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IT전당포가 각광받고 있으나 업자들은 “그리 남는 사업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나진상가에 있는 IT전당포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IT전당포는 2008년 처음 문을 열었고 현재까지 서울에만 10여 곳으로 불어났다. 대구, 부산, 포항 등 각 지방에서도 IT전당포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용산에 위치한 A 사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에도 사업 문의가 꽤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IT전당포가 다루는 전자기기는 다양하다. 상태만 문제없다면 어떤 전자기기도 상관없다. 최근엔 넷북이나 아이패드 같은 신제품을 맡기는 이들이 늘어났다. 고가의 카메라 렌즈도 잘 들어오는 물건이다. 이렇게 들어온 담보물들로 최소 일주일에서 최대 한 달의 기간을 잡고 대출을 해준다.
IT전당포의 이율은 대부분 월 3%, 연이율로 치자면 36%다. 대출금은 해당 전자기기 시세에 50~60%를 적용한다. 메이커, 제품의 상태, 출시연도 등이 심사기준이다. 한 IT전당포 관계자는 “삼성 제품보다 애플 제품이 좀 더 가격을 쳐주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신제품이 늦게 출시되는 메이커일수록 대출금의 비율이 커진다는 얘기다. 대체로 최신 휴대폰이나 태블릿 PC같은 제품은 30만~50만 원을 대출 받을 수 있다.
손님이 대출금을 갚지 못할 시엔 담보물을 처분한다. 업체당 평균 10명 중 2~3명은 연락이 두절된다고 한다. 상환일을 지키지 못하는 고객에게 연락을 하는 곳도 있고 연락 없이 바로 처분하는 곳도 있다. 실제로 A 사는 대출 신청서에 ‘원금상환납입일은 익월 오후 2시까지 마감’, ‘미납 시 즉시 공매처분’이라고 적시해 놓았다. 이미 동의를 구했기 때문에 연락 없이 처분해도 상관이 없다는 게 업자의 설명이다. 전자기기에 기록된 개인 정보는 맡기기 전에 미리 지우도록 하거나, 처분하기 전 초기화를 시킨다.
문제는 처분되는 물품이 정품이 아닌 장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A 사 관계자에 따르면 “장물을 처분한 적은 없다. 실수로 장물을 받는 경우는 생기지만 이때는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체인 B 사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에는 장물보다는 렌털기기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출자가 렌털기기를 자신의 물품으로 속여 대출을 받고 잠적해 버린다는 것이다.
제품이 정품인지 아닌지는 시리얼 넘버나 충전기 같은 부속품을 보고 확인한다고 IT전당포 업자들은 입을 모았다. 실제로 캐논, 니콘 등 카메라 업체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정품 등록’이나 ‘정품 조회’가 있어 정품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하지만 “IT전당포들이 렌털기기인 줄 알면서도 제품을 받는 것 같다”는 의혹은 끝없이 지속돼 왔다.
지난 10월 8일 김 아무개 씨(38)와 김 아무개 씨(여·33)가 고가의 디지털 카메라를 10만 원에 빌린 뒤 각 지방의 IT전당포를 돌아다니며 2억 원을 대출받았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카메라를 렌털해 주는 C 사 관계자는 “업체 사이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였다. IT전당포가 렌털기기인지 확인했더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4곳의 전자기기 렌털업체에 문의한 결과 피해사례는 유사했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쇼핑몰이나 사업을 한다며 위조된 신분증을 갖고 다수의 카메라, 삼각대 등을 빌려 IT전당포에 맡긴 후 잠수를 타는 식이었다. 이때 없어진 물품은 렌털업체가 IT전당포에 가서 직접 찾아오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 있다. 렌털업체들이 범죄자가 빌려간 대출금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된다는 것이다. 카메라 렌털업체 D 사 관계자는 “물품을 돌려받으려 찾아갔더니 대출금과 이자까지 달라고 하더라”며 “우리 업체 스티커까지 물품에 그대로 붙어있는데 분통이 터졌다”고 말했다. 이에 한 IT전당포 관계자는 “렌털기기를 가져온 것은 범죄자 소행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범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게 맞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IT전당포가 렌털기기를 고의로 받는지는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는 상황이다. 장물이나 렌털기기를 받았다고 인정할 경우에만 ‘장물취득죄’가 성립이 되기 때문이다. D 사 관계자는 “IT전당포에서는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증거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쉽게 고소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IT전당포가 이러한 의심을 계속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IT전당포에서는 ‘이자수익’보다는 ‘물품 판매수익’이 더 짭짤하기 때문에 렌털기기를 계속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렌털기기 업자들의 설명이다. 이자수익만으로는 IT전당포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도 있었다. 한 IT전당포 관계자는 “언론보도로 IT전당포가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며 “실상을 따져보면 그리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이라고 털어놨다. 대출 금액이 소액인 데다가 상환 기간이 짧다는 게 그 이유다. 한 달에 대략 1억을 대출해줘도 3%의 이자로 계산하면 300만 원의 수익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에 위치한 10여 곳의 업체 중에도 폐업이 임박한 곳이 꽤 있다는 얘기도 돈다. 구체적인 매출 규모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대부분의 IT전당포들이 “얘기하기 곤란하다”며 대답을 꺼렸다.
박정환 인턴기자 kulkin85@naver.com
생계형 ‘담보’ 늘고 있다
20대는 ‘생활비’ 용도로 IT전당포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생활비의 쓰임은 월세, 학원비, 유흥비 등으로 다양하다. 여름 바캉스를 앞둔 시기에는 담보물의 양이 급증했다고 한다. 심지어 빼빼로데이(11월 11일)를 앞두고 여자친구에게 빼빼로를 사줘야 한다며 찾아온 대학생도 있었다. IT전당포를 이용하고 기자와 만난 대학생 정동훈 씨(23)는 친구에게 선물받은 갤럭시 S3를 맡기고 30만 원을 대출받았다. 정 씨는 “소액이라 딱히 부담도 없고 생활비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30~40대 이용자들은 스튜디오 사장, 어플 개발자, 휴대폰 대리점 사장 등 전자기기를 자주 다루는 이들이 많지만, B 사의 단골손님 중에는 목사님, 스님, 교수님 등 소위 ‘반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24시간 운영하는 C 사의 경우 임신이 임박한 임신부나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을 가야하는데 병원비가 없어 찾아와 급하게 대출금을 내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경제상황이 어렵다보니 ‘생계형’ 대출이 늘어난다는 게 업자들의 설명이다.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