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 횡령 폭로 후 기존 업무 배제 등 괴롭힘 시작…보복성 고소·고발 변론비용 등 국가 지원 제대로 못 받아
법원이 지난 6월 27일 나눔의집 운영자들이 후원금 횡령 의혹 등을 공익제보한 직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놨다. 2020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거주시설인 나눔의집 실태를 세상에 알린 지 4년, 이후 벌어진 직장 내 괴롭힘 등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받은 결과다.
소송에서는 일부 승소했지만 현재 공익신고자 7명 모두 나눔의집을 떠난 상태다. 끝까지 버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공익신고 이후 나눔의집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이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김대월 전 학예실장과 야지마 츠카사 전 국제실장, 그리고 이들을 도운 류광옥 변호사에게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나눔의집에서 벌어진 ‘복지 비즈니스’
“할머니들을 사회구성원으로 되돌리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실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남은 생마저 위안부 피해자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요. 그게 우리 사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눔의집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됐고요. 그런데 현실이….”
말끝을 흐린 김 전 학예실장이 씁쓸한 얼굴로 웃었다. 그는 4년 전 횡령 사실을 처음 외부로 알린 공익신고자다. 공익신고 당시까지만 해도 나눔의집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했지만 현재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피해지원국 연구학술팀에서 전문관(이하 김 전문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나눔의집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알아차렸다. 할머니들 외출은 제한됐고 88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후원금 중 할머니를 위해 쓰이는 건 거의 없었다.이후 꾸려진 민관합동조사에서 88억 원의 후원금 중 할머니들을 위해 쓰인 돈이 2억여 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마저도 할머니들을 위한 직접 경비가 아닌 시설 운영을 위한 간접경비로 지출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야지마 츠카사 전 국제실장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인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재학 시절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2003년 연구를 위해 처음 나눔의집으로 왔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나눔의집에서 근무를 한 그는 이후 독일에서 결혼생활을 보낸 후 2019년 나눔의집에 재입사했다. 할머니들은 그를 마리오(이하 마리오)라고 불렀다.
“아침마다 할머니 방에 가서 인사를 하고 사무실에 내려가는 습관이 있었어요. 일요일이었고 사무실 가는 길에 이옥선 할머니 방에 들렀는데 침대가 부러져서 할머니가 피를 흘리고 계셨어요. 당시 사무국장한테 할머니 모시고 병원에 가야한다고 보고했는데 ‘안 가도 된다’고 했어요. 그럼 안전을 위해 침대라도 바꿔야겠다고 했더니 ‘돈이 아깝다’고 그랬습니다.”
후원금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는데 왜 할머니에게는 침대 하나 사주지 못할까. 마리오 씨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내부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잘못된 곳에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김 전문관과 함께 공익신고에 나섰다.
공익신고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움직였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목표가 있었다. 김 전문관은 무엇보다 할머니들의 인권침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싶었다. 그는 “사실 후원금 문제보다 더 알리고 싶었던 것은 할머니들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였다”며 “신발 한 켤레를 사드리려 해도 ‘할머니의 사비로 구입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특히 학생이나 외국인 등 외부인이 나눔의집을 방문할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피해 사실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괴로웠다”고 말했다.
마리오 씨는 나눔의집과 같이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곳을 종교 단체가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았다. 할머니들 생애가 비즈니스 일환이 되는 순간부터 후원금 등 여러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복지 비즈니스’라고 비판했다.
의혹은 사실이었고 염려는 현실이 됐다. 공익신고 이후 안신권 당시 나눔의집 소장은 후원금을 부정 수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안 전 소장이 직원 급여와 간병비, 학예사 지원금 등을 부정 수급하고, 역사관 신축공사와 양로시설 증축 공사를 하면서 마치 공개입찰을 거친 것처럼 허위 서류를 제출하여 보조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할머니 유서를 위조해 할머니 돈을 나눔의집 계좌로 이체한 혐의도 인정됐다. 이에 법원은 2023년 11월 안 전 소장을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와 보조금법, 지방재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공익신고 후 물밀듯 쏟아진 고소장
내부에서 곪아가던 문제를 세상에 알렸으니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원금 횡령 사실을 폭로한 지 3개월 만에 사측의 반격이 시작됐다. 본격적인 직장 내 괴롭힘의 시작이었다. 나눔의집 측은 공익신고자들을 기존 업무에서 배제했다. 보조금 관련 행정업무와 후원물품을 관리하던 직원을 시설관리 업무로 전환하는가 하면 사회복지사로 채용된 직원을 위생원으로 변경해 업무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할머니들과의 접근도 완전히 차단됐다. 당시 유행했던 코로나19는 좋은 방패막이가 됐다. 나눔의집에서 20년간 할머니들을 돌본 원종선 간호사는 더이상 할머니들을 만나지 못했다. 김 전문관은 “예전엔 할머니들을 모시고 식당에도 가거나 드시고 싶은 음식을 사다 드리곤 했는데 신고 이후 할머니들과 짧은 대화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족들의 폭언 및 폭행도 있었다. 이들은 마리오 씨의 국적을 문제삼았다. 어느 날 건물 외벽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계시는 곳에 일본인 직원이 웬 말이냐”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할머니 살아 생전 얼굴을 비추지 않던 유족으로부터 “일본놈이 왜 여기 있느냐”는 모욕적인 언사를 듣기도 했다.
