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 전부문 리그 10위 이내 들어…월간 10홈런-10도루까지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연고지 광주에는 올해 새 유행어가 생겼다. 광주의 한 KIA팬이 '도영아, 너 때문에 산다'라는 의미를 담아 플래카드를 만들었는데 이 문구가 TV 중계화면에 잡히면서 삽시간에 유명세를 탔다. KBO리그 최고 스타로 발돋움한 KIA 3년 차 내야수 김도영(21)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도영은 올해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KIA의 스타플레이어 중에서도 단연 슈퍼스타로 꼽힌다. 팀 선배 박찬호가 "요즘 광주에선 아무도 김도영은 못 이긴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정도다. 2022년 KIA의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데뷔한 김도영은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1군 경기에 출장하면서 실력을 갈고닦았다. 올해 마침내 잠재력을 꽃 피우면서 벌써 가장 유력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충분히 근거 있는 전망이다. 김도영은 7월 24일까지 올 시즌 9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54, 홈런 25개, 72타점, 97득점, 29도루를 기록했다. 타격 3위, 홈런 2위, 타점 공동 7위, 도루 6위, 득점 1위, 안타(130개) 공동 1위, 출루율(0.422) 3위, 장타율(0.640) 1위다. KBO가 공식 시상하는 타격 8개 부문에서 모두 톱10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사실상 'MVP 굳히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요즘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가 김도영의 유니폼을 입고 그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든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이유다.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김도영의 활약은 프로 데뷔 전부터 예견됐다. KIA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바람의 아들' 이종범과 여러 모로 비슷한 스타일이라 일찌감치 '제2의 이종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광주 동성고 재학 시절 전국 고교야구 내야수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천재 유격수'로 통했고, 콘택트 능력·장타력·빠른 발·수비력·강한 어깨에 타고난 야구 센스까지 두루 갖춰 "단점을 찾기 어렵다"는 극찬도 받았다. 특히 타격은 이미 초고교급이었다. 고교 3학년 때 전국 대회 21경기에 나서 타율 0.456·출루율 0.531·장타율 0.608·도루 17개로 펄펄 날았다. 결국 KIA는 202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시속 150㎞ 중반대 강속구를 던지던 오른손 투수 문동주(당시 광주 진흥고·현 한화 이글스)를 포기하고 김도영을 1차 지명했다.
KIA는 당시 김도영을 선택하면서 "타격·수비·주루가 모두 좋은 '완성형 내야수'다. (오른손 타자인데도) 홈에서 1루까지 3.96초 만에 도달할 정도로 스피드와 순발력이 압도적"이라며 "입단 후 내야 수비와 타선 강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선수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야수로 성장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타 구단 스카우트팀 관계자는 "강속구 투수는 당분간 여럿 등장할 수 있지만, 김도영 정도의 즉시 전력급 야수는 향후 수년 동안 나오기 힘들다고 본다. 내야수가 절실한 KIA가 결국 김도영의 희소가치를 선택한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김도영은 출발이 무척 화려했다. 2022시즌 개막 전 시범경기에서 전 구단 타자 중 유일하게 4할대 타율(0.432)을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고졸 신인 야수가 입단 첫 시즌 시범경기 타율 1위에 오른 건 김도영이 역대 처음이었다. 건강 문제로 1군 스프링캠프를 처음부터 함께하지 못하고 막바지에야 합류했는데도 타율 뿐 아니라 최다안타·출루율·장타율 1위까지 휩쓸면서 압도적인 활약을 했다. 아직 정식 데뷔도 하지 않은 유망주의 재능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소속팀 KIA는 물론이고, 다른 팀 감독과 선배 선수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당시 KIA 사령탑이던 김종국 전 감독은 "공격·수비·주루 모두 뛰어난 데다 단단한 멘털과 훌륭한 마인드까지 갖췄다. 경기 감각만 조금 더 올라오면 진짜 슈퍼스타가 될 것 같다"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다만 시범경기의 맹활약은 결과적으로 김도영과 팀 모두에게 독이 됐다. 김종국 감독은 그해 4월 2일 LG 트윈스와의 정규시즌 개막전부터 김도영에게 1번 타자 중책을 맡겼다. 고졸 신인 야수가 정규시즌 개막전 리드오프를 맡은 건 KIA 구단 역사에서 김도영이 최초였다. 그러나 김도영은 그 후 좀처럼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실수를 연발했다. 점점 대타나 대수비, 대주자로 나서는 횟수도 늘어났다. 6월 이후 타격폼을 수정하면서 해답을 찾은 듯했지만, 부상 악재까지 겹치면서 일단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프로 첫 시즌 성적은 103경기 타율 0.237, 홈런 3개, 19타점, 도루 13개.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도 0.674에 불과했다. 두 번째 시즌인 지난해엔 부상의 불운에 발목을 잡혔다. 개막 두 번째 경기에서 발가락을 다쳐 재활하느라 6월에야 팀에 합류했다. 그러나 144경기 중 84경기(58%)에만 출전하면서도 타율 0.303, 홈런 7개, 47타점, 도루 25개, OPS 0.824로 직전 시즌보다 월등히 좋은 성적을 냈다. 올해의 폭발을 준비하는 예고편이나 다름없었다.
