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충무로의 상황을 진단해달라는 주문에 한 영화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된 후 맞는 첫해이기에 극장가는 기대가 컸다. 이에 부응하듯 ‘파묘’, ‘범죄도시4’ 등 1000만 영화가 연이어 탄생했고,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진 ‘서울의 봄’의 인기도 연초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성공으로 인한 착시 효과가 강할 뿐, 충무로의 부익부빈익빈은 더욱 심화됐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1∼6월) 박스오피스 1위는 ‘파묘’(1191만 명)다. 그리고 ‘범죄도시4’(1149만 명)가 42만 명 차이로 그 뒤를 이었다. 사진=영화 ‘파묘’ 홍보 스틸 컷](https://storage1.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4/0718/1721270148146500.jpg)
나머지 자리는 모두 외화가 차지했다. ‘인사이드 아웃2’(563만 명), ‘웡카’(353만 명), ‘듄:파트’(200만 명)가 3∼5위 그룹을 형성했다. 이외에도 ‘쿵푸팬더4’와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 ‘위시’ 등이 140만∼177만 명 관객을 모았다.
가장 큰 문제는 ‘허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200만∼1000만 사이 관객을 모은 한국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허리’라 불리는 300만∼500만 그룹 영화가 자취를 감췄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제작비를 회수해 새 영화를 만들 여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최저 임금 및 물가 상승으로 영화 제작비 역시 크게 증가했다. 100억 원 정도 투입된 영화는 이제 ‘대작’ 축에 끼지도 못한다. 그런데 100억 원의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최소 25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상반기 흥행 7위, 9위에 오른 한국 영화의 관객 수도 채 200만 명이 되지 않는다. 비교적 저예산 영화로 분류되는 ‘시민덕희’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었지만 나머지 영화는 죄다 손해 봤다. 흥행 톱10에 든 영화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영화가 산업적으로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비교적 저예산 영화로 분류되는 ‘시민덕희’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었지만 나머지 영화는 죄다 손해 봤다. 흥행 톱10에 든 영화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영화가 산업적으로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사진=‘시민덕희’ 홍보 스틸 컷](https://storage1.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4/0718/1721270117236830.jpg)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역시 1위는 ‘범죄도시3’(6월까지 996만 명)였다. 하지만 이후 한국 영화의 이름은 8위에서 찾을 수 있다. ‘영웅’이 이 기간 178만 명을 동원했다. 그리고 ‘교섭’이 172만 명(10위)으로 톱10에 턱걸이했다. 그런데 ‘영웅’은 2022년 12월 개봉 후 해를 넘긴 작품이다. 이렇게 따지면, 지난해 상반기 개봉 영화 중 톱10에 든 작품은 ‘범죄도시3’와 ‘교섭’으로 유이하다.
두 작품의 흥행 차이는 현격하다. 상반기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5배 넘게 차이 난다. 200만 명 이상 동원한 한국 영화는 온데간데없다. 이 기간 개봉한 ‘대외비’, ‘리바운드’, ‘유령’, ‘웅남이’ 모두 100만 명 고지도 밟지 못했다.
그 갭은 외화가 메웠다. ‘스즈메의 문단속’(553만 명), ‘더 퍼스트 슬램덩크’(468만 명),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볼륨3’(420만 명)이 3∼5위권을 형성했다. 허리는 모조리 외화의 몫이었다.
2022년 상반기를 보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김없이 ‘범죄도시2’(1221만 명)가 1위다. ‘마녀 파트2:디 아더 원’이 242만 명을 모아 체면치레했지만, ‘해적:도깨비 깃발’(133만 명), ‘브로커’(123만 명)는 역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특히 ‘브로커’는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고 송강호·강동원·아이유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흥행에서는 쓴맛을 봤다. 이렇듯 상반기만 기준으로 삼았을 때 지난 3년 동안 300만∼1000만 명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허리급’ 영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작비를 회수해야 또 다른 영화에 투자하고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투자하는 족족 손해를 보는 구조다. 간혹 등장하는 1000만 영화가 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투자할 이들은 찾기 어렵다. CJ·롯데·쇼박스·NEW 등 소위 4대 투자배급사가 지갑을 닫는 것보다 중소 투자배급사들이 충무로를 떠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자본이 줄어들면 영화 제작 편수 또한 감소하고 이는 관객이 극장을 외면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