 시점도 각자 정해서 빠지게 된다. 그렇게 연주의 끝은 마지막 연주자가 마치는 시점이 된다.
이 악곡을 연주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35~40분 정도는 연주가 되면 좋다고는 하나, 그 길이는 연주자들이 결정하도록 권한을 넘기고 있다. 저명한 현대음악가이자 라일리의 동료인 스티븐 라이히가 음악에서 펄스(박동)를 활용하는 개념을 사용해보라고 제안했다. 이를 받아들인 라일리는 피아노나 마림바로 16분음표의 C음을 박동으로 깔고 앙상블 연주가 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면서도 유연한 작품으로 작곡한 것이다.
모두뮤직페스타의 ‘인 시’는 첫날 공연에서 무대에 오른 모든 장애인 연주자들과 더불어 바로크앙상블단체인 무지카 엑스 마키나가 함께했다. 피아노 두 대에 바이올린, 첼로, 마림바에 기타, 리코더, 한국전통성악, 모듈러 신디사이저, 바로크 리코더, 타악기, 가야금, 클라리넷과 바순까지 결합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임시 앙상블팀이 결성됐다. 마림바 전경호가 C음(도)에서 시작한 16분음표의 펄스에 기대어 12명 각자의, 그리고 모두의 여정이 시작됐다. 시작을 알린 마림바 역시도 53개의 여정을 걸었고, 때때로 다시 C음(도)의 펄스로 종종 박자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여 전체 연주자들이 자유롭게 노는 데에 안전망의 역할을 해주었다. 지휘자면서 기타 연주자로 자리를 한 무지카 엑스 마키나의 윤현종 음악감독은 앙상블의 대형 맨 끝에 앉아 가끔 눈빛과 어깨의 움직임이 동반된 큰 호흡으로 신호를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흐름을 연주자들의 선택에 맡기고 있었다.
개인적 차원과 앙상블 차원에서의 창발적 음악 만들기의 여정을 이어가는 순간순간은 여러 차원의 감각을 열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이야기를 함께해 나가는 것과 같았다. 이 이야기의 흐름은 연주자들의 상호성 가득한 감각들이 우선되었다. 각 연주자가 동등한 지분으로 연주하지만, 때론 솔로 파트인 양 두드러지는 연주를 하는 연주자를 위해서 나머지 연주자들은 잦아들기도 하고, 모두의 연주가 성을 쌓는 움직임이 포착되면 그 흐름을 인지하고 공동의 크레센도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각자 놀다가 어느새 모두 같은 멜로디를 똑같이 연주하는 뚜띠(Tutti)에 동참하기도 했다.
미니멀리즘의 음악을 선도했다고 평가를 받는 ‘인 시’는 악구들이 계속 반복되는 듯하는 가운데 미세하게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청중들은 기대와 조금 다를 수 있는 음악의 문법으로 들리는 것에서 어떤 감응을 하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지루해하지는 않을까, 연주자들만을 위한 자리가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들도 있었다. ‘인 시’를 연주하기 직전에 존케이지의 ‘4분 33초’로 아무것도 연주되지 않는 그 시간, 그 공간에서 들리는 혹은 들리지 않는 소리와 음악에 대해, 또 음악을 만들고 향유한다는 것에 대한 그간의 이해와 감각의 경계를 풀어놓고자 했다. 이러한 겹겹의 시도가 오히려 청중을 멀어지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안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작곡가의 악보와 연주자들의 연주, 그리고 청중 사이의 경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낮아졌고 이들의 연결과 상호작용의 에너지 강도는 높았다. 연주자들의 귀 기울임은 귀의 감각에 머물지 않았고, 몸으로 대화하고, 마음을 읽고 있었다. ‘인 시’를 마지막으로 연주자들이 퇴장하는데, 연주에서 영감이 한껏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는 차마 퇴장하지 못하고 계획에 없었던 앙코르 연주로 무대를 다시 열었다. 이에 피아니스트 최준은 곁에서 음악에 응시하며 춤사위를 더했다. 그의 몸짓 추임새는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청중들의 감응에 요동치는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종종 음악회는 청중의 음악에 대한 사전 지식과 연주자의 프로필 그리고 레퍼토리 사이에서 그 가치를 제안한다. 그런데 음악회가 청중에게 다가가 어떤 움직임과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음악을 올리는 데에는 조금 더 다른 준비와 제안도 가능하지 않을까? 음악의 즐거움은 듣는 감각에 제한할 수 없다. 연주회장에 앉아있는 청중들의 감각은 그것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연주자의 ‘음악 만들기’에는 작곡된 음악의 맥락과 함께 자신의 맥락, 즉 자신을 구성하는 개인적 요소와 자신에게 연결돼 있는 사회적 요소도 관여될 수 있다. 이러한 ‘음악 만들기’에는 청중 역시 수동적 관객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지분을 만들어내는 능동적 청자로 감응의 전환을 격려한다. 감동과 감흥이 일상에 돌아와 휘발되지 않고 삶의 어떤 틈에 관계하며 공생하게 되는 음악의 만남을 주선하는 연주회가 더 많이 필요한 시대다. ‘인 시’와 같은 동시대 음악가들이 건네는 열린 대화와 감응의 작품을 찾는 것, 청중이 수동적인 관객에서 나아가 연주자와 연결된 능동적 청중으로 감응에 참여하는 기획과 매개 방식을 찾는 다음 숙제에 가슴이 뛴다.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는 예술경영과 예술교육, 문화정책 분야에서 연구와 사업 기획, 컨설팅, 인재양성 활동을 통해 예술과 시민의 삶 사이 간극을 좁히고, 의미 있는 접점과 관련성을 형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음악가들의 사회에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실천적 활동을 넓히기 위해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를 발족했으며, 저서로는 ‘한국형 엘시테마: 아동청소년오케스트라 일궈가기’가 있다.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