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호우 관측 빈도 늘어나는데…수당 8만원으론 떠나는 숙련인력 발길 못 잡아
과거 10년 주기로 나타났던 것으로 알려진 극한호우는 최근 관측 빈도가 늘고 있다. 서울의 경우 2021년부터 3년 연속 극한호우가 발생했다. 7월 19일 중앙일보 분석에 따르면 극한호우 기준인 시간당 72mm 이상 비는 6월 19일부터 8월 18일까지 총 45차례 발생했다. 기상청은 같은 기간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8번 관측됐다고 밝혔다.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는 50년 빈도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우로 전국 피해 발생
기록적인 폭우로 전국에서 수해 피해가 잇달아 발생했다. 7월 10일 전라북도 군산시 어청도에서는 약 1시간 만에 146mm가 쏟아졌다. 충청남도 서천군과 부여군에선 100mm가 넘는 폭우가 내렸다. 50년에 한 번 오는 폭우에 집과 자동차가 침수됐고, 도로가 물에 잠겼다. 하천 제방도 피해를 봤다. 이날 폭우로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7월 18일에는 수도권, 충청·강원 지역을 중심으로 극한호우가 내렸다. 경기도 남부 지역에는 시간당 85mm의 비가 내렸다. 파주시는 이날 오전에만 200mm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파주시는 7월 16일부터 18일까지 누적 강수량 640mm를 기록했다.
서울 노원구는 7월 18일까지 누적 강수량 240mm인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전역에 호우경보가 내렸고, 목감천과 도림천에는 홍수주의보가 발령됐다. 동부간선도로, 증산교, 사천교, 철산교 등 도로 8곳 통행이 금지됐다. 서울 시내 29개 모든 하천과 둔치주차장 4곳의 진입도 통제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11개 국립공원의 278개 구간이 통제됐고, 인천~백령, 군산~어청 등 31개 항로를 다니는 40척의 배가 운항하지 않았다. 7월 19일 오전 6시 기준 11개 시도에서 1372가구 1944명이 대피했다. 이 중 905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경북 782명, 경기 416명, 전남 296명, 경남 187명, 충남 174명 등이다.
손석우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이러한 폭우가 반복되는 경향성이 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런 비가 반복될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인력부족 시달리는 방재안전직
전문가들은 바뀐 장마 패턴에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오송참사’ 같은 대형 재난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방재안전직 공무원은 “이처럼 기상 패턴이 변하면 대응이 더 어렵다. 어떤 상황 관리를 할 때 기상청의 예상 강수량을 보고 어느 정도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오면 난처해진다. 사전에 대비하기 어렵다”며 “부산 온천천 사고 경우도 당초 예상 강수량보다 더 많이 와서 수위가 2~3배 확 늘었다. 그래서 미처 대응할 새 없이 안타까운 사망 사고가 났다”고 했다.
오송참사는 2023년 7월 15일 궁평2 지하차도가 폭우로 인해 침수돼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다. 당시 충북 청주시 오송읍엔 일일 강수량 256.8mm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강수량 집계를 시작한 1967년 이래 3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
폭우 여파로 오송읍 508번 지방도로에 있는 철골 가교 옆 임시제방이 무너졌다. 그러자 바로 옆에 흐르고 있는 미호강이 범람했다. 6만t에 달하는 강물이 인근 지하차도에 들어찼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시민 14명이 사망했고, 16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현재 제방 시공사인 금호건설, 감리단, 충청북도, 청주시, 행동도시건설청, 금강유역환경청, 관련 경찰관과 소방관 등 관련자들은 검찰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다.
오송참사 1년이 지났지만 지하차도의 진입차단시설 설치는 의무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7월 18일 양부남 민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차단시설 설치 대상인 전국 지하차도 402곳 중 164곳만 시설이 구축돼 있었다. 행안부는 참사 이후 전국 지하차도 995곳 중 402곳에 진입차단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정부의 재난대응 전문인력 확충 약속도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인력인 방재안전직은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난 대응 △안전관리 계획 수립 △안전교육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행안부는 ‘제4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에서 방재안전직 공무원 수를 매년 200명씩 증원해 2024년까지 1640명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방재안전직은 지방직과 국가직을 따로 뽑는데, 지자체에서 자체 채용하는 지방직이 대다수다. 2023년 기준 지방직으로 채용된 방재안전직 공무원 799명이 지자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숫자다.
반면 인력 유출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행안부가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채용 인원 대비 퇴직자 비율은 2017년 17.4%에서 2021년 48.6%로 증가했다. 두 명 중 한 명은 떠나는 셈이다. 원인으로는 △인력부족·업무과다로 인한 과로 △다른 직군 대비 부족한 승진 자리 △열악한 처우 등이 거론된다. 현장에서는 인력 유출로 숙련된 전문 인력이 쌓이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관련기사 욕만 먹고 승진은 힘들고…재난 일상화 시대 ‘방재직 공무원’의 현주소).
2024년 정부는 재난·안전 업무를 상시 수행하는 공무원에 대해 특수업무수당 8만 원을 신설했다. 재난발생 현장 근무자 등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기존 월 8만 원에서 12만 원으로 상향했다. 그러나 방재안전직 공무원 사이에서는 이 같은 수당이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보상으로는 적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분위기다.
오송참사 이후 업무부담은 더 늘어났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앞서의 방재안전직 공무원은 행안부가 주관하는 상황판단 회의가 자주 열린다고 전했다. 하루에 세 번 할 때도 있다고 했다. 회의를 했다는 기록을 남겨 재난 관리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회의하면 준비할 게 많다. 참석한 대상자들에게 다 알려줘야 한다. 회의자료를 작성해야 한다. 오히려 이런 사전 회의 준비 때문에 업무 피로감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오송참사시민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참사 당시 재난안전대책본부 소속 방재전문인력은 8급 2명, 9급 2명에 불과했다. 조사위는 “직급이 지나치게 낮고 권한이 적으며 인력·숫자가 적은 탓에 올바른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 아닌지에 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진 목원대학교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지금 지자체에서 재난전문가가 아닌 순환보직인 일반직들이 관리를 하고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곳곳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며 “정부가 각 지자체에 전문가를 배치해서 재난 관리 전문성을 향상해야 한다. 그리고 1600명도 부족하다. 전국 지자체가 250개다. 각 시도에도 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 15일 영동, 논산, 서천, 완주, 영양 등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본 지역 5곳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은 지자체의 행정능력이나 재정능력으로는 재난 수습이 어려워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역이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7월 18일 정부에 “이상기후로 말미암아 기록적이고 집중적인 폭우로 예상할 수 없는 피해들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며 “추가 피해가 있는 경우 신속히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대응해달라”고 당부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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