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파리올림픽 개막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수들의 선전이 기대되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남자배구 대표팀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 남자배구는 지난해 국제배구연맹이 주최하는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3위를 기록했다. 올해 대회에서는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준우승을 차지해 당당히 세계랭킹 2위에 올랐다.
지난 10여 년간을 돌이켜보면 놀라운 성장세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16년 만의 올림픽 출전이었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대회를 마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은 출전권조차 얻지 못했다.
강해진 비결은 무엇일까. 일본 매체 ‘제이비프레스’는 선수 개개인의 성장을 첫손에 꼽는다. “해외 무대에 꾸준히 도전한 것이 일본 배구가 세계적 수준에 올라선 원동력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일례로 이시카와 유키(28·페루자)와 다카하시 란(22·산토리선버즈) 등이 이탈리아 리그에서 활약해 일본 배구의 위상을 떨친 바 있다.
중장기계획도 밑거름이 됐다. 어느 날 갑자기 강해진 것이 아니다. 일본 배구협회는 2014년부터 강도 높은 세대교체와 차세대 선수 발굴에 힘썼다. 또한, 프랑스 출신 명장 필립 블랑 감독에게는 오랜 기간 일본 남자배구를 성장시킬 기회를 부여했다. 그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일본 남자배구 대표팀 코치를 역임했고, 2022년부터는 감독을 맡아 큰 성과를 남겼다. 부족한 점은 수용하고 착실하게 강화를 거듭한 결과, 올림픽에서 메달권 진입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만약 파리에서 일본 남자배구가 메달을 따면 1972년 뮌헨올림픽 우승 이후 52년 만이다.
일본 축구 대표팀도 엄청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작년 9월 독일과의 원정 경기에서 4 대 1로 압승한 것은 놀라웠다. 파리올림픽에 나설 일본 축구 대표팀의 명단이 발표되자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올림픽 본선에서는 23세 이하 선수를 주축으로 하되 팀마다 24세 이상 선수를 최대 3명까지 포함할 수 있는데, 일본은 24세를 넘는 ‘와일드카드’ 없이 팀을 꾸렸기 때문이다.
중장기계획은 일본 축구계에도 변화의 씨앗을 뿌렸다. 1993년 일본 프로축구 리그(J리그) 출범 당시 일본축구협회는 “100년 안에 세계를 제패할 전력을 만들겠다”며 이른바 100년 구상을 내놓았다. 아울러 5년, 15년 단위의 세부계획도 발표했다. 당장의 성적 대신 미래를 내다보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기초 체질을 튼튼히 하기 위해 어린 선수를 체계적으로 키우는 시스템도 갖췄다. 가령 J리그는 각 연령대별 유소년클럽 보유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유망주 육성에 성공한 클럽에는 두둑한 보너스가 제공된다. 이 밖에도 유소년, 지도자 등을 해외로 보내 선진 축구를 배우게 하는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리그를 운용한다. 그 결실이 하나씩 나오고 있는 셈이다.
홍콩 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일본 J리그와 중국 슈퍼리그를 비교하며 중국 축구계에 경종을 울렸다. 신문은 “중국 슈퍼리그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금은 실질적 영향이 거의 없다. 만약 중국의 우수한 선수들이 현지 리그의 금전적 혜택에 만족해 해외에서 경험을 쌓지 못한다면 ‘2050년까지 세계 축구강국이 되겠다’는 중국의 목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일본 야구 대표팀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우승을 차지하자, 야구 저널리스트 신구 아키라는 “일본 야구가 스포츠과학으로 진화했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아쉽게도 이번 파리올림픽에서는 야구가 정식 종목에서 제외돼 경기가 열리지 않는다.
과거 일본 야구선수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오프시즌에 쉬는 선수가 없다. 다들 스윙이나 투구에 필요한 근육을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련한다. 낡은 훈련 스타일에서 벗어나 스포츠과학을 수용한 것이다. 영상기기의 기술적 발전과 보급으로 이상적인 스윙과 투구폼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나 사사키 로키(23·지바 롯데 마린스) 같은 일본의 ‘괴물급’ 선수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탄생했다.
야구계 자체가 건전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도박 사건이나 승부 조작 사건 등 건전성이 의심되는 사건이 계속됐다면 팬들은 실망해 떠났을 터다. 물론 일본 야구계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다. 이에 일본올림픽위원회(JOC)는 ‘인간력(인격과 매력) 없이는 경기력 향상도 없다’라는 슬로건을 강조한다. “전성기가 짧게 끝나지 않으려면 국가대표급 선수가 훌륭한 존재로, 아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으로 비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JOC 엘리트 아카데미’ 레슬링 탁구 등 주니어 발굴·지도
흔히 일본은 생활체육 문화가 발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엘리트체육도 지원해 실상은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공존한다. 2008년 일본올림픽위원회(JOC)는 ‘엘리트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대상자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로 전국에서 뛰어난 소질을 가진 주니어를 발굴하고, 일관된 지도 시스템 아래 국제경기대회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관련 사업을 살펴보면 경기력 향상뿐만 아니라 인성교육에도 힘을 쏟는 것이 특징이다.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겸손한 자세가 필수 요소이기 때문. JOC 측에 따르면 “2024년 기준 22명이 엘리트 아카데미에 재적 중”이라고 한다. 레슬링 8명, 탁구 4명, 펜싱 1명, 라이플 사격 2명, 조정 1명, 양궁 6명이 포함돼 있다.
엘리트 아카데미 출신으로는 2021 도쿄올림픽에서 레슬링 여자 자유형 53kg급 금메달을 차지한 무카이다 마유 선수(27)가 유명하다. 2021 도쿄올림픽 남자탁구 단체전 동메달리스트 하리모토 도모카즈(21), 2024 파리올림픽 일본 기수로 선정된 여자 펜싱 사브르 세계랭킹 1위 에무라 미사키(25)도 엘리트 아카데미 출신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