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에서 경호원으로 전해진 ‘폭력의 권리’…“여성 팬 무시가 문제” 지적도
7월 22일 그룹 크래비티의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공식 팬카페를 통해 "지난 6월 23일 크래비티의 일본 공연 및 프로모션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에서 아티스트 경호 업무를 수행 중이던 경호원의 적절치 못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피해를 입으신 분들 및 팬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당사는 당시 사안을 인지한 즉시 해당 경호 업체와의 크래비티 현장 경호 관련 협력 관계를 종료했다. 더불어 향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경호 프로토콜 및 교육절차를 마련해 팬 여러분과 아티스트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6월 24일 크래비티의 10대 팬이라고 밝힌 A 양은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 "6월 23일 김포공항 입국 당시 저는 시큐(경호원)에게 머리를 구타당했다. 첫 번째 머리 구타 이후에도 시큐는 제게 짜증섞인 말투로 '붙지 말라고'라는 말과 함께 수차례 폭력을 가했다"며 "미성년자인 저는 성인 남성과 대치하게 된 이 상황이 무서워 자리를 피했지만 시큐는 핸드폰 카메라로 저를 찍으며 쫓아왔고 '더 해봐'라는 등의 조롱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팬이라고 해서 거구의 성인 남성으로부터 촬영, 폭력, 반말, 조롱 등의 위협을 당할 이유는 없다. 당시 상황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자리를 피했지만 귀가 후 큰 충격으로 병원을 가야 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A 양은 경호원에게 폭행 당한 부위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가벼운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A 양의 어머니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화가 난다. 남의 집 귀한 지식인데 어느 누구를 보호한다고 누구한테 폭력을 쓴다는 게"라며 경호원의 폭력적인 행동을 지적했다.
아이돌 그룹, 특히 보이그룹을 경호하는 경호업체 직원들의 팬들에 대한 태도가 지적되는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주로 매니저가 폭력적인 권력을 휘둘렀던 2010년대 초 이후 소속사별로 사설 경호업체를 계약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경호원들에게도 '팬을 때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2018년에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엔시티127(NCT127)의 경호원이 한 사진기자를 팬으로 착각해 폭행했다가 징계를 받은 사례도 있다. 팬을 위력으로 제압해도 된다고 당연하게 여겼기에 생긴 일인 셈이다.
빌리프랩 소속 그룹 엔하이픈도 경호원의 과잉 경호로 인한 여성 팬 폭행 이슈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해외 일정을 마치고 입국한 멤버들을 찍기 위해 다가간 여성 팬들을 건장한 덩치의 남성 경호원들이 과도한 힘으로 내치는 영상이 그대로 현장 카메라에 담겼던 것. 심하게 넘어지거나 쓰러지면서 카메라 앵글 밖으로 밀려나간 여성들의 안전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일부 영상이 공개되면서 "경호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네티즌들의 쓴소리가 잇따랐다.
그런가 하면 2023년에는 그룹 엔시티 드림(NCT DREAM)의 경호원이 여성 팬을 밀어 골절상을 입혔다가 폭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여성 팬은 경호원의 폭행으로 늑골 1개가 골절되는 등 전치 5주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돌 경호원들의 팬 폭행 이슈가 주로 보이그룹의 경호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K팝 팬들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은 폭력적으로 다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슷한 이슈가 그룹만 바꿔서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멤버들의 동선을 심하게 방해하거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경호원들이 선제적인 경호를 앞세워 과도한 폭력을 가하는 것에는 여성 팬들에 대한 무시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는 것이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이전엔 매니저 등 회사 관계자들이 팬 폭행 담당이었다면 이제는 폭행의 외주를 준 셈"이라며 "팬덤의 규모가 커지고, 팬들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많아져도 여전히 여성 팬들에겐 '빠순이'라는 멸칭이 붙여지고 '이런 애들은 이렇게 대해도 계속 (아이돌을) 좋아할 거니까 괜찮다'는 생각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물론 아이돌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정말 팬심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심한 일을 하는 팬들도 있지만, 그것이 폭력의 변명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경호업체와의 계약에서 경호의 범위를 정할 때 과도한 물리력 행사에 대한 제한을 두는 조항을 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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