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피격, 바이든 재선 포기, 민주 새주자 해리스 돌풍…트럼프 측근, 한동훈 발언에 ‘브라보’ 눈길
인지력 논란 등으로 비판 받았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재선 포기를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 ‘넘버 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차기 대권 주자로 지지했다. 지금까지 모금된 후원금에 대한 승계도 이뤄졌다. 바이든 대통령 재선 포기는 백악관 직원들도 발표 1~2분 전까지 모를 정도로 비밀리에 진행됐다고 한다.
후보 교체 압박에도 꿋꿋이 버텨 왔던 바이든 대통령 재선 가도를 멈춘 결정적 사건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피격 사건이었다. 7월 13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연설을 하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괴한이 쏜 총에 오른쪽 귀 윗부분을 맞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듯 지지자를 향해 오른 손을 불끈 쥐어 올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사건은 미국 공화당 지지층을 총집결하는 트리거가 됐다. 미국 정치권에선 ‘게임이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이 일어난 장소가 펜실베이니아주라는 점이 뼈아팠다. 펜실베이니아주는 미국 북동부에 위치한 미국 정치 핵심 캐스팅보트로 꼽힌다.
필라델피아, 피츠버그 등 도심 지역 인구 분포와 촌락 지역 인구 분포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우촌좌도’ 현상이 팽팽하게 맞선 지역이기도 하다. 각 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방식인 미 대선 제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지역이 펜실베이니아다. 총 51개 주 538명 선거인단 중 19명 선거인이 펜실베이니아에 걸려 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뉴욕에 이어 일리노이와 함께 5번째로 규모가 큰 선거구다.
1990년대 이후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더 많은 표를 받은 건 2016년 한 차례뿐이었던 지역이지만, 치열한 경합이 펼쳐진 경우가 많았다. 민주당이 약우세인 지역에서 트럼프 지지층을 총결집시킬 만한 대사건이 벌어진 점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여기다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이어지며, ‘바이든 용퇴론’이 미국 정치권을 관통하는 핫 키워드로 부상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레이스 포기를 선언했고, 해리스 부통령이 사실상 바통을 이어받게 됐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모금한 후원금을 승계했고, 민주당 대의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 사퇴 이후 초고속으로 1100억 원 규모 후원금이 추가로 모금되면서, 민주당은 전열을 개편하고 총력전을 치를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완전히 대비되는 캐릭터를 가진 점은 미 대선 새로운 관전 포인트다. 해리스 부통령은 ‘젊은 흑인 여성’이다. ‘고령 백인 남성’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정반대 이미지를 구축한 상황에서 얼마나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을지가 승부처로 떠오른다.
해리스 부통령 캐릭터가 민주당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선이 존재한다. 백인 남성 중심 보수 지지세 결집에 해리스 부통령 존재감이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2016년 대선에서 ‘백인 여성 엘리트’를 표방하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패한 바 있다.
2020년 대선에선 ‘백인 남성 엘리트’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꺾었다. ‘백인 남성’ 지지세를 바이든 대통령이 양분하면서 피 말리는 접전 끝에 바이든 대통령이 승기를 잡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 간 대결을 묻는 미국 현지 여론조사에선 엎치락뒤치락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보였던 ‘김정은과의 브로맨스’를 부각해 관심을 모은다. 7월 18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과 잘 지냈고, (백악관에) 돌아가면 김정은과 잘 지낼 것”이라면서 “그 역시 나를 그리워하며, 내가 돌아오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7월 20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김정은과 있었던 디테일한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김정은에게 “당신은 너무 많은 핵을 가지고 있다”면서 “긴장 풀고 (뉴욕) 양키스 야구 경기나 보러 가자”고 제안한 일화를 소개했다. 김정은을 미국으로 불러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정치권 관계자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핵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해왔고, 해리스 부통령 역시 기조가 비슷할 것”이라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을 경우엔 미국이 북한과 직접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논의하는 ‘사우스 코리아 패싱’ 현상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북한에서도 트럼프의 ‘김정은 마케팅’과 관련한 입장이 나왔다. 7월 23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논평을 통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수뇌들 사이에 개인적 친분관계를 내세우며, 국가 간 관계에 반영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실질적, 긍정적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고 했다.
북한 측이 김정은과 트럼프 전 대통령 친분관계에 대해 인정을 하면서도 ‘공은 공, 사는 사’라는 입장을 강조한 셈이다. 조선중앙통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에 대해 “북미관계 전망에 대한 미련을 부풀리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입장에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권을 잡는 것이 나쁜 소식은 아니”라면서 “다만 트럼프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시점에 트럼프와 친분을 과시하는 것보다, 관망하는 입장으로 바라보는 것이 향후 외교적 협상에서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근 인사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발언을 공유하면서 ‘브라보’라는 반응을 보여 정치권 관심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 안보라인 유력 인사로 꼽히는 엘브릿지 콜비 전 미 국방부 전략전력개발담당 부차관보가 한 대표의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TV토론회 영상을 공유했다. 콜비 전 차관보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백악관 안보보좌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다.
이 영상은 7월 19일 SBS에서 열린 제7차 당대표 방송토론회가 배경이었다. 이날 한 대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나면 어떤 대화를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답했다.
한동훈 대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갖고 있는 아시아와 세계에 대한 생각이 대한민국 발전을 저해하거나 큰 위협을 가져오는 상황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대한민국과 함께 우방으로서 세계 평화를 지키고 서로를 발전시키는 생산적인 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얘기를 진지하게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트럼프 전 대통령 외교 정책이 아시아 지역을 최우선으로 두는 ‘아시아 퍼스트 전략’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콜비 전 차관보는 한 대표 발언과 관련해 “미국을 최우선으로 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및 아시아를 중시하는 미국의 외교정책과 일치하는 훌륭한 방식을 제시한다”면서 “전 세계의 현명하고 현실적인 동맹국들은 이를 이해하고 있다. 브라보”라고 평가했다.
앞서의 국내 정치권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측근이 이런 내용을 언급한 것은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에 먼저 호응하면 동맹국의 이권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부분을 파트너국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읽힌다”고 했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대북정책을 비롯한 한반도 안보, 세계 경제 정책 등 흐름이 결정되는 까닭에 국내 정치권에서도 트럼프와 해리스 둘 중 누가 승리할지를 두고 셈법이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미 대선후보와 소통할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하는 데 열을 올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집권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미국 정가와 연이 닿는 인사를 찾고 있는 움직임이 있다. 일례로,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주자로 새롭게 등장한 후 그와 같은 대학 동문으로 알려진 한 국회의원이 주목을 받았다”면서 “트럼프, 해리스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미 대선후보와의 관계를 발판으로 정치적 존재감을 높이려는 행보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국제시사평론가 최운도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은 미 대선 판세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대선 후보 등으로 인해 여성 유색인종 대통령 후보에 대한 반감이 예전보다는 적을 것”이라면서 “이는 곧 백인 남성을 결집시키는 트럼프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을 가능성을 의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 연구위원은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미국 고용시장이 상당히 탄탄해졌는데, 이런 부분이 백인 사회의 배타성이나 이민자 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 “여기다 이미 한 차례 트럼프 행정부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전처럼 뚜렷한 선명성 경쟁을 펼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연구위원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출마했을 당시 미국에선 아직 여성 대통령이 나오긴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면서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 가능성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인식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여부가 대선의 또 다른 승부처일 것”이라고 했다.
미 대선이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최 연구위원은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미국 민주당이 이어온 기조를 승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정세가 ‘현상 유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도, 이미 주변국 및 동맹국들이 ‘트럼프 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 기민하게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대처할 수 있을 거라 본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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