#역대 최초 월간 10-10
프로 3년 차가 된 2024년, 김도영은 마침내 물을 만났다. 3월 23일 개막 후 6경기에서 타율 0.154에 그치고 홈런을 하나도 치지 못해 걱정을 샀지만, 4월 첫 경기였던 2일 KT 위즈전(3안타)을 기점으로 무섭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4월 25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시즌 10호 홈런을 때려내면서 KBO리그 역대 최초로 월간 10홈런-10도루(11개) 기록을 세웠다. 역대 유일한 40홈런-40도루의 주인공 에릭 테임즈(2015년·당시 NC 다이노스)도 해내지 못한 진기록. 김도영 전에 이 기록에 다가선 선수도 2017년 8월 9홈런-10도루를 기록한 손아섭(NC·당시 롯데 자이언츠)밖에 없었다.
2022년 3개, 2023년 7개의 홈런을 때렸던 김도영이 4월 21경기 만에 홈런 10개를 몰아치자 야구계는 깨어난 '천재 타자'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0호 홈런의 제물이 된 키움의 홍원기 감독조차 "요즘 김도영의 기세가 뜨겁다 못해 불타오를 지경"이라고 경계했을 정도다. 김도영은 "처음에는 '10-10이 그렇게 의미 있는 기록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선배들이 오히려 '오랫동안 깨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의식하게 됐다"며 "나는 관심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빨리 기록을 세우고 싶었고, 요즘 야구가 잘돼 매일 행복감을 느낀다"고 활짝 웃어 보였다.
그는 결국 4월까지 안타 44개(3위), 29득점(2위), 10홈런(공동 3위), 26타점(공동 4위), 장타율 0.638(2위), 14도루(2위) 등 타격 각 부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KBO 월간 MVP를 수상했다. 기자단 투표 30표 중 23표(76.7%), 팬 투표 44만 8880표 중 23만 6767표(52.7%)를 받아 총점 64.71점을 기록하면서 KBO리그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운 2위 최정(SSG 랜더스)마저 가볍게 따돌렸다.
#전반기에 20-20 달성
김도영은 그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김도영은 6월 23일 한화 이글스와의 광주 더블헤더 1차전에서 메이저리그 11년 경력의 베테랑 투수 류현진을 상대로 시즌 20호 홈런을 때려냈다. 그는 이 홈런으로 올 시즌 10개 구단 타자 중 가장 먼저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KBO리그 역대 57번째 기록이었다. 또 20세 8개월 21일의 나이로 20홈런-20도루 고지를 밟아 1994년의 김재현(18세 11개월 5일·당시 LG 트윈스)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어린 가입자가 됐다. 이범호 KIA 감독은 "부상만 없다면 30홈런-30도루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며 박수를 보냈다.
무엇보다 전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20홈런-20도루까지 완성했다는 게 고무적이었다. 올해로 43번째 시즌을 맞이한 프로야구에서 전반기에 20홈런-20도루를 달성한 선수는 김도영 이전에 모두 3명(4회)밖에 없었다. 1996년과 2000년 박재홍이 2회, 1999년 이병규와 2015년 에릭 테임즈가 1차례씩 해냈다. 김도영의 홈런-도루 생산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김도영은 이 활약을 바탕으로 다시 KBO 6월 월간 MVP를 수상했다. 기자단 투표에선 30표 가운데 6표를 얻어 키움 김혜성(13표)에게 밀렸지만, 팬 투표 50만 7615표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4만5598표(48.4%)를 쓸어담아 승부를 뒤집었다. 한 시즌에 월간 MVP를 2회 이상 받은 선수는 2022년 6월과 9월의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후 김도영이 처음이다.
