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읽씹·댓글팀 운영·공소 취소 청탁 ‘충격’…‘분당대회’ 수준 난타전 과정 사법리스크 자초 지적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시작부터 ‘한동훈 당대표 후보의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읽고 씹음)’ 논란이 불거지며 모든 이슈를 잠식했다. 4월 총선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 1월 김건희 여사가 본인을 둘러싼 의혹에 대국민 사과 등 당의 처분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에 텔레그램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한 위원장이 ‘읽씹’했다는 게 골자다(관련기사 ‘누가 왜 지금 공개했을까’ 김건희 여사 문자 파장 어디까지…).
‘반한동훈’ 진영을 구축하고 있는 당권 경쟁후보들과 친윤계에서는 한 후보를 향해 ‘배신의 정치’ ‘총선 책임론’을 앞세워 집중 공세를 퍼부었다. 이에 대해 한 후보는 ‘김 여사가 실제로 대국민 사과할 의향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문자 읽씹’을 둘러싼 공방은 ‘사설 댓글팀’으로 번졌다. 김 여사의 텔레그램 메시지 전문이 공개됐는데, 1월 23일 문자에 “요 며칠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놀랍고 참담했습니다.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는데 아주 조금 결이 안 맞는다 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드린 것조차 부끄럽습니다. 제가 모든 걸 걸고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결코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이에 김건희 여사가 댓글팀을 운영하며 여론조작 공작을 수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친윤계에서는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댓글팀을 운영했다고 반격했다. 선봉에는 현재 무소속인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이 섰다. 장 전 최고위원은 7월 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후보야말로 법무부 장관 때부터 여론관리를 해주고 우호적인 온라인 여론을 조성하는 팀이 별도로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의 SNS에 “복수의 여론조성팀 관계자들에 받은 텔레그램을 몇 개만 공유한다”며 “이들이 누구인지 한 후보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이에 나에게 제대로 대응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자에는 “참여연대 공격하는 데 요긴하게 쓰시길. 지금 한동훈 장예찬 찰떡콤비임. 장관님께도 보고드림”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의원도 한동훈 후보 측 여론조사 의심 계정 29개에서 작성된 7만여 개의 댓글을 분석했다며 자료를 공개, 한 후보 댓글팀 운영 의혹에 힘을 보탰다. 이 계정들이 한 후보와 윤 대통령의 갈등을 기점으로,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비판하는 댓글들을 다수 달았다고 주장했다.
한 후보는 사설 여론조성팀 운영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당대표 경쟁후보들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원희룡 후보는 7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 “댓글팀 운영 의혹이 사실이라면 (드루킹 사건의) 김경수 전 경남지사처럼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숨길 게 없으면 한동훈 특검, 해도 되냐”고 물었다. 이에 한 후보는 “양문석 민주당 의원 주장에 동조하는 원 후보에 대해 당심이 판단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한동훈 후보가 직접 불러일으킨 논란도 있다. 나경원 후보의 사건 공소 취소 청탁 폭로다. 지난 2019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후보는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 과정에서 폭행·감금 등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17일 CBS라디오 토론회에서 나경원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의 구속영장 기각 관련 질문을 던지자, 한동훈 후보는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안에 개입할 수 없다. 나 후보가 내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를 취소해달라고 부탁한 적 있지 않느냐. 나는 그럴 수 없다 말했다”고 되받아쳤다.
이에 나 후보는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그건 구체적 사건이 아니다. 나의 유무죄에 관한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치를 바로 세우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내 유불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어 다음 날은 “(패스트트랙 사건은) 아시다시피 문재인 정권이 야당 탄압용으로 보복 기소한 사건 아니겠느냐”며 “한 후보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에 대한 분별력이 없는 것 같다. 좌충우돌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사안이 심각해지자 한동훈 후보 역시 수습에 나섰다. 한 후보는 자신의 SNS에 “‘공소취소 부탁 거절 발언’은 ‘왜 법무부 장관이 이재명 대표를 구속 못했느냐’는 반복된 질문에 아무리 법무부 장관이지만 개별 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든 예시로 나온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말이었다”며 “신중하지 못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후보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를 한 것은 정치 입문 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 후보는 7월 19일 KBS 주최 토론회에서 ‘공소 취소 청탁’ 발언 비판이 거듭되자 “그 기소를 한 검찰총장이 윤 대통령인 건 알고 계시나”라며 “공소 취소는 법무부 장관이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후보가 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기존 입장을 다시 반복했다.
이처럼 전당대회가 막장 폭로전으로 흘러가면서 당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모인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엔 7월 18일 한 후보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 청탁’ 발언에 대한 비판글이 쏟아졌다. 친윤계 윤한홍 의원을 시작으로 나경원 후보와 함께 해당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정재 이철규 등 현역 의원들의 성토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 같은 글에 10여 명이 넘는 의원들이 공감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윤계뿐 아니라 3선 이상 중진 의원들도 동조했다고 한다. 여권 한 관계자는 “중진들 대다수는 2019년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 현장에서 부딪혔던 사람들이다. 계파를 떠나 함께 고생하며 동지애를 공유하고 있다. 이를 한동훈 후보가 건드렸으니 중진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라며 “한동훈 캠프에서도 이러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이에 한 후보답지 않게 서둘러 사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친윤계는 이번 패스트트랙 발언을 두고 ‘정치초보’ 한동훈 후보 리더십의 한계가 부각됐다고 공세를 폈다. 앞서 관계자는 “한 후보는 전대 시작 전부터 유력한 당권주자였다. 2·3등 후보가 1등 후보에 공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 후보는 경쟁후보가 문제 제기해도 적당히 뭉개도 됐다. 그런데 한 후보는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모든 사안에서 말을 되받아치고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이미 법무부 장관을 할 때 법사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할 때 봐온 모습이다. 당내 경쟁에서도 계속 맞대응을 하다가 여러 공개되지 말아야 할 의혹들이 폭로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전대 때 불거진 논란의 대부분이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은 국민의힘에 큰 과제를 남겼다. 장기적으로 ‘사법리스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 여사 문자 무시’ 논란은 대통령실과 김 여사 측의 전당대회·당무 개입 문제로 점화할 전망이다.
야당은 김 여사와 한 후보의 사설 댓글팀 운영 의혹에 대해 현재 발의돼있는 ‘한동훈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에 관련 내용을 추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댓글팀 운영과 관련해 한 후보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야권은 ‘공소 취하 청탁’ 논란에 대해서도 수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당 대표 후보는 7월 17일 자신의 SNS에 “나 후보의 이런 청탁은 수사 대상이다. 한 후보도 당시 이런 불법적 청탁을 받고 왜 신고하지 않았는지도 수사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국민의힘 전대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들은 모두가 수사와 처벌 대상이다. 검찰에서 반드시 수사해 밝혀내야 한다. 만약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 이 사안들에 대해서도 특검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법리스크와는 별개로 전당대회 때 깊게 패인 계파 간 감정의 골 역시 여권의 리스크다. ‘전당대회가 아닌 분당대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후보들은 난타전을 주고받았다. 지지자들 역시 장외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진보 정당에선 거친 장면들도 많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보수 정당 계열에선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처음 봤다. 과거 박근혜 이명박 때도 안 그랬다”면서 “누가 대표가 되든 당이 하나가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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