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면허 확인 의무’ 법안 부재로 무면허 운전 천지…“최고 속도 제한도 시속 25km보다 낮춰야”
앞서 지난 6월 8일에는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60대 남편 C 씨와 아내 D 씨가 뒤에서 달려온 전동킥보드에 치어 D 씨가 사고 9일 만에 숨졌다. 전동킥보드에는 여고생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당시 헬멧을 쓰지 않았으며 원동기 면허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형 이동장치(PM, Personal Mobility) 중 하나인 전동킥보드를 이용할 수 있는 공유 킥보드 시스템이 국내에 보편화된 지 수년이 흘렀다. 일상에서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관련 사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2022년 전동킥보드를 포함한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자 수는 전년 대비 314% 늘어난 180만 명을 기록했다. 운용 중인 PM 수도 2018년 9만 대에서 2022년 20만 대로 약 122% 증가했다.
사고도 함께 증가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국내 전동킥보드 사고 건수는 2018년 225건에서 2022년 2386건으로 급증했다. 사망자 수는 2018년 4명에서 2022년 26명으로 4년 새 6배 넘게 늘었다. 부상자도 2018년 238명에서 2022년 2684명으로 11배나 증가했다.
2022년 1월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등 PM을 운전하려면 만 16세 이상만 취득할 수 있는 ‘제2종 원동기장치 자전거면허’ 이상의 운전면허증을 보유해야 한다. 이를 어겼을 때는 10만 원이 부과되며, 13세 미만은 보호자가 과태료 10만 원을 내야 한다. 헬멧을 쓰지 않았을 때는 2만 원, 동승자와 함께 탔다면 4만 원, 음주운전 시 10만 원을 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보호장구 미비’ ‘무면허 운전’ ‘운행 속도’ 때문에 전동킥보드 사고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PM 관련 법안 부재로 사고 원인이 방치되고 있으며, 그러는 사이 공유 킥보드 인프라가 확대됐기 때문에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헬멧(안전모) 착용이 의무화된 이후로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가 안전모를 킥보드와 함께 구비해뒀지만 이용자들이 파손하거나 분실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현재 대다수 공유 킥보드 업체가 헬멧을 비치하고 있지 않다. 개인이 휴대하기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2023년 한국교통안전공단의 교통문화지수 실태 조사에 따르면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자의 안전모 착용률은 15.1%에 불과했다.
무면허 운전도 사고를 키우고 있다. 특히 원동기장치 자전거면허를 취득하지 않은 10대들의 무면허 사고가 두드러진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개인형 이동장치 사고 가해자 중 19세 이하가 1032건(43.2%)으로 가장 많았다. 경찰청이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에 제출한 ‘PM 연령대별 사고·사망·부상 현황’을 보면 지난해 10대 청소년이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주행하다 적발된 사례는 2022년 2만 68건이었다. 10대 이용자가 일으킨 사고 건수도 같은 해 1021건이었다.
전동킥보드 무면허 운전은 불법이지만 현행법상 공유 전동킥보드에서 면허 인증을 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대다수 공유 전동킥보드 플랫폼에서 면허 인증 없이도 이용 가능하다는 점이 사고를 키운다.
지난 23~24일 이틀간 ‘일요신문i’는 서울시내에서 이용 가능한 공유 킥보드 플랫폼 5개사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면허 인증 없이 킥보드 대여를 시도해봤다. 5개 앱 모두 ‘면허등록’을 안내하긴 했지만 ‘다음에 등록하기’ 또는 ‘대여하기’ 버튼을 누르면 별다른 제재 없이 대여가 이뤄졌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카셰어링 업체는 차량 대여 시 운전면허 종류 등 운전 자격 확인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과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 제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필수 PM산업협회장(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은 “관련 규정이 없어 (공유킥보드 플랫폼) 업체들에 왜 면허 여부를 확인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없다”며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위해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관련법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형 이동장치 최고 속도를 기존 시속 25km에서 더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와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가 공동으로 발표한 ‘전동킥보드 최고 주행 속도 하향 필요성’ 자료는 “전동킥보드 사고 시 가해지는 충격은 20km/h 이상 주행 시 자전거 대비 2배 이상 높으며 전동킥보드 속도 증가에 따른 충격력 상승률은 3배 이상”이라며 개인형 이동장치 최고 속도를 25km/h에서 20km/h로 하향해 이용자 안전도 제고 및 사고 예방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정부도 시속 20km로 제한하는 시범운영 사업을 진행하고 효과가 나타나면 관련 법령 개정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자전거전용도로보다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많은 현실이기 때문에 보행자의 걸음 속도와 (전동킥보드 속도의) 편차를 줄이는 것이 사고 예방이 도움이 된다고 본다”며 “어린이보호구역이나 야간 시간에는 시속 15km까지 최고 속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의식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특히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미래 모빌리티를 이용할 수 있게 교육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김필수 교수는 “법 개정과 별도로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등은 청소년들을 위한 찾아가는 교육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안전하게 PM을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만 16세 이상 청소년들은 원동기 면허를 취득한 후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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