김도영은 내친 김에 역대 9번째 30홈런-30도루 클럽까지 바라보고 있다. 30홈런-30도루는 이전까지 6명의 선수가 8차례만 성공했던 값진 기록이다. 박재홍이 1996년 최초로 해낸 뒤 1998년과 2000년까지 총 3회 달성했고, 이종범(1997년)·이병규·홍현우·제이 데이비스(1999년)·테임즈(2015년)가 30-30클럽의 회원이 됐다. 김도영이 올해 성공하면, 국내 선수로는 2000년 박재홍 이후 24년 만이 된다. 7월 25일까지 이미 25홈런-29도루를 기록 중이라 올 시즌이 끝나기 전 무난하게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
유일하게 30홈런-30도루를 세 차례 경험한 박재홍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김도영을 보고 오랜만에 '물건'이 하나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20홈런-20도루를 해놓았다는 건, 이변이 없는 한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라고 했다. 실제로 앞서 전반기에 20홈런-20도루를 해낸 타자들은 모두 그해 무난하게 30홈런-30도루 고지를 밟았다. 박 위원은 또 "김도영은 출루율이 높고 발이 빨라서 도루 기회가 많이 오는 데다 홈런 30개도 후반기에 충분히 채울 수 있는 범위라고 본다"며 "끝까지 체력 관리를 잘하는 게 필수고, 무엇보다 그 기록을 너무 의식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특히 첫 도전 때는 홈런을 의식하다 아홉 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남은 시즌도 편한 마음으로 지금처럼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꾸준히 3할대 중반 타율을 유지하고 있는 김도영은 장타력과 빠른 발에 타격의 정교함까지 겸비한 타자의 상징인 '트리플 스리’(3할-30홈런-30도루)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 트리플 스리는 이전까지 KBO리그에서 단 6차례만 나왔다. 김도영의 롤 모델인 이종범이 1997년 처음으로 기록했고, 국내 타자 중엔 2000년의 박재홍이 마지막이었다. 김도영이 그 문을 다시 열어 젖힐 준비를 하고 있다.
#역대 2호 내추럴 사이클링 히트
김도영의 스타성은 누적 기록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그는 7월 23일에도 또 한 번 야구계를 들썩이게 했다. 이날 NC와의 광주 홈 경기에서 1회 첫 타석 내야안타, 3회 두 번째 타석 2루타, 5회 세 번째 타석 3루타, 6회 네 번째 타석 홈런을 차례로 때려냈다. 김도영의 데뷔 첫 사이클링 히트(한 경기에서 단타·2루타·3루타·홈런을 모두 기록하는 것)이자 KBO리그 역대 31번째 기록이었다. 김도영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 대기록이 완성되는 순간, 광주의 관중석은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김도영(20세 9개월 21일)보다 어린 나이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선수는 2004년 9월 21일의 신종길(20세 8개월·당시 한화)밖에 없었다.
김도영은 또 첫 네 타석에서 일사천리로 대기록을 완성해 역대 최소타석 사이클링 히트 타이기록도 세웠다. 그것도 단타-2루타-3루타-홈런을 순서대로 쳐내는 일명 '내추럴' 사이클링 히트였다. 김응국(1996년 4월 14일) 이후 역대 두 번째였고, 이 기록을 네 타석 만에 달성한 선수는 김도영이 유일했다. 김도영 자신도 "실제로 홈런이 나오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계속 소름이 돋은 채로 그라운드를 돌았던 것 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범호 감독 역시 "김도영이 올 시즌에는 점점 완벽한 선수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성장하면서 더 많은 사이클링 히트를 해낼 것 같다"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제 김도영은 타자로서 역대 최연소 정규시즌 MVP에 도전한다. 역대 최연소 수상 기록은 데뷔 첫해인 2006년 19세의 나이로 MVP와 신인왕을 동시 석권한 류현진이 갖고 있다. 김도영은 이승엽(당시 삼성 라이온즈)이 보유하고 있는 '타자’ MVP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1976년 8월 18일 태어난 이승엽은 데뷔 2년 차인 1997년 10월 2일에 MVP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김도영은 2003년 10월 3일생이라 MVP를 수상하면 이 기록을 깰 수 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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