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인연인지 늑대를 기르는 사람이 있다. 10년 이상을 늑대와 동고동락한 그는 마이애미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마크 롤랜즈다. 늑대와 살기 위해 그는 늑대가 뛰어다닐 수 있는 정원 있는 집을 구했고, 혼자 두면 살림살이를 초토화하는 심술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늑대를 혼자 두지 않았다. 그 덕에 철학 강의를 들어야 했던 늑대는 강의실에서 인기짱이었다.
마크 롤랜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단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만나야 할 때면 어색한 분위기를 감추기 위해 술만 마셨단다. 그랬던 그가 늑대 브레닌과 동거를 시작하면서 진정으로 타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법이다. 그의 책 <철학자와 늑대>엔 이렇게 쓰고 있다.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섹스나 어떤 종류의 감정이 아니다. 인간과 달리 늑대는 감정을 좇지 않는다. 그들은 토끼를 쫓는다.”
야생동물에게 사냥은 본능이었고, 그 본능이 충족될 때 늑대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과와 관계없이 스스로 대견해 한단다. 아마도 늑대는 사냥할 때의 긴장감과 고통을 즐기는 것 같단다. 그렇게 정이 든 늑대를 죽음으로 떠나보내며 마크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가족을 떠나보낸 자의 상실감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늑대를 통해 관심을 배우고, 배려를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상실을 배웠다. 늑대에 대한 롤랜즈의 태도를 보며 나는 내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자연에서 온 인간이 자연에서 온 다른 종과 우정을 맺고 아낄 수 있다는 사실에 왜 내가 놀라고 있는지.
그동안 나는 인간의 벽에 갇혀 살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순간 그 벽은 창이 될 수 있고, 그 창을 통해 세계가 확장될 수 있다. 분명 브레닌은 하나의 세계, 하나의 우주였다.
한 영혼은 하나의 세계, 하나의 우주라고 한다. 그런데 당신은 진짜 주변의 그 사람을,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이라 믿는가? 혹 신이 있다면 저 자식은 지옥에 떨어지는 게 당연해, 그렇게 믿어본 적은 없었는지. 남에 대해서 소중한 존재라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 자신만 소중하다고 껴안고 있으면 그는 우주적인 영혼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나를 하나의 세계, 하나의 우주라고 진짜로 믿고 있으면 나와 인연이 있는 그 사람도 우주라 믿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그런데 롤랜즈를 보니 반성하게 된다. 그동안 왜 내 안중에는 인간밖에 없었는지.
인연은 참 신비하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가족으로 얽히고, 친구로 세계관을 공유하고, 함께 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그 인연이. 그 인연들은 연결되어 있어서 그 힘들이 돌고 돌다 결국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늑대에 대한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하게 된 롤랜즈처럼. 사실 이기적인 것은 나쁜 것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우리는 이기적이다. 이기심의 감옥에서 나오게 되는 계기는, 삶은 연결되어 있고, 내가 세상에 행한 행동은 모두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걸 깨닫고 나서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