정작 할머니들은 마리오 씨를 한 식구로 생각했다. 나눔의집 입소 이후 처음으로 일본 사람들 앞에서 증언을 하기로 했던 문필기 할머니는 증언 직전까지도 마리오 걱정 뿐이었다. “마리오는 착한데”, “마리오가 기분 나빠하면 안 되는데” 하며 혹시 자신의 말 때문에 통역을 맡은 마리오 씨가 상처를 받을까 증언 수위를 고민했다는 것은 나눔의집 홈페이지에 올라온 일화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이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공익신고 이후 나눔의집과 운영진 측이 제기한 각종 고소·고발이었다. 상해, 횡령, 명예훼손, 강제추행상해, 사문서위조 등 죄목도 다양했다. 녹음기를 가지고 들어오는 직원을 막기 위해 팔을 민 것은 ‘강제추행’, 경기도 인권센터의 시정권고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운영진 이름을 일부 가리고 이를 사무실 옆 게시판에 게시한 것은 ‘정보공개법위반’과 ‘모욕’이 됐다. 이런 식으로 7명의 공익신고자들이 받은 고소장만 무려 40건이 넘는다.
이들 사건 대부분은 기각되거나 불송치결정 혹은 불기소처분됐다. 재판으로 넘어간 사건 역시 무죄가 선고됐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었다. 무죄라는 결과를 받기까지 신고자들은 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이에 대해 마리오 씨는 “(강제추행)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2년 6개월 정도 걸렸다. 그 시간 동안은 ‘살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항상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진심으로 즐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사이 나눔의집 측은 자신들이 건 고소를 이유로 공익신고자들을 압박했다. 실제로 이 사건 법정에 선 증인은 “사무실에서 야지마 츠카사의 강제추행 사건을 이유로 그를 해고 또는 징계해야 한다는 문건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또 “나눔의집 직원이 김대월의 동선을 CCTV로 파악하면서 ‘근무 태도가 불량하다’ ‘CCTV를 캡처하고 있다’ 등의 말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이를 김 전문관에 대한 징계 사유를 계속 쌓는 과정으로 이해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공익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공익신고 보호 범위 넓어져야"
재판이 진행되면서 겪는 심리적 문제와 변호사 선임 등 경제적 문제는 오롯이 신고자들 몫이었다. 물론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규정된 면책조항에 따라 종국적으로는 신고와 관련한 민·형사상 책임을 면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조항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공익신고자로서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신고자들은 국민권익위의 도움을 체감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사건이 권익위 단계를 벗어나면 그 이후엔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만 했다. 김 전문관은 “소송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권익위 결정문을 받는 단계부터 변호사 선임이 필요한데 전부 사비로 해야 한다고 했다. 무료 변론을 해주신 변호사님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행법상 공익신고자들의 변호사 비용을 지원할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구조금 관련 규정은 공익신고 등으로 인해 지출한 비용 중 ‘원상회복 관련 쟁송절차에 소요된 비용’에 대한 지원 가능성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 밖의 쟁송절차 및 기타 법률적 대응에 소요된 비용 지원 가능성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
4년 넘게 나눔의집 공익신고자들의 법률대리를 맡은 류광옥 변호사는 “공익신고자에 대한 권익위의 보호조치 결정이 선언적인 역할을 했다”면서도 “보호 범위에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고 동의했다. 공익신고를 한 신고자가 터무니없는 고소에 시달려도 ‘고소 자체는 헌법에 인정하고 있는 권리’라고 판단을 하거나 ‘문제가 없으면 재판 가서 무죄를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신고자들은 공익신고의 보호 범위가 넓어지고 강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공익을 위해 신고를 하고도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유·무형의 인사상, 재정적 불이익 등을 받는다면 공익신고는 활성화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필요한 건 공익신고에 대한 법률지원 및 후속 민·형사 절차에 대한 법률지원 강화다. 이에 대해 류 변호사는 “공익신고가 계속되는 중간에는 신고자들을 형사적 고소로부터 자유롭게 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무혐의 결정이 나면 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등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김 전문관에게 문자가 왔다. 류 변호사였다. 고개를 숙여 문자 내용을 확인한 김 전문관이 말했다. “변호사님에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나눔의집 측에서 항소를 했다고 하네요.” 4년이 흘렀지만 공익신고자들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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