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범죄도시4’ 1100만대, ‘시민덕희’ ‘외계+인 2부’ 100만대…중박 영화 사라져 투자 외면
상반기 충무로의 상황을 진단해달라는 주문에 한 영화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된 후 맞는 첫해이기에 극장가는 기대가 컸다. 이에 부응하듯 ‘파묘’, ‘범죄도시4’ 등 1000만 영화가 연이어 탄생했고,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진 ‘서울의 봄’의 인기도 연초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성공으로 인한 착시 효과가 강할 뿐, 충무로의 부익부빈익빈은 더욱 심화됐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1∼6월) 박스오피스 1위는 ‘파묘’(1191만 명)다. 그리고 ‘범죄도시4’(1149만 명)가 42만 명 차이로 그 뒤를 이었다. 그다음 한국 영화는 7위에서 찾을 수 있다. 171만 명을 모은 ‘시민덕희’다. 아울러 ‘외계+인 2부’(143만 명)가 9위에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 자리는 모두 외화가 차지했다. ‘인사이드 아웃2’(563만 명), ‘웡카’(353만 명), ‘듄:파트’(200만 명)가 3∼5위 그룹을 형성했다. 이외에도 ‘쿵푸팬더4’와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 ‘위시’ 등이 140만∼177만 명 관객을 모았다.
가장 큰 문제는 ‘허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200만∼1000만 사이 관객을 모은 한국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허리’라 불리는 300만∼500만 그룹 영화가 자취를 감췄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제작비를 회수해 새 영화를 만들 여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최저 임금 및 물가 상승으로 영화 제작비 역시 크게 증가했다. 100억 원 정도 투입된 영화는 이제 ‘대작’ 축에 끼지도 못한다. 그런데 100억 원의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최소 25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상반기 흥행 7위, 9위에 오른 한국 영화의 관객 수도 채 200만 명이 되지 않는다. 비교적 저예산 영화로 분류되는 ‘시민덕희’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었지만 나머지 영화는 죄다 손해 봤다. 흥행 톱10에 든 영화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영화가 산업적으로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물론 ‘파묘’와 ‘범죄도시4’의 성공을 간과할 순 없다. 그러나 1000만 영화를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범죄도시4’의 경우 앞선 시리즈들이 대중적 인지도를 잘 쌓은 덕분에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수월하게 1000만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이는 전례 없던 일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 결국 ‘파묘’와 ‘범죄도시4’의 1000만 달성이 상반기 영화계의 파이를 키웠지만, 그 쏠림 현상을 따져봤을 때 충무로가 결코 부활했다고 분석할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역시 1위는 ‘범죄도시3’(6월까지 996만 명)였다. 하지만 이후 한국 영화의 이름은 8위에서 찾을 수 있다. ‘영웅’이 이 기간 178만 명을 동원했다. 그리고 ‘교섭’이 172만 명(10위)으로 톱10에 턱걸이했다. 그런데 ‘영웅’은 2022년 12월 개봉 후 해를 넘긴 작품이다. 이렇게 따지면, 지난해 상반기 개봉 영화 중 톱10에 든 작품은 ‘범죄도시3’와 ‘교섭’으로 유이하다.
두 작품의 흥행 차이는 현격하다. 상반기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5배 넘게 차이 난다. 200만 명 이상 동원한 한국 영화는 온데간데없다. 이 기간 개봉한 ‘대외비’, ‘리바운드’, ‘유령’, ‘웅남이’ 모두 100만 명 고지도 밟지 못했다.
그 갭은 외화가 메웠다. ‘스즈메의 문단속’(553만 명), ‘더 퍼스트 슬램덩크’(468만 명),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볼륨3’(420만 명)이 3∼5위권을 형성했다. 허리는 모조리 외화의 몫이었다.
2022년 상반기를 보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김없이 ‘범죄도시2’(1221만 명)가 1위다. ‘마녀 파트2:디 아더 원’이 242만 명을 모아 체면치레했지만, ‘해적:도깨비 깃발’(133만 명), ‘브로커’(123만 명)는 역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특히 ‘브로커’는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고 송강호·강동원·아이유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흥행에서는 쓴맛을 봤다. 이렇듯 상반기만 기준으로 삼았을 때 지난 3년 동안 300만∼1000만 명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허리급’ 영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작비를 회수해야 또 다른 영화에 투자하고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투자하는 족족 손해를 보는 구조다. 간혹 등장하는 1000만 영화가 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투자할 이들은 찾기 어렵다. CJ·롯데·쇼박스·NEW 등 소위 4대 투자배급사가 지갑을 닫는 것보다 중소 투자배급사들이 충무로를 떠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자본이 줄어들면 영화 제작 편수 또한 감소하고 이는 관객이 극장을 외면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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