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일본의 인기 유튜버 아야난이 충격 고백을 했다. 다름 아니라 “남편 말고 세컨드 파트너가 있다”라는 사실을 밝힌 것. 즉시 일본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세컨드 파트너’라는 검색어가 주목을 받았고, 세간을 술렁이게 했다.
대부분은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했지만, 결국은 불륜의 일종이 아니냐”며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부부가 가족으로 생활하다 보면 긴장감이 사라진다”며 “육체적인 관계가 없는 정신적 교감은 괜찮다고 본다”라는 반응도 일부 있었다.
일본 매체 ‘주간여성프라임’에 따르면 “몇 년 사이 속속 생겨난 기혼자 전용 만남앱을 통해 세컨드 파트너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관련 앱에 접속하면 “세컨드 파트너를 만들어 보라”고 교묘하게 부추긴다. 또한 “배우자의 부족한 부분을 세컨드 파트너가 채워주기 때문에 오히려 부부관계가 원활해진다”라는 주장도 펼친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이러한 만남앱들이 불륜을 조장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얼마 전 일본 대중지 ‘프라이데이’에는 “세컨드 파트너가 있다”라고 밝힌 기혼자들의 사연이 실렸다. 50대 일본인 남성 A 씨는 결혼생활 25년 차라고 한다. 자녀들은 이미 성인이 돼 부부만의 시간이 늘었지만, 아내는 친구들과 만나기 바쁘다. A 씨는 “아내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 좋은 동반자이며 앞으로도 그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가끔은 데이트를 하거나 야구 관람을 함께 즐겼으면 하는데, 아내는 그런 시간을 지루해하므로 권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A 씨는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아직 남자로서 매력이 있다는 걸 확인받고 싶은 마음도 있어 기혼자 만남앱에 등록하게 됐다”고 전했다.
세컨드 파트너와 만난 지는 반년 정도 흘렀다. 상대는 열 살 터울의 기혼 여성이라고 한다. A 씨는 “불륜 행위에 해당하는 신체적 접촉은 없었다”면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각자 돌아가야 할 집으로 향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했다. “앞으로도 정서적 교감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에 A 씨는 “남녀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다음 단계로 넘어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러 가정을 깨트리는 위험을 무릅쓸 생각은 없다”라고 덧붙였다. 바꿔 말하면 “육체적 관계를 전제로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모호한 얘기다.
40대 기혼 여성 B 씨도 “가끔 만나서 식사를 하는 세컨드 파트너가 있다”고 밝혔다. 기혼자만 가입할 수 있는 유료 만남앱에서 서너 명의 남성을 만났고, 그중 한 명과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B 씨는 “주로 점심시간에 만나 데이트를 즐긴다”면서 “흔히들 불륜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육체적 관계가 없으니 불륜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데이트만 할 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남편에게는 숨긴 채로다. B 씨는 “신체적 접촉이 없다고는 하나 역시 말하기가 껄끄럽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세컨드 파트너가 있는 일본인은 얼마나 될까. 한 업체가 기혼자 1만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신조어 세컨드 파트너를 알고 있느냐”고 묻자 응답자의 43.3%가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반면 “세컨드 파트너가 있다, 혹은 있었다”라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4.5%에 그쳤다.
기혼 여성으로만 한정해 “세컨드 파트너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도 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17%가 “만들고 싶다”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연애할 때의 두근거림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쓸쓸한 마음을 채우고 싶다” 등등의 이유를 꼽았다. 반대로 응답자의 81%는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일부러 유료 앱을 사용하면서까지 기혼자가 이성 친구를 찾는 의미를 모르겠다” “귀찮다. 배우자만으로도 충분하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부부문제 상담 연구가 오카노 아쓰코 씨는 세컨드 파트너에 대해 “기혼자가 배우자 외에 연애 감정을 갖는 상대”로 정의했다. 친구 이상의 관계이지만, 남편이나 아내의 역할을 뛰어넘지는 않는다. 오카노 씨에 의하면 “배우자에게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는 세컨드 파트너와 사귈 경우 의욕이 오르는 심리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상담한 사례 중 배우자의 욕만 하던 아내가 세컨드 파트너가 생긴 후 배우자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어느 정도 반감되기도 했다.
동시에 오카노 씨는 “세컨드 파트너와 불륜의 경계선이 애매하다”며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자칫 가정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유행이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세컨드 파트너를 만났다가 불륜에 빠지거나 상대에게 속아 사기를 당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연예인을 향한 팬 활동도 세컨드 파트너와 같은 심리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방법”이라고 뜻밖의 해결책도 제시했다.
“불륜은 문화다” 망언의 값비싼 대가
일본은 불륜에 관대한 편이다. 특히 경제가 호황이던 버블 시대에는 기혼자가 ‘애인’을 갖는 것이 유행처럼 번질 정도였다. 불륜을 향한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1996년 배우 이시다 준이치가 자신의 불륜이 발각되자 “불륜도 문화”라며 기자들 앞에서 반박한 소동을 들 수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는 거품 경제가 꺼지고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불황기의 입구에 섰을 무렵이었다.
이 발언은 세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주부들의 원성이 쏟아졌으며, 이시다의 방송 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거센 여론에 부딪쳐 이시다는 결국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해야만 했다. 훗날 이시다는 “당시 연수입 3억 엔(약 27억 원)을 벌었지만, 소동이 일어난 해에는 일이 끊겨 주민세와 지방세도 지불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사하고 싶어도 이사비용조차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며 괴로운 나날을 밝혔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